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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Nov 05. 2020

<Love and a boy> <도망가>

사랑은 나를 어리게 만든다


MINO는 음악을 잘한다



송민호(MINO)의 두 번째 정규앨범 [TAKE]가 베일을 벗었다. 그가 전작 [XX]를 통해 선보인 랩 퍼포먼스는 '아이돌'이라는 지루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이 그만의 매력을 보여준 수작이었다. 물론 YG 특유의 뽕끼 있는 음악이라는 비판에서 완벽하게 피해 갈 순 없었지만 그가 간간이 피처링을 통해 보여주던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랩'을 가감 없이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의 두 번째 정규앨범인 [TAKE]는 그보다 더 집약적인 앨범이다. 그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허당미있는 매력과 달리 실제 그의 행보를 팔로우업 해보면 상당히 예술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특히 특유의 미적 감각이 그의 랩 디자인과 단어 선택, 프로덕션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음이 느껴진다. 


전작 [XX]가 밝은 색을 주로 사용한 커버를 통해 본인의 솔로 커리어의 시발점을 나타냈다면 이번작 [TAKE]는 무거운 빨간색을 통해 더 짙어진 감정을 표현한다. 바로 '사랑'이다. 얼핏 보기에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엔터테인먼트로써 음악 산업에서 사랑이란 너무나 자주, 많이 소비된 주제이니까.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법에 따라 진부함은 참신한 보편성을 가지기도 한다. 누구나 사랑과 이별을 겪으니까.


재미있는 점은 예상했던 작법을 그대로 따라가는 트랙이 있는 한 편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이끌고 나간 트랙도 있다는 점에서 송민호는 개인 커리어의 과도기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골수팬들은 그가 <연금술><StrOngerrr>에서 보여준 재능을 아까워하지만 어쨌든 그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이름 있는 팝스타 중 하나다.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그의 지금은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속에 잉태한 [TAKE]는 제법 괜찮은 돌파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반응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나는 이번작을 통해 송민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확실히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다.


이번 편의 가사도우미에서는 그의 1번 트랙 <Love and a boy>와 2번 트랙 <도망가>의 연속적인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송민호는 그만의 작법으로 이별의 과정을 특색 있게 풀어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xGhWxmng1M



환상 몰입


[Verse 1]


Keep that 

Drop it 

쉽게 가지 

마음은 원래

미끄러워 Savage



우선 <Love and a boy>다. 작사 표기에도 다음 마디들과 구분 지어 있는 점을 봐서 따로 떼놓고 해석해야 할 부분이다. 이 짧은 파트는 곡 속의 화자가 말하는 누군가와의 추억으로 들어가는 도입부다.


Drop it을 유지(keep that)하라는 부분은 무언가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추락'을 긍정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이별로 추측되는 감정의 하강을 받아들이며 그는 환상으로 몰입하기 시작한다. '마음'이란 원래 쉽게 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 안에 '미끄러움'을 통해 수직의 이미지를 세련된 방식을 통해 수평의 이미지로 바꿔버린다. 그러곤 말한다. 이것은 야만적이라고(Savage).



다 큰 스물여덟

꼬맹이 만들어 버린 이모션 

설교 시간 같은 곤욕 

난 배가 고픈데 

That love 그림 같아 바니시칠이 잘 돼있는 

칠이 잘 돼서 혀를 댈 뻔했다가 

정신이 들었을 땐 뱃속에 어? 

이미 먹은 듯해 어째 더부룩해 

그래서 체한 듯해 그때 뇌 속에 

지배했네 네가 지배했어 너가 

오늘은 안 예뻐 너가 

안 예뻐 너가 For real



화자는 창작자인 송민호와 같은 28살이다. 그는 지금 위에서 설명한 어떠한 이모션(=감정, 마음) 때문에 꼬맹이가 된다. 그리고 곤욕을 치른다. 설교 시간 같은 곤욕을. 재밌는 점은 이 부분이 어떤 장소성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물론 꼬맹이로 만들어버린 '사랑'이 그를 피곤하게 만드는 설교 시간처럼 느껴져 곤욕스럽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다. 하지만 뒤의 훅 부분에 등장할 '꼬드김'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는 마치 이별한 상태인 지금의 화자가 친구들에게 수없는 연애 조언을 듣고 있는 술자리로 느껴지게 만든다.


