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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Sep 20. 2020

때때로 애국자가 되는 사람들

두유 노 BTS?

한창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던 시절,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나꼼수'에 심취해있었다. 어렸기 때문이었을까. 주변 친구들의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한 나는 그 뜻도 정확히 알지 못했던 '진보 대학생'이 되었고 반대에 있는 '보수'란 부패한 기득권이라는 막연한 착각을 가지고 살았다.


부마항쟁의 흔적이 남은 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일까. 그곳에서도 나는 그다지 큰 이질감 없이 진보 성향의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그들 또한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그들의 부모님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자주 답답함을 느꼈다. 언젠가 아빠는 내게 마르크스를 읽게 하는 NL계 학생회와는 어울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적이 있었으나 정작 학생회의 최고위 간부였던 내 절친한 친구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조차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그들이 바랬던 것은 그저 '우리가' 잘 사는 것이었다.


노동자 연대, <공산당 선언과 1848년의 세계>


내 안의 변화는 군에 입대하며 시작됐다. 포항의 훈련단에서 7주간 생활하며 내가 가장 신기했던 것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웠던 '애국보수' 청년들은 분명하게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금은 소방관이 된 당시 내 동기는 심지어 존경하는 인물이 전두환이라는 이유로 전차부대에 지원하며 내 세계(?)에서는 배척당할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당시 내 눈에 그는 극악무도한 '일베충'으로 비쳤고 다시 한번 고등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하지만 자대 배치를 받고 몇 번의 사상 검증과 교육, 북한의 도발에 맞서는 직접적인 작전에 몇 차례 투입되자 내가 믿어왔던 진보의 모든 것들이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큰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화전양면전술처럼 때에 따라 쉽게 손바닥을 뒤집는 국방의 의무에 허탈함을 느끼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외치던 '정치적 중립'의 이유가 이 '부질없음' 때문인 것을 체감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때의 경험이 오히려 더 값지다고 믿는다. 세상에 중간은 없지만 중간을 희망하는 것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성역시 되는 집단이 몇 군데 있다. 독립투사들, 위안부 할머니들, 세월호 피해자들 그리고 국위 선양자들. 대체로 국가를 위해 헌신했거나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 혹은 모종의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국민들이다. 우리는 매 광복절마다 SNS에 태극기를 걸고, 4월 16일에 맞춰 노란 리본을, 극우파 일본 정치인의 소녀상 철거에 극렬한 반대로 맞선다. 끝없는 불합리함에 '헬조선'을 외치면서도 먼 과거부터 내려져온 민족주의가 여전히 우리 사회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DNA이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유독 '국뽕' 콘텐츠에 열광한다. 외국인들이 K-POP을 감상하며 취하는 리액션 동영상을 소비하고 한국 음식에 매료된 외국인들을 보며 흐뭇해한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1위를 국가적 차원에서 치하하고 손흥민의 선발 출전은 여전히 큰 관심사다. 오랜 제국주의 탄압의 대상이었고 IMF를 이례적으로 극복하며 급성장한 개발도상국이 어느덧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는 것에 일종의 자긍심을 느껴서일까. 그 어떤 인종보다도 우리는 '인정'을 갈구한다. 이러한 성취에는 공동체 의식이 기저에 깔려있다. 대한민국의 성장에는 선조들은 물론 우리의 피와 땀도 섞여있는 것이다. 다만 성과의 재분배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뿐.


MLBPARK, <국뽕 짤 최신판.jpg>


그렇게 한동안,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외국인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10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브 '소련여자' 채널은 범국민적 분노를 안겨준 '호날두 사태'에 그의 유니폼에 불을 지르는 기행을 선보이며 하입을 받아 급성장한 소위 '국뽕 유튜버'다. 재밌는 점은 일반적인 외국인 유튜버들과 다르게 그녀는 한국말이 어딘가 서투른 러시아 여성이라는 점과 과거 우리가 소련이라고 불렀던 '소비에트 연방'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차용해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이 '노동자 계급'이라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한 ' 프롤레타리아'를 채널의 아이덴티티로 삼았다는 것이다.


