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 코로나 시국에 맞이하는 생일 주간을 겪으며, 여러 제한에 부딪혔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맛집은 가기에 꺼려졌고, 퇴근 후에 친구들을 만나도 9시까지밖에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6시 반에 강남 쪽에서 퇴근하면 동네에 도착하는 시간만 해도 1시간 남짓 걸렸다. 그럼 7시 반, 1시간 반 동안 밥 먹고 얘기하고 촛불 불고 케이크까지 먹을 수 있을까.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에도 불안함은 여전하고.
생일 주간 목요일에 만나기로 한 모임의 친구 2는 무려 인천 출퇴근러였다. 서울에 도착하면 8시 남짓. 코로나가 조금 진정되면 만나거나 주말로 약속을 미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단톡 방에 메시지를 띄웠다. 친구들의 안녕을 묻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다른 날을 기약해야겠다는 메시지를 읽은 친구 1은 내 남자 친구네 집을 빌리면 안 되냐고 했다. '오 좋은데?' 이렇게 사생활을 지키고 싶은 남자 친구와 나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됐다.
오빠에게 나는 목요일에 야근이나 친구를 만날 계획이 없는지 물었고, 오빠는 전혀 없다고 했다. 도리어 이유를 물어오는 오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사정을 말하고 공간을 빌려줄 수 있냐 물었다. 재빠르게 생일 당일에 '노플랜 가능, 노이벤트 가능'이라고 덧붙였다. 오빠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남자 친구는 내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라 내 파티를 지지해줄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오빠는 못 이기는 척 공간을 빌려줬다. 그렇게 일면식이 없는 내 친구 2명과 오빠는 나란히 내 생일파티에 합석하게 됐다. 오빠는 케이크, 친구 1은 음료, 친구 2는 치킨, 나는 피자를 준비해 8시쯤 만나기로 했다. 두근두근. 내 집도 아닌데 괜히 내 집을 보여주는 것처럼 걱정스러워 걸음을 재촉했다. 다정한 오빠는 전날 집을 깨끗이 치워놓은 것 같았다. 나는 오빠가 깜빡한 테이블 세팅을 서둘렀다. 2인석에서 4인석의 테이블로 부랴부랴 세팅을 마쳤다.
친구 1은 파티를 위해 풍선과 가렌다를 준비해왔다. 평소 친환경을 외치는 오빠에게 풍선이란 '절대 악'이었지만, 그날은 하는 수없이 허락해줬고, 친구 2는 열심히 풍선을 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방 안에 풍선이 가득했다. 가렌다를 걸고, 그 위에 풍선을 얹고 친구 1, 2와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내가 가져온 폴라로이드로 행복한 순간도 오래도록 남겼다. 친구 1은 오빠와 나의 사진도 담아줬다. 그 사진 속에서 나는 신이 났는지 진실의 앞니가 발동했다.(내 친한 친구는 내가 정말 찐으로 행복할 때 앞니가 나온다며, 찐행복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로 진실의 앞니를 꼽았다.)
행복한 파티를 마치고 돌아보니, 치킨 박스, 피자 박스부터 온갖 일회용품 쓰레기가 그득그득했다. 그걸 버리고 오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 파티 중간중간 열심히 모아뒀는데, 두세 시간 남짓 있던 시간에도 이렇게 쓰레기가 많이 나오다니 새삼 놀랐다. 게다가 풍선은 절대 터지면 안 되는, 안에 반짝이가 가득한 풍선이었다.
그날 이후로 오빠는 그 풍선을 시한폭탄이라고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반짝이 풍선이 터지면 자잘한 반짝이들을 청소해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오빠는 그 풍선이 작아지길 기다렸다. 몇 주가 지나자 조금 작아진 풍선을 봉지에 넣고 조심스럽게 터트려 반짝이를 회수했다.
오빠는 그 반짝이 풍선을 터트리며 나와 친구 1, 친구 2를 '민폐 거리'라 명명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파티를 제안했다. 평소에 파티를 좋아하는 나에게도 인사이트가 있는 말이었다. 파티를 좋아하기에 살면서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라 지속 가능한 파티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내게 꽂혔다. '지속 가능한 파티'라는 게 아직은 생소하지만, 우리만의 방법으로 오래오래 지속 가능한 파티를 연구해봐야겠다. 일단은 이번 연도에 지속 가능한 크리스마스 데코를 위해 산으로 나뭇가지를 주으러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