곤욕스러운 설교를 피해 지금부터는 화자만의 망상(환상)으로 빠지는 타이밍이다. 그는 배가 고픈데 저기 저 '그림'같은 사랑은 바니시칠이 잘 돼있어 먹음직스럽다. 창작자로서 송민호가 미술에 특화된 재능이 있는 부분을 감각적으로 건드린 묘사다. 화자는 그만큼 맛있어 보이는 그림에 혀를 댈 뻔하다 문득 떠올렸을 땐 뱃속에서 어떤 반응을 느낀다.


'먹은 듯'하다는 표현이 있어 진정한 섭취가 이루어졌는지는 아리송하다. 하지만 어째 더부룩한 것을 보니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체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 순간, 그의 뇌는 '너'가 지배한다. 마치 SF영화에 등장한 외계 생명체를 집어삼킨 주인공과 같은 모습일까. 그렇게 지배된 너를 상상하며 화자는 "너, 오늘은 안 예뻐"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심일까 거짓일까. 필자는 현실을 위해 부정하는 모습으로만 느껴진다.




환상 회귀

   


[Hook]


다 깨졌어

환상이 와장창

너네들 다 왜 그래

나한테만 못됐어 


Love and a boy (Love and a boy) 

Love and a boy (Love and a boy) 


두 번 다신

절대 안 해 이딴 거

나 좀 그만 꼬드겨

너네 속 다 보여


Love and a boy (Love and a boy) 

Love and a boy (Love and a boy)



랩 벌스를 진행하던 톤과 다르게 거친 샤우팅을 통해 앞선 환상이 깨진 점을 청각적으로 표현한다. 일견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Flower Boy]가 생각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환상을 와장창 깨부순 대상이 누구냐는 점이다. 이는 필자가 앞서 말한 '지루한 설교'를 늘어놓는 친구일 수도 있으며 직접적인 대상인 '너'일 수도 있다.


어쨌든 곡 속의 화자는 그들에게 탓을 돌린다. 너네들 왜 나한테만 못됐어. 나 좀 그만 꼬드겨. 너네 속 다 보여. 사랑이 스물여덟의 그를 꼬맹이로 만든 것처럼 이별도 단순히 누군가의 탓을 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철없음을 만든 것일까.




현실 직시



[Verse 2]


사랑받으면서 사랑을 잡을 줄 몰라

그래도 받았으니 주려 해도 주는 법을 몰라

고여버린 사랑은 악취가 나기 마련

그래서 코를 막았더니 너의 향기가 그리워 



훅을 지나 현실을 직시하는 두 번째 벌스 속 화자다. 첫 라인들부터 송민호가 얼마나 가사를 잘 쓰는 아티스트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을 잡을 줄 모르고 그래도 받았으니 주려했지만 주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랑에 어리숙한 화자는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는 늦다. 그렇게 하나의 사랑은 고여버렸고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악취를 피해 코를 막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너'의 향기가 그리워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방황해 난

