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과 편안함을 신어요
지난 주말, 신발장에 있던 신발 세 켤레를 정리했다. 멀쩡하지만 잘 안 신는 몇 년 전 산 운동화와 어느 여름 결혼식에 신고 가려고 급하게 산 불편한 스트랩 샌들 힐, 세탁기에 돌려 밑창이 찢어져 너덜거리는 운동화까지. 지금 이렇게 써보니 세 켤레의 행선지는 예전부터 쓰레기통이 분명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세 켤레의 신발을 버리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던 걸까.
최근에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신박한 정리에서는 정리의 기본이 버리기라고 했다. 이론은 당연히 나도 오래도록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런데 물건은 쉽게 정리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나름의 방법으로 쓸데없는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 예를 들면 귀여운 인형, 아기자기한 컵, 감각적인 소품과 향초들. 일단 실용성이라는 체크리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사지 않겠다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멀쩡한데 쓰지 않는 물건은 친구에게 나누거나, 당근마켓에 싸게 올렸다. 그렇게 당근테크에 입문하며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하게 정리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자 물건의 홍수 속에서 조금씩 물이 말라 가는 듯했다.
그런데 이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신박한 정리>가 화근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너저분한 집과 공간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으며 "어머, 너무 심각하다"를 외쳤는데,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이 나에게 쏠렸다. 이어지는 "너는?"이라는 엄마의 일침의 타격감은 무시무시했다. 잔소리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항변 거리는 있었다. 직업과 내가 거친 회사의 특성상 인쇄 출판물을 다루는 일이 잦았고, 그것들은 모두 내 흔적이 됐기 때문에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디터 5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 내 방에 책은 책장을 차고 넘친다. 내 공간 정리에 있어 책이 가장 문제인 것 같다. 책장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여전히 물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었다. 큰 착각이었다.
가장 만만한 신발장부터 정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만만하다는 건 이미 내가 '지네'라는 나에 대한 올바른 고찰을 기반하고 있었고, 지난번 한차례 정리했기에 나름 자신 있었던 것. 내게 신발장 정리 기준은 명확하다. 편안함과 애정이다. 그 신발이 내 발에 편안하게 맞는지, 가장 중요한 기준을 세우고, 소중히 오래 신을 수 있는 애정이 있는지를 그다음 기준으로 세웠다. 그 기준으로 예쁘지만 발이 아픈 블로퍼와 예쁘지만 애정이 없는 소가죽 구두를 당근마켓에 싸게 내다 팔고, 지난 주말 세 켤레를 버렸다. 이렇게 공간에 나만의 정리 기준을 세우며 느리지만 결국 승리하는 거북이처럼 정리의 경주를 시작해보기로 한다. 우화처럼 어차피 결승선을 가장 먼저 넘는 건 거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