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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Sep 06. 2020

예민해서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예민함, 당신의 예민함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민감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이나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에 민감하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심오한 정보 처리 덕분에 타인의 필요가 충족되지 못하면 그 사람이 고통을 느낄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될지, 나에게 화를 낼지, 실망할지 등 어떤 상황이 이어질지도 감지할 수 있다. 민감한 사람은 민감하므로 상대가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면 자신이 더 큰 괴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의 사랑>, 일레인 N. 아론




예민함, 민감함은 얼핏 보기에 배려의 반대말처럼 느껴진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발칵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사람들에게는 배려심을 쉽게 찾아보기 힘드니까. 하지만 나는 '예민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진정으로 '쓸모 있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우 매우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히스테리를 자주 부리기도 해서 학창 시절에는 교우관계에도 크나큰 단점으로 작용했다. 나는 그렇게까진 예민하지 않았다고 기억하지만 지금까지도 연이 닿는 친구들은 내가 많이 '변했다'라고 증언하는 걸 봐선 그 시절의 내 예민함은 뾰족하다 못해 날카로웠나 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예민함은 '열등감'에서 출발한다. 또래에 비해 하등 잘난 게 없다고 생각하던 때는 어떻게든 나를 어필하고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기를 썼다. 조금이라도 성적을 올리기 위해, 운동을 잘하기 위해 버둥거렸고 아주 약간이라도 나를 비난하는 말에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내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했더라면 그리 반응하지 않았을 만한 일에도 툭하면 열불을 냈고 그렇게 내 예민함은 차츰 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다.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형태는 '버릇'이었다. 나는 어딘가 청결치 못하다는 느낌이 자주 들어 틈만 나면 코와 손가락을 벌렁거렸다. 코와 인중 사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자꾸만 찝찝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 버릇은 더욱 확대되어 결벽증을 동반한 강박증이 되었다. 나는 책장이 들릴까 봐 책의 앞, 뒤 날개를 책갈피로 쓰지 못했고 누군가 내 책에 낙서를 하거나 귀퉁이를 접는 것 따위의 행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내가 못 견디는 것은 '순서'였는데 나는 한 번 정한 루틴이 있다면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극심한 강박증을 앓았다.


문제는 그 강박의 대다수가 오로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이상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횡단보도의 흰 선만 밟는 일상적인 강박은 물론 어색한 문장을 읽고 나면 그 문장을 수십 번 반복하며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다음 문장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활자 강박과 물건의 위치가 아주 약간이라도 흐트러지면 그 변화를 단숨에 알아차리는 정리 강박을 앓았다. 그런 것에 왜 예민하냐는 핀잔을 아주 어릴 적부터 들어왔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매번 한 챕터를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다면 다시 처음으로 회귀하는 공부법 때문에 학습 진도가 진척되지 않았고 엄마가 시키지도 않은 방청소를 한 것을 발견하면 크게 짜증을 부리곤 했다.




어느덧 성인이 되면서 버릇을 비롯한 일종의 강박증들은 많이 희석됐다. 고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 또한 결국, 불치병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 나는 코를 벌렁거리지 않고 책에 낙서를 할 수 있으며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아도 딱히 큰 화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습성은 여전히 내 뇌에 각인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방향으로 예민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내 예민함은 오히려 큰 약점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경험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일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민해졌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더욱 복잡해지고 답이 없는 영역이라고 느끼는 스무 살 이후가 되자 내 예민함은 관계의 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말에 집착하게 되었다. '예의'에 예민함의 촉을 세운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존댓말을 써야 했고 동갑이나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친밀한 사이가 되기 이전에는 말을 놓는 것에 크게 애를 먹었다. 대개 진취적인 몇몇 동갑 친구들은 안면을 트자마자 "우리, 말 편하게 하자"라고 제안했지만 나는 거기에 커다란 모멸감을 느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연하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일체의 반말도 허용하지 않았다.


존대의 호칭을 쓰지만 말 끝에는 반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이유가 (이 또한 아마도 내 예민함 때문이겠지만) 그들이 예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무던한 사람들에게서 이 특유의 화법이 자주 등장했다.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적인 소통법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그러한 무례함에 최대한의 방어태세를 갖췄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내가 자주 쓰는 말버릇 중 하나는 "~은 반말이고"이다.