몇 주째 취해있나 

배부른 소리 백날 맨날 


필요해 내 등에 배터리 

고봉밥 같은 재떨이

개중 한두 개비엔 버건디 립스틱 자국이


괘씸해 어디든 네 흔적이 

빽빽하게 채운 책장이 

왜 죄다 위로 말들 인가 

하나도 안 고마워 미움받을 용기 없어 난



하지만 그렇다고 막은 코를 푼다면 또다시 악취를 맡게 될 테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 라인을 빠르게 뱉어내며 그 혼돈을 잘 표현해냈다. 이는 뒤에 소개할 <도망가>에서도 의식적으로 쓰인 청각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방황하게 된 화자는 몇 주째 취해있다. 늦은 후회만큼 늦은 배부른 소리를 한탄하며 말이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휴식의 행위는 등 뒤에 꼽는 배터리이며 고봉밥 같이 담배가 쌓인 재떨이다. ㅐㅓㅣ로 라임을 맞추면서도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뜬금없는 단어 선택으로 랩의 텐션을 효과적으로 이어나갔다. 필자가 생각하는 송민호의 장점은 이러한 '의외성'이다. 뒤에 붙는 라인마저 완벽하다. 개중 한 두 개비에는 버건디 립스틱 자국이 남겨져있다는 묘사를 통해 '그리움'과 그를 극복하는 과정의 모순을 짚어낸다.


그렇게 화자는 괘씸함을 느낀다. 어딜 가든 '너'의 '흔적'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 흔적은 책장을 빼곡하게 채울 정도다. 그런 화자를 향해 지루한 설교를 날리던 친구들은 죄다 위로의 말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이 하나도 고맙지 않다. 스물여덟의 그는 지금 감정이 두려운 꼬맹이가 되었고 미움받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흔적으로부터의 도망



[Verse 1]


숨이 가빠지잖아 시야도 좁아지잖아 

눈에 뵈는 게 없어 널 삼킬지 몰라 

떠오르네 마구 우리의 담소 

알콜에 담겨 추억을 섞어

널 잔뜩 마시고 나 비틀거리고


도망가 가가가가 가가가가 

도망가 가가가가 가가가가 

도망가 가가가가 가가가가 

도망가 가 가 가 


내게로부터 멀리



그렇게 이어지는 2번 트랙이자 앨범의 타이틀 곡인 <도망가>다. 2분 25초의 러닝타임으로 아주 짧은 곡이다. 최근 들어 해외의 유명 힙합 아티스트들이 연달아 곡의 볼륨을 줄이는 것에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 프로덕션이며 동시에 아마도 '너'의 흔적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으로 예측되는 곡의 제목처럼 빠르게 휘발되는 감정에 대한 좋은 은유로도 느껴진다.


훅으로 시작하는 초반부를 보면 화자는 술에 취해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술을 마시다 보면 숨이 가빠지고 시야도 좁아지며 눈에 뵈는 게 없다. 그런 취기의 힘으로 그는 '너'를 삼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또한 '술을 털어 넣는다'와 '너에 대한 기억을 잊는다'의 중의적인 표현이다. 술김에 마구 떠오르는 우리의 담소와 추억을 알콜에 섞어 잔뜩 마시고 취해버리는 화자. 그리고 외친다.


도망가라고. 내게로부터 멀리 도망가라고.




기억이 나쁜 짓을 하기 전에


    

[Verse 1]


가버려 코빼기도 보이지 않게 

이름도 바꾸고 성형도 잔뜩 해서  

혹여 잔뜩 취해 널 찾아다닐 때 

코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게끔

두리번 하다가 포기하게


아니면 우린 다칠게 뻔해 

여지 주지 말고 컷 해


기억은 편집증이 되려 해



내게로부터 멀리 도망갈 '너'에게 말한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이름도 바꾸고 성형도 하라고. 혹시나 지금처럼 잔뜩 취해 널 찾게 될 때면 코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게끔, 두리번거리다가 포기하게끔. 연애와 이별을 겪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아주 현실적으로 잘 표현한 라인이다.


우리는 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우리는 다칠 게 뻔하니 말이다. 이별을 후회하고 다시 붙잡고 똑같은 순환의 고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사랑이 끝날 때는 화자의 말처럼 누군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화자는 그 어떤 여지도 주지 말고 자르라고(Cut)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은 잔인한 편집증이 되어 삼켜버린 술처럼 우리 사이를 삼켜버릴지도 모르니까. 명확하게 '편집증'이란 단어를 앞의 '컷'과 연결 지어 편집, 증이라고 표현하는 세심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조울증의 파동 위아래로 심해짐에 

