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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Oct 25. 2020

중립기어를 외치는 사람들

중립기어를 지키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눈

지금은 '혐오의 시대'다. 요즘 들어 인터넷 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댓글 유형이다. 발전하는 디지털 환경과 다르게 퇴보하는 표현의 자유 때문일까. 최근 여러 논란들에서 파생된 슬픈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이라는 특수한 장소성에 큰 피로감을 표출하고 있다. 뭐만 하면 혐오, 뭐만 하면 프로 불편러.


특히 남녀 간의 성별 갈등이 심하다. 한때 남성들에게 '일베충'이라는 단어가 내 부모님을 욕하는 것보다 더한 모욕의 표현이었다면 현재는 여성들에게 '메갈'이라는 키워드가 그렇다. 각각 급진적인 보수와 진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혐오' 또한 큰 틀에서는 각자의 진영논리를 대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니 말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 짙게 깔려있는 지역 차별처럼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전투민족을 희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 하나 죽을 때 까진 멈추지 않는 전투.


이 와중에 '중간'을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간인 '척'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우리의 진영논리처럼, 흑백논리처럼 완벽한 '중도'란 노자나 장자와 같은 사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우리와 같은 범인들에게는 한낱 이상향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시민과 손석희를 중도 인사라고 오판하듯 본인은 완벽한 중앙에 위치해 사건 사고를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중립기어'라는 말이 탄생했다. 다들 알다시피 차량의 기어 상태를 중립으로 두는 것을 뜻한다. 굳이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중립기어와는 의미가 약간은 다르지만 그냥 넘어가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균형'일뿐이니까.


차량의 중립기어


인터넷 유행어로서 이 중립기어는 사건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로 섣불리 누군가의 편을 들어 반대편을 비난하는 행위를 자제하자는 뜻으로 사용된다. 주로 '박는다'가 뒤에 붙어 '중립기어 박아라', '중립기어 박는다' 등으로 사용된다.


재밌는 점은 중립기어를 희망하는 사람 치고 '중립기어를 박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립기어는 명백하게 본인과 척을 지는 입장들을 비난하거나, 비슷한 입장들을 옹호하는 데만 사용된다. 가장 가까운 사례를 한 번 들어보자. 최근 유튜브를 통해 제작된 콘텐츠가 지상파 예능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시한 피지컬 갤러리의 <가짜 사나이> 시리즈를 통해 큰 인기를 얻은 '이근 대위'다.


트위터


그는 최근 여러 미디어에 노출되며 범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유명인사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지금,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극복'을 희망하는 심지가 있었고 <가짜 사나이>는 여기에 불씨를 지폈다. 그 최대 수혜를 입은 이근 대위는 현재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인플루언서다. 성공한 군사 전략가이자 한 명의 애국자로서 그는 국민들의 큰 지지를 얻어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최근 수많은 구설수가 붙었다. 흔히 비하의 의미로 '사이버렉카'라고 불리는 사회 이슈를 다루는 유튜버들에게서 이 구설수들이 대거 불거졌다. 그들에 따르면 이근 대위는 빚투와 성추행, 폭행, 동료의 스카이다이빙 사망사고 연루, 거짓된 UN 소속이라는 커리어를 만든 '거짓말쟁이'다.


유튜브, <가짜 사나이> 속 이근 대위


이 중립기어와 연관된 수많은 사례들 중 최근 이근 대위의 사건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근래 들어 '도의'와 관련된 수많은 잣대가 정치인에서 엔터테이너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것은 디지털 플랫폼을 꾸준히 팔로우 업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인정할 것이다. 어느덧 '공인'의 애매한 기준은 인플루언서라고 부르는 일반인에게까지 전파되었고 소위 말하는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구설수는 피해 가기 힘든 이들의 숙명이 되었다.


그 와중에 '사과'의 유무는 중립기어를 판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오죽하면 요즘 사회는 사과하면 더 욕을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최근의 유튜브 '뒷 광고 사태'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빠르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유튜버들과 달리 입을 싹 닫고 본인의 행보를 이어나가는 유튜버들이 오히려 더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수정과 개선을 요구했던 누리꾼들이 되려 그 피드백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더한 지탄을 가하고 있다는 게. 이제 '잘못했으니 사과한다'는 당연한 인과관계는 중립기어를 깨부수는 말이 되었다. 어? 사과했어? 그럼 잘못했다는 거 인정한 거지? 그럼 더 욕먹어!


