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독이 쌓여서 독소가 되듯 일하다 보면 쌓이는 일독 같은 게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여름에 쿠팡 기사님들의 과로와 그분들의 과로사를 자주 입에 올리고 애도했다. 무거운 이야기인데도 우스갯소리처럼 그분들의 업무가 얼마나 고단할지 아주 조금은 이해하겠노라고 말했다. 얼마나 일이 벅차고 힘들면 '과로사'라는 말이 생겼을까. 당사자에게도 그의 가족에게도 참 아픈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여름에도 일과 일상의 밸런스, 요즘은 촌스러운 말이 된 것 같은 워라밸을 잘 지켜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름부터 지금까지 나는 일주일에 2번 50분씩, 총 100분 남짓의 필라테스 시간을 아주 집요하게 지키고 있다. 그 시간엔 일하며 긴장했던 어깨와 키보드를 치며 아팠던 손목 근육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늘린다. 그 시간에 기대어 일독도 희석시켰다.
여름에 내가 했던 일은 동시다발적이었다. 창간호에 에디터로 참여했던 매거진 프로젝트의 전체 기획과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았고, 작년에 이어 맡게 된 나름의 힐링콘텐츠 연차보고서, 그 일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게 된 입찰, 대기업의 카탈로그까지. 이렇게 나열해보니 일독이 차오를 만도 하다. 독이 끝끝내 차오를 때쯤 훌쩍 속초로 떠났다. 기어코 쉼표를 찍겠다며 전주에도 파워 야근 3회, 휴가 전날에도 정시 퇴근을 못한 채로 떠났다. 평소의 휴가라면 손톱도 꾸미고 돈과 시간을 들여 단장했겠지만 그럴 틈이 있다면 크게 숨을 내쉬어야 했고, 혹시라도 빠트린 일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업무의 퀄리티를 확인하기 바빴다.
강원도 매거진을 만들면서 2019년부터 강원도를 자주 오갔다. 햇수로 3년을 채우니 어느새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졌다. 이번 강원행에는 아무 때나 바다를 볼 수 있도록 오션뷰 리조트로 잡았다. 아마 혼자 왔다면 돗자리도 없이 축축한 바닷가에 앉아 부지런히 오가는 파도를 바라봤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행여나 누가 볼까 봐 상의를 내려 축축한 엉덩이를 감추기 바빴을 것이다.
비가 와서인지 파도는 세게 너울 쳤고 바위를 휘감는 파도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파도를 보니 바다내음이 나는 듯했고, 100분의 타임 리밋 동안 해치운 홍게 7마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찌 됐든 파도를 오랫동안 보니 '파도 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분주하고 바쁜 마음에 끊임없이 채찍질하다 잠시 내려온 속초였다. 숙소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고장의 자랑 만석 닭강정을 먹으면서도, 머리를 말리면서도 내내 너울이 이는 파도를 바라봤다. 큰 바위를 휘감는 더 큰 파도는 큰 바위를 집어삼켰다. 생각해보니 큰 파도가 큰 바위를 삼킨 것도 같고, 감싸 안은 것도 같다. 이렇게 유용하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오래오래 파도 멍을 했더니 분주했던 몸과 마음에 작은 공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