유튜브, <소련여자 Soviet girl in Seoul>


이렇게 '국뽕 코인'에 탑승하는 외국인 혹은 한국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이에 반발심을 가지는 세력 또한 생겨났다. 한동안 <연예가중계>를 통해 내한한 외국인 스타들은 '입국 심사'의 일종으로써 '두유 노 강남스타일'과 '두유 노 김치'를 질문받았고 이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몇몇 스타들은 '명예 한국인'으로 공인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 낮은 질문이 오히려 국격을 떨어트린다는 세간의 지적 또한 빗발치자 제작자들은 이를 교묘하게 회피하는 입국 심사 질문들을 만들어냈다. 바로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만의 문화'를 간접 체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손가락 하트를 시킨다던지,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억지로 미는 유행어를 시킨다던지 하는 행동들 말이다.


KBS2, <연예가중계>




하지만 이렇게 명예 한국인이 된 외국인은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최근의 의정부고 학생들의 블랙 페이스 논란으로 많은 지상파 예능에 얼굴을 비춘 '샘 오취리'가 본인의 SNS에 남긴 글이 대표적이다. 의정부고는 특이한 코스프레를 통해 재미난 졸업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 학교다. 그중 몇 명의 학생들이 2020년 크게 화제가 된 '관짝 밈'을 활용한 코스프레를 선보였는데 이 과정에서 얼굴을 까맣게 칠한 분장이 흑인들을 인종 차별하는 것이라는 샘 오취리의 지적에 대국민적인 린치를 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관짝 밈의 실제 당사자인 팀의 한 멤버가 의정부 학생들에게 감사를 표한 게시물을 통해 더욱 크게 불타올랐다.


경향신문, <"블랙페이스 논란, 경솔했다" 샘 오취리는 사과해야 했을까>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샘 오취리는 금방 사과를 표했지만 잇달아 터진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을 바꿨다는 논란과 한 여배우와 함께 찍은 사진에 달린 성희롱성 댓글에 긍정의 답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큰 지탄을 받았다. 이전의 샘 오취리는 앞서 말한 소련여자와 비슷하게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흑인 가나인이라는 점과 한국을 본인의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할 정도로 사랑한다는 애국자의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SNS 게시물 하나로 그는 한국에서 간신히 쌓아 올린 좋은 이미지를 한 번에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재밌는 점은 그 누구보다 외국인의 인정을 바라고, 그러한 콘텐츠를 소비하며, 그러한 인물들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애국심에 약간이라도 흠집을 내는 상황에는 감쪽같이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샘 오취리의 논란에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에게 분노한 이유는 의정부고 학생들의 '의도가 순수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논지였다. 그들은 '관짝소년단' 그 자체를 흉내내기 위해 얼굴을 까맣게 분칠 한 것이지 흑인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인벤, <현재 논란인 샘 오취리 인스타 댓글들.jpg>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종종 서양인들이 동양인과 찍은 사진에서 눈을 가로로 길게 찢는 모션을 취한 것을 보고 '옐로 몽키'는 동양인 비하라며 크게 화내면서 블랙 페이스에는 어찌 이리도 관대한지 말이다. 속된 말로 서양인들이 비하의 의도 없이 순수하게 그들을 묘사한 방식으로 눈을 찢는다면 그것 또한 인종차별이 아니란 말인가. 분명 이 사건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의견 또한 존중한다. 다만 내가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저열한 의도'는 감히 누가 판단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렇게 때때로 애국자가 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46인의 천안함 용사들과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외국인들의 행동은 국민들에게 강하게 각인되며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일본 문화에 열광한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에 대한 막연한 배척의 감정 또한 공존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와 일본의 경제 전쟁에 동참하며 한국은 곳곳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졌지만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과 신작 플레이스테이션은 재고가 없어서 못 사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존재했다. 이러한 이슈는 각자의 이중 잣대를 통해 본인의 필요에 따라 형체 없는 매국노와 애국자를 만들어냈다.