스포츠 경향, <유튜버, 왜 ‘사과 무한루프’에 빠졌나>




이근 대위는 여기서 일반인들이 쉽게 보일 수 없는 나름의 '뻔뻔함'을 보였다. 빌린 돈을 갚았느니 하는 사실관계 확인이 모호했던 '빚투'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중립기어를 외쳤고 그 결과 이후 당사자들끼리 잘 합의가 되긴 했으나 그가 빚을 갚지 않았다 것은 팩트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는 곧장 '2백근'이라 불리며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유튜브를 통해 멋있는 남자, 쾌남의 표본이 된 그가 일순간 찌질이가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딘가 약간 모자란 군인의 이미지가 있었다.


에펨코리아


그러나 이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동시에 일종의 뻔뻔함이 추가된 것은 그 이후의 성추문 사건부터이다. 그는 뜨겁게 불거진 성추행 이슈에 관해 본인의 성추행 전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인은 성추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커뮤니티 게시글을 통해 강남역 사건 이후 만연해진 남성 혐오의 피해자처럼 느껴지는 이미지로 반대급부를 형성했다. 이러한 입장표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기점이 되었다.


'곰탕집 사건'처럼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일견 이해하기 힘든 성추문과 관련된 사건이 이근 대위에게도 일어났다는 호소를 통해 사법부가 판결을 내린 범죄 행위에도 중립기어가 적용된 것이다. 서면 상 그는 분명한 범죄를 저질렀으나 나를 비롯한 남성들의 마음속에 언제든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방어기제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이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오히려 뻔뻔하기에 이근이 더욱 마음에 든다는 일부 사람들의 의견 또한 나름의 당위성이 있다고 느낀다.


유튜브, <이근대위 ROKSEAL>


그렇게 커다란 성추문 이후 그는 크고 작은 구설수를 그만의 방법으로 돌파하고 있다. 스카이다이빙과 관련된 동료의 사망 소식을 물고 뜯은 '가로세로연구소'에는 직접적인 고소 조치와 강력한 반박문으로 '상남자' 스탠스와 이미지를 굳혔고 수많은 광고 촬영들이 무산되고 삭제된 상황에서 본인이 홍보 모델이 되어 유명해졌던 롯데리아의 '밀리터리 버거'가 빠르게 그를 손절한 부분을 희화화하듯 버젓이 콘텐츠로 바꿔냈다.


유튜브, <이근대위 ROKSEAL>


이제 그에게는 '중립기어'가 무의미해졌다. 사실이 명확한 구설수와 그 경계가 희미한 몇 개의 구설수 사이에 그는 이제 얼핏 보기에 나름의 해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중립기어란 뜨거운 냄비임을 인지한 것이다. 여태 수많은 사건들이 그랬듯이 그는 사과가 오히려 더 큰 불을 지피는 행동임을 깨닫고 그가 <가짜 사나이>에서 보여준 이미지를 고스란히 옮긴 대처를 유지하고 있다. 욕할 사람은 욕해라. 나는 떳떳하다. 어찌 보면 그는 정말 뛰어난 이미지 메이커일지도 모르겠다. 판단은 늘 그랬듯이 여러분의 몫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중립기어를 외치되 그것을 제발 눈으로만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이근 대위 사건으로만 국한할 문제는 아니다. 누구나 중립기어를 박지 않아 일어났던 수많은 부작용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지금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중립기어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발 명확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중립기어를 박고 기다리자고. 욕은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나는 더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늦지 않은 욕은 없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지하는 '눈'이지 배설하는 '손가락'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중립기어를 박지 못한다. 본인이 자라온 환경을 쉽게 무시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슬픈 사건들을 통해 인터넷 상의 수만 개의 손가락이 몇 개의 생명을 앗아간 것에 우리는 자정작용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여전히 중립기어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법이 그렇다는 데 무슨 중립기어야?"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돌 던질 자격이 생기는 건 또 아니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사람은 다 이기적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중립기어를 희망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가 작은 화면을 통해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손가락을 놀리지 말라. 어려운 일도 아니다. 분개할 만한 상황들을 인지하고 본인의 취향껏 이전과 이후의 과정을 상상한다. 욕을 해도 된다. 다만 그것을 어딘가에 표출하지 말라는 뜻이다. 화가 나더라도 손가락은 댓글창이 아닌 '뒤로 가기'로 향하고 더한 분노가 느껴진다면 차라리 홈 버튼을 눌러 화면을 off 하라는 말이다. 적어도 그런 '악플'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일수록 설령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중립기어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입으로만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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