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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Sep 09. 2020

오글거리는 감수성의 사람들

낭만이 조롱받는 시대, 낭만을 외치되

낭만이 사라진 시대다. 회색도시를 인정하기 싫어 이를 최대한 미뤄왔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시인해야겠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더 이상 감수성을 희망하지 않는다.


'오글거린다'


시작은 이 유행어였다.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감수성은 이와 같은 폄하의 단어 때문에 검열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어떤 감정을 가졌고 또, 어떤 방식으로 이를 풀어내는지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전의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들>에서도 말했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국 그놈의 빌어먹을 '쿨함' 때문이었다.


'웰빙'이라는 말이 오랜 과거로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은 담백함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인체에 유해한 음식을 피하는 것처럼 감정에도 탈이 나지 않는 밋밋함을 선호했다. 사람들은 소금 간이 된 감수성에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였고 큰 틀에선 감성적인 사람들에게 인색해졌다. '감성충'은 오묘한 합성어로써 사람들의 감수성에 본능적인 제한을 걸었고 이제는 아무도 본인의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쿨하지 못한 거니까.


민경희 작가 @page_737


새벽이 만든 사람들의 감수성은 그렇게 '오글거림'으로 뭉뚱그려졌다. 개개인의 기분과 상황, 상태는 천차만별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어딘가 부족한 논리의 글과 말들은 단지 내 몸 구석구석을 소름 돋게 만드는 민망함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피하고픈 것이 되었다. 또한, 나름의 사고 과정을 거쳐 완성됐을 수도 있는 이들의 말과 글들은 '정제되지 못함'을 이유로 성찰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그저 감정의 배설물일 뿐이며 이 안에는 어떠한 영양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공감할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항마력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이 오글거림은 가학적인 패러디 현상을 만들어냈다. 누군가의 감수성을 비하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것을 콘텐츠화해서 공공연하게 조롱하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의 발연기, 흑역사들을 모아 시리즈물을 형성한 이 '오글거림 참기 챌린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했고 이것은 우리가 한 번쯤 돌아봐야 할 감정의 파편이 아닌 '공감 능력 부족'으로 그 책임을 돌렸다. 그렇게 오글거리는 사람들은 일순간 제 멋에 취한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h1cpqj0Yds

nami nami, <드라마 오글거림 참기 챌린지 1탄(feat. 지후선배...)>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오글거림'은 대부분 '자학의 피드백'을 거처야만 정당한 감정의 발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눈물 셀카'로 이 분야의 정점을 찍은 채연과 최근, 오글거리는 음악과 뮤비로 '깡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비는 이를 유려하게 인정하며 본인 스스로를 자학하는 개그와 밈을 통해 대중들에게 각광받았다. 정면으로 이 '오글거림'을 밀고 나간 사람은 열정의 아이콘인 유노윤호를 제외한다면 당장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마저도 그의 오글거림이 '인위적이지 않다'는 대중들의 일관적인 판결 덕분이다. 반면 이와 반대되는 인위적임 때문에 여전히 크나큰 호불호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배우 유아인이다.


SBS, <가로채널>


언젠가 그의 수상 소감이 큰 화제가 되었다. 그의 연설은 어딘가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인 <베테랑>의 '조태오'가 연상되는 연기톤은 소감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고 나는 이를 지켜보며 그가 평소 얼마나 많은 생각을 담고 사는 사람인지를 간접적으로 느꼈다. 내 기준에서 그의 수상 소감은 억양과 악센트, 제스처를 제외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담백했고 감동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2s_viuaaoY

JTBC, <백상예술대상>


그는 평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글거리며 선민의식이 가득 찬 글을 쏟아낸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아왔다. 자연스럽게 그의 사상과 반대되는 사람들이 득달같이 척을 지며 일어났고 도를 넘은 몇몇 비난들이 날카롭게 그에게 박혔다. 잘생긴 얼굴, 뛰어난 연기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괴상한 생각에 심취한 오글거리는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이를 당연하다는 듯 전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아인 트위터


훗날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그는 과거 시상식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냈다. 그는 쉽게 긴장하는 성격이었고 이로 인해 수상소감이 부자연스러웠다. "화면 밖에서 본 내 모습이 나 스스로도 어색할 정도였으니 시청자들도 충분히 그런 반응을 보일만했다"라고 말하며 그는 악플에 너털웃음을 보였다. 방송 이후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시 회자되는 그의 수상소감은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는 두둔을 받고 있다.