연합뉴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것을 일종의 '국민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편협함이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동양인 차별과 욱일기에 분노를 표한다. 하지만 서양권의 불가침 영역인 하켄크로이츠에는 무지하며 가장 최근의 'black lives matter' 운동에는 모종의 회의감을 느낀다.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며 이를 철폐하는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왜 코로나 이슈 때 한인 타운의 할머니에게 린치를 가한 흑인들에는 침묵을 유지하며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에게 흑인 인권 운동에 동참하라는 강제성 댓글을 다냐는 이중 잣대를 들이밀며 '너네 인권은 너네가 지켜라'로 일갈한다. 나쁜 건 나쁜 거고 각자의 입장에서 더 나은 선을 향하는 방향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상시와 다르게 때때로 이기적인 애국자가 된다.


이는 비단 다른 문화권이라는 이유로 생기는 차이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권 국가인 베트남에는 최근 강력한 혐한 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부터 내려져온 원정 성매매와 베트남 전쟁 등의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섞여있겠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인터넷 강국으로써 한국인들이 가하는 무분별한 악플의 문제가 크다.


인사이트, <혐한 콘텐츠로 조회수 잔뜩 올려 돈 벌어들이는 베트남 유튜버들>


베트남은 한국과 비슷하게 자국에 대한 애정이 강렬한 나라다. V-POP이 K-POP보다 낫다는 혐한 콘텐츠와 최근 한 베트남 모델이 유튜브에 공개한 본인의 새로운 문신이 전범기의 형상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국 네티즌들의 극렬한 악플에 시달려 사과하는 모습이 베트남 내에서 크게 회자되며 반격을 준비하는 모습 등은 과거 박항서 감독이 만든 베트남 축구 신드롬과는 무색하게 베트남의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을 적으로 식별하는 왜곡된 현상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베트남은 후진국이고 우리나라에 돈 벌러 와서 범죄만 일으킨다는 고정관념으로 은근한 멸시를 정당화시키는 확증편향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다시 내 군 복무 시절, 일병 언젠가 즈음에 출처는 모르겠으나 상위 기관에서 홍보자료로 내려온 팸플릿을 통해 나는 '때짜'와 '마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단어들은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속어로 각각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관계의 공격수와 수비수를 뜻한다. 팸플릿에는 노골적으로 이들을 비하하고 지양해야 한다는 논조가 가득 담겨있었다. 어찌 보면 남성들 밖에 없는 보수의 커뮤니티에서 전력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지극히 편향된 방향으로 홍보 책자를 만든 점이 마냥 이해 불가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지금의 성인지 감수성은 물론 전력의 측면에서도 말이다. 과거 테베는 전장에서 동료를 버리지 않는 부대를 만들기 위해 동성애자로 구성된 군대인 '히에로스 로코스'를 창설해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냈다. 이들의 애국에 사랑은 훌륭한 무기지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시아경제, <그리스 동성애 부대 300명이 스파르타 1800명 쳐부순 비밀>


지금은 많이들 저항해 그러한 분위기가 꽤 많이 희석됐지만, 우리나라는 애국자를 강요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엄연한 휴전국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최근 유튜브의 '가짜 사나이' 시리즈가 큰 흥행을 한 부분에는 우리 마음속의 애국심을 자극한 몇몇 장면들의 역할도 클 것이다. 나는 그 마음에 크고 작음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군 복무를 성실히 수행했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군 복무의 의무가 없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는 각자의 기준에서 비교적 일관적인 행동으로 선한 사회를 정의하되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진 않는 것이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콩고 왕자 조나단은 한국에 대한 큰 사랑을 표현했다. 지금의 젊은 한국인들과 비슷하게 한국에서 자라고 있는 그는 '대한 외국인'으로써 국뽕에 나름의 소신발언을 전했다. 나는 이 에피소드가 때때로 애국자가 되는 사람들이 한 번쯤 곰곰이 돌이켜봤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MBC, <라디오스타>


"사전 인터뷰를 하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뭐냐는 질문을 받아요. 저는 고구마 피자라고 말하는데 제작진은 비빔밥 같은 한국 전통음식을 기대하는 느낌이에요. 근데 저는 비빔밥 안 좋아해요. 야채 덩어리잖아요. 근데 이런 답변으로 몰아가는 게 너무 느껴지다 보니까 이제 외국인들도 어떤 대답을 하면 한국인들이 좋아할지를 알아요. 하지만 저는 한국을 꼭 인정해주지 않아도 긴 역사와 좋은 문화, 언어가 있으니까 누군가가 인정해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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