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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Oct 22. 2020

분실물

찾지 말고 놓아줘

지갑을 잃어버렸다. 


택시 안에서 뒤늦게 이를 깨닫고 처음 든 생각은 잃어버린 것을 얼른 되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아닌 야속한 세월의 흐름이었다. 내 기억력이 어느새 이렇게까지 나빠졌구나. 사소한 물건 하나 쉽게 잃어버리지 않는 게 내 장점 중 하나였는데. 충격이 제법 컸다.


하지만 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현실적인 문제가 나를 덮쳤다. 당장에 지불해야 할 택시비가 없어 부랴부랴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러냈고 그 자리에서 두 개의 카드를 정지시켰다. 더 큰 문제는 지갑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경로에 따라 경우의 수는 늘어만 갔다. 그 날 지났던 동선을 머릿속으로 차근히 되짚었고 거쳐갔던 모든 장소에 전화를 돌렸다. 어느 곳에도 내 지갑은 목격되지 않았다.


친구는 그냥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어차피 이 넓은 서울에서 내 지갑을 찾을 확률은 희박하다고. 정말 착한 사람이 우체통에 지갑을 넣어줬길 기대하자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이다. 아마도 상실에 대한 공포보다는 그것을 회수하는 과정의 귀찮음과 끝내 찾지 못할 분실물에 대한 무의미한 미련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항상 꼼꼼히 소지품을 체크했고 어딜 가든 입버릇처럼 붙은 말 중 하나가 "뭐 놓고 온 거 없지? 잘 확인해봐"였다. 그렇다. 나는 무언갈 잃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잃어버리지 않게 환기하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나는 무언갈 잊어버리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잃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잊음 또한 두려워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 어디서든 잊고 싶지 않은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을 길렀고 덕분에 아주 사소한 것조차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꽤나 쓸모가 있었다. 누군가의 작은 변화조차 빠르게 눈치채는 데 능숙해졌으니까.


그렇게 어느 순간 나는, 잃지 않음과 잊지 않음의 오만함에 빠졌다. 그 오류에 속아 나의 상실을 남의 탓으로 돌렸다. 내 칠칠맞음과 망각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그러니 어느 누구도 허락 없이 내 소유물을 가져갈 수 없다고. 나는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무언갈 빼앗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내게 신이 벌을 내렸나 보다. 성격상 잘 잃지 않고 잘 잊지 않다 보니 필요에 맞게 자주 잃고, 자주 잊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됐다. 그런 나를 그녀들은 부러워하면서도 이기적으로 굴었다. 나를 떠나갈 때면 본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를 잊고, 또 잃었으니까.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잃음과 잊음은 꼭 필요한 순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은 순식간에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런 내게 친구는 경찰청에서 관리하는 유실물 종합관리시스템을 뒤져보라고 충고했다. 분실물 목록을 전국 단위로 조회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였다.


그곳에는 주인을 잃은 수많은 분실물들이 너저분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어림잡아 20페이지가 넘는 분량. 이렇게 많은 분실물들 사이에 설마 내 지갑 하나 없겠어? 지갑 카테고리를 찾아 회색 루이비통을 검색했다. 게시물을 하나씩 읽어 나갔다. 띄엄띄엄 사진이 첨부된 분실물도 있어 확인이 편했다. 이 정도면 내 분실물도 있겠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 어느 게시글에서도 내 것과 비슷한 지갑은 찾을 수 없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분실물들을 1분 단위로 주시했으나 늦은 밤이 될 때까지도 내 지갑은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너무나 외로워졌고 눈물이 났다. 많은 현금이 든 비싼 지갑이기도 했지만 그 속에는 더 소중한 것들이 있는데. 내가 아주 따랐던 형이 써준 메모와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들, 내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주민등록증과 지나간 추억을 버리지 못해 보관했던 수많은 티켓과 영수증들. 딱히 필요하지 않은 자잘한 것들이었지만 잃고 싶지도 않았다.


그다음 날도 잃어버린 지갑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슬펐던 감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나쁜 사람들. 남의 지갑을 주웠으면 경찰서나 우체국에 전달해야지. 현금만 홀라당 빼먹고 내 지갑은 CCTV가 없는 구석진 쓰레기통 어딘가에 처박아 버렸겠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지하철 분실물 센터를 찾았다. 경찰서를 방문하기에는 어딘가 과하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꼭 찾아야 한다며 간절함을 보인 그곳에도 내 지갑은 없었다. 좌절하는 나를 보며 딱한 표정을 짓던 담당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네요. 이렇게 많은 분실물들이 아직도 제 주인을 못 찾아가고 있는데. 여기 오래된 건 몇 주 됐을걸요? 보관기간이 지나면 다 버려지는 것들인데. 이상하게 꼭 찾고 싶어 하시는 분들 소지품은 잘 없더라고요. 찾을 생각이 없으신 분들은 그냥 여기에 버리고 가는 것 같고요. 참 아이러니하죠?"




상실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들은 왜 항상 나만 증거투성이의 범죄 현장으로 떠밀까. 내가 진짜 상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늘 선명한 흔적을 발견할 때뿐이다. 무언가를 찾아야만 잃은/잊은 것을 느낄 수 있다니. 잃어버린 내 지갑처럼, 잊어버린 그들에 대한 기억처럼 이제는 미련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구태여 내 손을 떠난 것들을 되찾으려 하기보다는 아쉬워도 그냥 놓아줘야 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은행에 들러 새 카드를 발급받았다. 어차피 유효기간이 다 돼가던 카드였으니 차라리 잘됐어. 마그네틱 선이 손상되지 않은 반짝반짝한 카드를 예전에 쓰던 낡은 지갑에 넣었다. 다음으로 구립 도서관을 찾아가 미리 신청한 새 도서카드를 수령했다. 다행히 추가 요금을 요구하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새로 찍은 증명사진 하나와 신청 수수료 5천 원을 들고 동사무소에 들러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신청했다. 빠르면 다음 주쯤 찾을 수 있다는 직원의 설명을 뒤로하고 임시 신분증을 챙겨 바깥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딘가 홀가분했다.


뜬금없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분실물을 보관하고 있다는 우체국의 연락이었다. 반드시 본인 확인 후에만 수령할 수 있다는 말에 먼 곳에 있는 큰 우체국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갈색 속달 봉투의 발신자는 경찰서로 되어있었다. 그 속에는 지갑은 물론 그 안의 현금과 내 추억들까지 고스란히 남이 있었다. 잃음과 잊음에서 자유로워지니까, 놓아주니까 되려 내게 돌아오는구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나흘 만에 지갑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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