이러한 말의 예민함이 촉매제가 되자 분위기에도 집착하게 되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몇 마디의 말에도 순간의 분위기를 금방 읽어낼 수 있었고 나처럼 예민함의 본연을 적확하게 이해한 사람들은 이를 악용할 수 있는 편법 또한 쉽게 찾아냈다. 그렇게 나는 그를 표현하는 단어인 '가스라이팅'의 의미를 채 알기도 전에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예민함의 분위기를 누구보다 빨리 포착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를 조정하는 타이밍을 빠르게 선점하는 데도 능하다는 뜻이었다. 나에 대한 '예의'에 집착했기 때문에 나는 내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나에 대한 예의가 남에 대한 예의로는 연결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러한 능력을 처음 알아차렸을 때는 이것이 나만의 '특수한 능력'이며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도 사람을 쉽게 조종할 수 있다는 위험한 착각에 빠져 살았다. 분명 그 시작은 예민함을 기반으로 한 '배려'였는데 말이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내 예민함을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 연애는 철저한 갑과 을의 관계였다. 대부분 연하의 대상을 만나왔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쉽게 휘둘렸다. 내 예민함은 특히 다툼에서 자주 나타났는데 당시 나는 철저하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에는 언제나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남성들이 흔히 저지르는 일반화의 오류처럼 내 연인들의 괴로움을 그저 '새벽 감성'으로만 치부했고 어떻게든 이성적인 논리로 그들을 납득시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본능적인 가스라이팅이 자주 발현됐다. 그러니까 나는 이게 나쁘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하나의 '스킬'에 불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는 아주 교묘하게 말의 핀트를 벗어나 상대를 비난했고 그렇게 분명 일정 부분 내 잘못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툼의 끝은 항상 일방적으로 사과를 받아내는 입장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의기양양해졌으며 그들은 쇠약해졌다. 헤어짐을 목도하기 전까지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되려 화를 내거나 어리둥절해했던 이유가 이제야 절실하게 이해된다. 나는 '당연히 내가 맞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과거의 내 예민함을 부정하던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의 예민함을 '틀린 것'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연애라는 특수한 인간관계에서 갑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정복감에 취한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이 예민함은 나보다 더욱 예민한 사람을 연애 상대로 만나자 인지되기 시작했다. 큰 정신불안을 앓고 있던 한 여자 친구와의 만남은 내 이전의 잘못을 더욱 적나라하게 비치는 거울이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더한 예민함을 가지고 언제나 교묘하게 관계의 우위를 점했고 언젠가 이 연애가 나를 너무나 불행하게 만들며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파괴의 감정으로 연결되자 과감한 절단을 결심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내 이전의 여자 친구들처럼 그녀를 떠나갔고 그제야 내가 얼마나 심각한 오류를 범해왔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예민함'이란 타고난 능력의 부재로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는 '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나 나쁘게 행동해왔기 때문에 신이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갔다고 믿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매 순간마다 그를 위해 헌신하고 노력했다고 장담하지만 동시에 예민하기에 지적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다는 것은 결국 진실된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착각했다. "서로 고칠 점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자"는 허울 좋은 가이드라인이었고 애초에 예민함이란, 특히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쉽게 드러내서도,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았기에 내 본모습은 최대한 뒤로 미뤄야 한다고 여겼다.


차라리 나는 "사랑하니까"라는 변명에 힘을 실었다. 사랑하니까 이해해야 하고 모른 척해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 줄 알았다. 끝없는 자기반성은 내 예민함에 모든 탓을 돌렸고 어느 순간 나는 지나치게 민감한 나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혼동했다. 나는 '진정한 사랑이 애초에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아마 내 이전의 그녀들도 이와 비슷한 사고로 나와의 이별을 결심하지 않았나 싶다. 후회는 늦었지만 변화는 필요했다.




이전의 <우울에 체념하는 사람들>에서도 말했지만 감정은 결코 무기화되선 안된다. 그 끝을 뭉툭하게 만들기 위해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그 본연을 파헤치고 이해하는 단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과거 내 예민함의 원인이 '열등감'인 것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것을 서서히 파쇄해야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아무리 찾아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열등감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당연한 것이며 이를 집중 타격해 박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예민해지지 않기 위해 SNS를 삭제하고, 만남의 빈도수와 대화를 줄인다는 것은 사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관계를 회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대안'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러워하는 저 무던한 사람들 또한 어느 측면에서는 예민한 사람들이며 결국 인간관계에서 예민함이란 다른 무형의 감정들처럼 그저 '참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때서야 나와 비슷한 결의 예민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이들은 일상에서 쉽게 발견되었다. 가장 가까운 곳의 우리 엄마는 (아마도 내 예민함의 유전적 원인은 엄마일 것이다.) 누가 봐도 예민한 사람이었고 그랬기에 나와도 극렬하게 대립했던 사람 중 하나다. 엄마의 예민함을 이해하려 했던 지난날을 복기하며 엄마의 예민함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도 그럴만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언젠가 "우리는 모든 게 다른데 어떻게 친구가 되었을까"라고 말했던 그들과 나는 '예민함'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분야와 방향이 달랐을 뿐. 가장 친한 친구 J는 음악을 듣는 취향에서 나와 거의 동일한 예민함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동경했던 친구 H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에서 나와 유사한 예민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우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했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예민함에 대해 흔히 착각하는 것은 혼자만의 '복잡한' 생각으로 '사소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오히려 '직관적인' 생각으로 전혀 '사소하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예민한 사람들은 오히려 신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민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련된 예민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들은 업무적으로 가장 필요한 순간에만 극도의 예민함을 보이며 일을 완벽에 가깝게 수행한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예민의 장치를 'off'한다. 흔히 말하는 직장에서는 유능한 상사, 가정에서는 따뜻한 부모와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예민함이란 야생마의 감정은 길들이기도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민함'의 가장 큰 장점은 입이 닳도록 말해도 부족한 '사랑'에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사랑에 고민한다. 그리고 이 고민으로 인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내게 더 좋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배려의 덕목을 언젠가는 반드시 이해한다. 사람에 따라 그에 도달하는 속도가 다를 뿐, 예민한 사람들의 종착지는 결국 사랑에 있다. 누구나 사랑하기에 참고 산다. 아직 결혼과는 거리가 멀어 철저히 내 기준에서 추측할 뿐이지만, 이혼 사유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성격 차이'는 그래서 이 예민함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차라리 싸웠더라면, 갈등이 있었더라면 분쟁 조정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저 성격 차이로 멀어지는 것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비단 연인 간의 사랑으로만 국한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나의 예민함, 당신의 예민함에는 사랑이 깃들어있다. 나는 남들보다 예민하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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