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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ug 28. 2020

<집>

슬픔은 집을 나서고, 들어온다


출가



오늘도 출가한다. 학교를, 직장을,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이불 밖은 위험함에도 우리는 매일같이 꾸역꾸역 집을 나선다. 왜?


타블로의 첫 솔로 정규앨범 [열꽃]이 발매 2011년의 부산을 잊지 못한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부정당한 우울증을 꽤 덤덤하게 받아내던 시기였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고 싸구려 스피커의 음량을 최대한으로 키워 엄마와 함께 앨범 전곡을 들었다.


타블로의 <집>은 그 앨범의 첫 번째 파트, 첫 번째 트랙이었다. 그는 앨범의 정체성을 우선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이 1번 트랙에서 과연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uJtQqgqXSXU




집 1 - 접근금지



[Verse 1]


문턱은 넘어서면 어지러워

내게 편한 나의 경계선이어서

심장만 어지럽혀 치워 둔

쓸모없는 감정은 먼지 덮여

여길 벗어나면 죽음

익숙한 슬픔보다 

낯선 행복이 더 싫어서

걸음 버린 나



문지방을 밟으면 재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화자는 재수는 둘째치고 당장 문턱을 넘어서기도 힘이 든가 보다. 이 경계선을 조금만 넘어도 멀미가 나는 걸 보니.


'심장을 어지럽히기만 하는 쓸모없는 감정'들은 내버려 둔 만큼 먼지가 쌓였다. 세상과 나를 가르는 경계선인 문턱을 벗어나면 이 심장이 맞이하는 것은 '죽음'이다. 집은 슬프지만 이 감정은 익숙하다. 집 밖에는 분명 일정량의 행복이 있겠지만 이 감정은 화자에게 있어 너무나 낯설다. 일반적으로 슬픔은 행복과 대조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자는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슬픔을 선택하려 한다.



헌신발이 될까만 겁이나

세상 세월 사람

꺾어 신어서 잊고 있어

문 앞에 수북이 쌓인

신문과 고지서처럼

나와 상관없는 세상의 생각

요구들 내 앞에 늘어놓지 마

This is my home

Leave me alone

여기만은 들어오지 마



집 밖에 나갈 이유가 없기에 걸음은 버려졌고 걸음의 이유가 없기에 신발은 헌신 짝이 된다. 그러나 내가 헌신발이 된 이유는 어쩌면 세상, 세월, 사람이 날 꺾어 신어 구부려트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집 밖에 나갈 생각도 없지만 나갈 방법도 도 떠오르지 다. 화자의 슬픔에는 비자발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음을 '신발'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공간의 분위기(집)를 해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집 밖으로 나가질 않으니 문 앞에는 보지 않는 신문연체된 고지서가 쌓여있다. 일방적인 단절을 뜻한다. 화자는 늘 집에만 머무르고 있으니 다른 사람과 세상에 관련 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 집'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으며 무언가를 늘어놓을 수도 없다.




집 2 - 귀가



[Verse 2]


내게 행복할 자격 있을까

난 왜 얕은 상처 속에도

깊이 빠져있을까

사는 건 누구에게나 화살 세례지만

나만 왜 맘에 달라붙은

과녁이 클까

감정이 극과 극 달리고

걸음 느린 난 뒤떨어져

숨 막히고 내 맘을 못 쥐어

세상을 놓쳐

몇 걸음 위 행복인데

스스로 한 단씩 계단을 높여



화자에게 집은 '익숙한 슬픔'이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가. 집 밖으로 나갈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아서 누구나 얕은 상처도 받고 고작 몇 발의 화살에 명중당하기도 한다. 아마 아니겠지만 유독 '나'만 이 상처에 깊숙이 빠지고, 유독 '내' 과녁만 커다래서 더 많은 화살에 명중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집 밖으로 나가면 어떤 치료과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낯설기에 두렵다.


우울보다 무운 조울. 감정이 왔다 갔다 할 때 생기는 낙차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분명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음을 직감해도 그 '낯선' 감정이 너무 두려워 스스로 계단을 쌓는다.