'풍부한 감수성'이란 어쩌면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는 장점으로 꼽힐 수 없는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 그중에서도 '공대가 미래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져서일까.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합리적인 사고관을 구축했지만, 도리어 '잘 먹고 잘 산다'의 진정한 의미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리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알음알음 알고 지내던 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예능? 그런 거에 뭐하러 시간 낭비하냐? 나는 뭘 보게 되더라도 유익한 정보를 알려주는 거만 보는데. <알쓸신잡> 같은 거." 알쓸신잡도 예능프로그램인데.


물론 이 정도로 극단적인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오글거림'이 대대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결국 이 또한 '내로남불'이기 때문이다. 감수성에는 배려가 없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국 내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푸념에 집중한다는 것은 피로감만 쌓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양비론'도 여기에 크게 한몫을 했다. 대개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그리워하거나 하는 식으로 소위 말하는 '똥글'을 싸지르는 사람들은 일방적인 '편 가르기'를 희망한다. 그저 위로를, 안부를 궁금해했으면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 업로드 버튼을 눌렀을 그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사람들은 '너도 틀렸고 걔도 틀렸다'의 입장을 견지한다. "내가 그거 모르겠냐고! 그냥 입 닫고 나 좀 위로해줘!"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투정이다.


위키트리, <인스타그램에 #감성 #저격글 쓰는 이유>


'슬퍼해야 할 때'가 아니라는 것 또한 누군가의 감수성을 탄압했다.


너보다 더 힘든 사람 많아.
내가 더 힘들어.
그게 뭐가 힘드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발신자의 자의와 상관없이 오글거림을 수신한 사람들이 멋대로 정하는 '슬퍼해야 할 때' 때문에 누군가의 힘듦은, 외로움은, 괴로움은 목적과 타이밍을 놓친다. 감정의 무거움과 가벼움은 체중계로 잴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감성글'은 가장 가벼운 무게감을 가진 징징거림에 불과하게 됐다.




언제나 '중간'을 희망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 때문일까. '통섭형 인재'를 외치는 사회 분위기와 다르게 감성과 이성이란 얼핏 보기에 양립 불가능한 가치로 느껴진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저명한 물리학자'와 같이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인문학과 공학의 컬래버를 이룩한 스티브 잡스를 롤모델로 삼지만 이에 베이스가 되는 공학적 사고관은 찬양하면서도 감수성은 꽤나 빈번하게 등한시한다.


재밌는 건 이 '이과적 마인드' 또한 오글거림에 포함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세줄 요약하는 사람들>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사회는 방대한 정보(TMI)를 나열하는 '진지충' 또한 멸시한다. 진지충과 감성충은 각자 지나친 이성과 감성을 대표하는 비하의 표현으로써 내 앞과 뒤를 수식하는 말로 선호되지 않는다. 과하게 이성적이면, 감성적이면 비난을 받는 시대. 우리는 이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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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오글거림을 경험한다. 한 번쯤 감정의 폭발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 다음 날 얼굴을 붉히며 게시물을 삭제거나 한동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이불킥'을 차 봤을 것이며 또, 반대로 본인의 오글거림을 말끔히 잊고 누군가의 오글거림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시시덕거렸을 것이다. 연애를 하며 수많은 오글거림을 당연하다고 여겼을 것이며 때때로 그것이 보편이 아닌가 착각했을 것이다.


나는 감성적인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 개인적인 선호도의 차이로 인해 누군가의 오글거림이 눈살 찌푸러질때도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의 '진솔함'에는 경의를 표한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말할 수 있는 것임에도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억압에서 벗어나 때때로 진짜 본연의 내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수십 번의 이불킥을 부르는 흑역사 또한 그 순간의 가장 '나 다움'이었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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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가지를 묻고 싶다. 오글거림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언젠가 오글거림의 주체가 되어 본 모두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은 과연 그때보다 더 솔직했던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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