진해지는 위스키 언더락 내 손에 쥐네 

네 계정에 올라온 의미심장한 글에 휘둥그레

눈에 쌈지불이 붙네 고고학자처럼 구네 


그래 그래 내가 먼저 도망가자 

찢겨진 모양 따라 

슬픔이 자리 찾아 굳어지기 전에 난



타이트하게 짜인 라인들이 뒤따라 붙는다. 가사 또한 매우 훌륭하지만 이번 앨범 속 최고의 랩 퍼포먼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아주 치밀하게 짜인 라임은 물론 빠르게 달려가는 랩에 맞춰 비트 또한 변주되며 BPM을 맞추는 포인트가 인상적이다.


화자는 술을 마실수록 조울증이 심해진다. 그럴수록 온 더 락으로 마시는 위스키는 더욱 진해진다. 홧김에 켠 인스타그램에는 여전히 훔쳐보고 있던 네 계정 속에 의미심장한 사진과 글이 업데이트된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멀리 도망가지 않았으니, 컷 하지 않았으니 미련이 남는 것이다. 괜한 일상에도 불이 붙는 눈 때문에 화자는 고고학자처럼 모든 게시물들을 발굴해 나가기 시작한다. 누구나 느꼈을 이별의 후폭풍을 재치 있게 잘 표현했다.


그렇게 화자는 다짐한다. 그래 그래, 네가 도망가지 않는 다면 내가 먼저 도망가자. 헤어진 모양, 찢긴 모양에 따라 생긴 균열을 메꾸기 위해 '슬픔'이 자리를 찾기 전에. 굳어버려 잊히기 전에 도망가자.




피할 수 없다면



[Verse 3]


멀리도 갔네 흔적도 없게 

뒤 한번 안 보고 일몰이 되었네

나만 뜨겁게 왔다 갔다 반복해 

이별은 로맨스 사랑은 Run away 


특별한 기억을 주면 너는 감동해 

다시 안 올 내 마음에 왔다감이라 적네 

그러면 나는 경찰처럼 널 잡으러 갈래  

더 구속하기 전에 저 멀리 도망가 



곡의 후반부다. 이 벌스의 재밌는 점은 어딘가 모르게 도망간 화자를 '너'가 의도치 않게 쫓아온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는 앞서 다짐한 것처럼 흔적도 남지 않게 멀리도 도망쳤다. 뒤 한번 안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진 일몰의 상태다. 하지만 이렇게 뜨겁게 왔다 감(일출과 일몰)을 반복하는 것은 화자뿐이다. 이별이 오히려 그를 '바쁘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별은 로맨스가 되고 사랑은 도망(Run away)이 된다. 얼핏 듣기에는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 보니 오히려 더 로맨스를 느끼는 아이러니로 보인다.


분명 과거의 '너'는 화자가 준 특별한 기억 때문에 감동했다. 하지만 그를 떠나간 '너'는 다시 오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게도 내 마음에 '왔다감'이라고 적는다. 마치 해돋이를 보러, 일몰을 보러 유명 관광지에 들렀다 사랑의 서약을 담은 낙서를 남기는 커플처럼. 하지만 이 '왔다감'은 '오지 않음'보다 후유증이 크다. 그러니 화자는 내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간 너를 낙서를 남기고 간 그들을 잡는 경찰처럼 잡으러 가겠다고 말한다. 더 구속하기 전에 저 멀리 도망가라는 말을 남기며. 



내 눈앞에서 사라져 제발

도망가 가가가가 가가가가

도망가 가가가 꺼지라고

도망가 가 가 가


내게로부터 멀리



하지만 반대로 이 부분은 화자와 '너'를 바꿔 대입해도 성립하는 말이다. 혹은 '쫓아옴'에 무게를 실어도 틀리지 않은 작법이 된다. 너를 잊으려 도망갔는데도 진한 버건디 색 립스틱처럼 끈질기게 나를 쫓아오는 너에게 제발 사라지고, 꺼지라고 외쳐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랑. 어쩌면 '내게로부터 멀리'라는 말은 '네게로부터 멀리'로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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