누구에겐 두려운 일 하지만

내겐 웃음보다 자연스러운 일

사람이 운다는 것은

참을수록 길게 내뱉게만 되는

그저 그런 숨 같은 일

Let me breathe

슬픔이 내 집이잖아

머물래 난 제자리에

잠시 행복 속으로 외출해도

반드시 귀가할 마음인 걸

이젠 알기에



익숙한 슬픔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일이겠지만 화자에게는 낯선 웃음보다는 차라리 자연스러운 아픔이다. 운다. 그/그녀가 운다. 기침처럼 운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크게 터져 나오는 숨처럼 운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나갈 수 없는 이 집에서 그저 숨을 내몰아 쉬게 내버려두라니. 도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이 곳엔 그/그녀 밖에 없는데.


혹여나 낯선 행복으로 잠시 외출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다. 슬픔은 내 '집'이 언젠가 반드시 귀가해야 하기에 우리는 이 감정에 익숙해야 한다.




집 3 - 초대



[Hook]


이젠 눈물 없이도 운다

그저 숨 쉬듯이 또 운다

집이 되어버린 슬픔을

한 걸음 벗어나려 해도

문턱에서 운다

나도 모르게 운다



집 1과 집 2 사이의 훅은 이소라의 피처링으로 감정을 극대화한다. 첫 번째 벌스와 두 번째 벌스의 사이에서 한 번, 두 번째 벌스와 브릿지 사이에서 한 번, 마지막 아웃트로로 한 번 총 세 번 기용된 보컬은 딱히 커다란 기교를 부리진 않았으나 아주 미묘한 표현력의 차이로 똑같은 가사임에도 각각의 훅에서 다른 감정을 발산한다. 청자의 감정선을 상당히 예민하게 건드리는 기술적인 피처링 기용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여전히 경계선으로 작용하는 문턱은 화자의 출가를 허가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화자 스스로가 집을 나설 용기가 없기에 문턱 앞에서 좌절하고 마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우는 걸 보니 화자 본인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왜 이 슬픔의 집에 갇혀 있는지.



[Outro]


집이 되어버린 내 슬픔 속에 그대를

집이 되어버린 내 슬픔 속에 그대를 초대해도 될까?



곡을 진행하는 내내 피아노 사운드가 메인 테마가 되지만 위의 마지막 두 라인에서만 강한 드럼이 들어오면서 보컬의 영역에도 노이즈가 추가된다. 당연히 강조를 주기 위해 사용된 작법이다. 화자는 내 집에 그대를 초대해도 되냐고 묻는다. 문턱에 막혀 도저히 나갈 수 없으니 발상을 바꿔 당신을 내 집 안으로 들이려 한다.


뜻을 해석하기 모호한 라인이다. 밖에는 분명 행복이 있으니 이름 모를 당신이 그 행복을 가져와 나를 치유해주길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을 내 슬픔으로 끌어들여 이 외로움으로부터 혼자가 아닌 둘이 되고 싶은 것인지 말이다. 이제 남은 해석은 오롯이 여러분의 영역이다.




마치며



이 앨범이 나오기 전, 타블로는 음악을 관두려 했을 정도로 악의적인 루머에 시달렸다. 아티스트 본인에게 있어 너무나 큰 아픔으로 만들어진 앨범이었기 때문에 첫 트랙만큼은 최대한 덤덤하게 감정을 발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집> 이후의 여러 트랙을 지나면서 화자는 사람과 사랑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미안해하며 본인과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세계를 보듬는다. 그렇게 9번 트랙 <고마운 숨>에 도달하면 이 또한 회의적이나 어쨌든 행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 <유통기한>에서는 다시 잊히고 버려질까 봐 두려워한다.


열꽃은 '아픔'을 상징한다. 어린 아기들이 고열에 시달릴 때 피부에 돋는 붉은 점이 바로 열꽃이다. 하지만 이 열꽃은 아픔을 뜻하는 동시에 열기가 낫고 있다는 '회복'의 신호이기도 하다.


나 또한 <집>에 갇혀 아파했던 적이 있다. 도저히 집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어 히키코모리처럼 살기도 했다. 바깥에서 느낀 낯선 행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에도 이견은 없다. 그러나 좀 오랫동안 집을 비우기라도 할라치면 금방 몸이 노곤해지는 걸 봐서는 아직도 나는 집돌이 임에 틀림없다. 내가 문턱을 넘을 수 있게 도와준 내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집에서 느끼는 이 익숙한 슬픔마저도 소중한 감정이다. 당신의 피부에도 내가 경험한 열꽃이 필 수 있다면 한 번쯤은 굳게 잠가둔 내 슬픔의 집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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