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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Oct 12. 2020

커튼콜

박수받는 끝

떠난다.


한쌍의 커플을 관조하던 수백, 수천 개의 눈이 떠난다. 각자의 해석에 따라 무대 위의 커플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새드엔딩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도, 이들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커플의 내러티브가 끝났다. 관객들은 박수를 보낸다. 어떤 이는 안도의 작은 박수를, 어떤 이는 완벽한 시나리오에 찬사를 보내는 큰 박수를. 단 두 명의 연출자는 이 의례적인 박수갈채 사이로 각자의 길을 간다.


모두가 아는 것이다. 이 커플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더한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난 그들의 미래에 나름의 축복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 커플은 박수칠 때 떠났다. 그래서 이들은 비교적 아름답게 비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속닥속닥 각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던 관객들에게 이들은 롤모델이자 반면교사였다. 그렇게 소비됐다.




텅 빈 공연장의 뒤편 대기실,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연기를 회상한다. 어쨌든 많은 박수를 받았으니 나름 성공적이다. 그들에겐 초연이었지만 종연인 무대였다. 여자는 챙겨 온 짐을 다시 싸곤 주저 없이 길을 떠난다.


남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그에겐 마지막 장이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커튼콜에 고민했다. 격식에 목을 매고 싶었다. 관객들이 이토록 원하니 우리 다시 무대로 돌아가지 않을래? 그녀에게 제안하고 싶었다.


남자는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막을 가르는 커다랗고 풍성한 커튼 사이의 희미한 빛을 응시했다. 아직도 귀에 선명하게 들린다. 긍정의, 부정의 박수소리가. 그녀의 숨소리가.


남자는 그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꽉 차 있던 관객석은 텅 비어있다. 일순간 허탈함을 느낀다. 정말 우리는 박수칠 때 떠난 것일까. 어쩌면 떠났기에 박수 쳐준 건 아닐까. 혼란스럽다.


차라리 공연을 망치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커다란 비명을 지르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지 말라고요! 우리의 끝이 그렇게 재밌어요?"




남자는 언젠가 흥미롭게 지켜본 몇 개의 커플들을 기억해냈다. 그도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끝에 박수를 보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둘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마냥의 응원을 전하는 것.


그들은 휘파람을 섞은 커다란 박수소리에도 앙코르를 진행하지 않았다. 몇 분 정도 그들의 끝인사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당연하단 표정으로 썰물과 같이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결말은 저녁 메뉴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울고 싶어 졌다. 곧 있을 다음 공연의 커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땅이 꺼졌으면 했다. 그러나 땅은 꺼지지 않았다. 


그때, 남자의 눈에 작고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무대 한가운데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언젠가 맞췄던 싸구려 은반지였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가락을 확인했다. 


그의 손가락은 휑했다. 남자는 잠시, 그 모습이 참으로 우스워 픽하고 웃었다. 너무 연출 같잖아. 이제 그에게 결말은 더는 중요치 않았다. 어쩌면 또 한 번의 커튼콜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의 연기는 보잘것없었다. 분명한 진심이었으나 다분히 작위적이었다. 원래 끝이란 그런 것이었다.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마지막 장을 덮는 것처럼, 박수를 보내는 것처럼 그냥 그런 것이었다.




남자는 대기실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한다. 소품이 많았고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다. 운이 좋다면 이른 시간 내에 또 다른 무대에 서겠지. 그는 주웠던 은반지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그리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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