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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Oct 21. 2020

김가인

잘 살고 있니

내 첫사랑의 이름은 김가인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일 것이다. 내가 3학년 때 전학을 갔으니 1학년 아니면 2학년, 둘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마 2001년 아니면 2002년일 것이다. 우리는 같은 반이었지만 그게 몇 반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동갑이었으니 94년생 일 것이고 이름은 확실하게 김가인이 맞다. 그 당시 내가 다닌 학교는 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구학초등학교였다. 내가 가진 정보는 이게 전부다. 혹시 그녀의 근황을 조금이라도 알거나 알 것 같으신 분들은 메시지를 살짝 보내주시면 사례하겠다.




사람들은 말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물론 나는 가인이에게 사랑을 포함한 그 어떤 감정도 일절 남아있지 않다. 우리에겐 20년에 가까운 미싱 링크가 있으니까. 그저 그 친구를 좋아했던 게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사랑의 감정이었다는 사실관계를 직접 증명하고 싶을 뿐이다. 아, 그렇다면 정체모를 그리움은 조금 남아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다들 첫사랑은 찾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요새 나는 이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스물일곱의 김가인은 어떻게 생겼고 뭘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첫사랑이었는가를 곰곰이 따져보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그 시절엔 사랑이라고 해봤자 교실에 나란히 앉는 짝이 되고 싶은 정도라고 생각했을 텐데 과연 이걸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분명 2차 성징 이후 몸이 먼저 반응했던 생물학적 첫사랑은 다른 사람일 텐데. 그러나 그 사람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존재하긴 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인이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정확한 실체가 있고 당시의 생김새도 나름 기억한다.


당장 떠오르는 가인이의 옛 얼굴은 객관적으로 그다지 미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첫사랑의 추억 보정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할 텐데도 왜인지 모르게 그리 예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어딘가 아파 보일 정도로 눈이 컸고 얼굴이 하얬으며 늘 잔머리 하나 없이 깔끔한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다녔다. 두상이 지나치게 동그래서 머리가 실제보다 커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목소리가 어땠는지, 취미가 무엇이었는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같은 세부적인 내용들은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딱 하나, 가인이 때문에 한 친구를 질투한 기억이 가슴 깊이 남아있다.




내가 여태 몇 명의 연인을 만났냐는 질문에 그 대답의 숫자가 달라지는 이유는 바로 이 첫사랑 때문이다. 매번 첫사랑이라고 느낄 만큼 혹은 그렇다고 착각할 만큼 새로운 감정들을 여럿 느끼다 보니 어느 때는, 특정 시점부터를 진정한 연애의 시작점으로 카운트해야 하는 게 정당하지 않나 싶은 거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헤어졌지만 나는 매번 인큐베이터 안에서 최선을 다 했다는 뜻이다. 꽤 오랫동안 네 명이라고 착각했고 최근엔 두 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또 다르다.


다들 첫사랑이라고 하면 나만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만큼 서로가 달착지근했으니 그러려니 싶다. 실제로 첫사랑과 연애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나처럼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둘의 차이는 전자는 결국 그 연애 또한 '다를 바 없었다'라고 회상하지만 후자는 '분명 다를 것이다'라고 막연한 확신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 중 아마도 그 힘이 가장 셀 것이다. 불현듯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내 첫사랑은 가인이었는데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까.


현대 철학의 가장 큰 통찰 중 하나는 '언어로 모든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주장하는 억지에 따르면 절대적 진리는 오직 사랑뿐인데 그렇다면 이 '사랑'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 진리에 첫-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문득 이창동 감독의 <버닝> 속 대사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건 재능으로 하는 게 아니야. 뭐냐면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그게 다야.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돼."




다시 돌아와서 내 첫사랑. 기억의 무덤에서 벗어난 유일한 에피소드는 매달 초 모든 학생들의 자리를 재배치하던 구학초등학교의 한 교실에서 시작된다. 매번 자리를 특이한 방법으로 바꾸던 담임 선생님이 그날 고른 방법은 지금 생각해도 참신했다. 그것은 바로 뽑기를 통해 무작위로 선정된 여학생이 마음에 드는 남학생을 데리고 원하는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남학생의 거절은 거절됐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당시 유행했던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뽑기가 시작되고 교실에는 진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내심 가인이가 나를 선택해주길 바랐다. 어느덧 자리가 절반 조금 넘게 채워졌을 때쯤, 당시 반에서 가장 덩치가 큰 여학생이 순서로 뽑혔고 그 친구는 조용히 내 앞에 섰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삼 분단의 맨 앞자리에 앉았고 뒤이어 가인이가 한 남자애를 이끌고 우리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여덟 살 혹은 아홉 살의 나는 처음으로 속에서 어떤 불길이 일어났다.


언젠가 가인이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술 한잔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어쩌면 꿈같은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만나지도 못한 가인이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며 설사 내가 먼저 알아보더라도 가인이의 기억에는 내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쩌면 내 기억의 김가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로 모든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더니. 사실 없다는 사실을 잊는 것은 있다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게 아닐까. 


잊어야 할 첫사랑의 뒷맛은 언제나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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