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염가 판매합니다 08

꿈꾸는 회사란 없어

by 하쿠나마타타

해외취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 혹은 해외 디자인은 국내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8 한국과 오버랩되던 삶.

Screen Shot 2021-10-02 at 8.57.03 pm.png T2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간판.

드디어 내가 그토록 꿈꾸어 왔던 호주 회사에 들어왔다. 그것도 T2 tea.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 소속의 Tea 회사로 창립자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출신들이었다 (두 창립자 모두 여자이다)

T2-Small-Business-TDF-4-1000x1290.jpg 안내데스크, 미팅할 때 200가지의 티가 전시되어있는 안내데스크를 지난다.
T2-Small-Business-TDF-ad-2200x1404.jpg 2층 티물리에 작업실. 여기서 티를 테스트하고 사진 촬영도 하며 크리에이브팀이 사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Screen Shot 2021-10-02 at 8.57.22 pm.png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T2는 드레스코드가 있다. 블랙만 입으면 어떤 복장이든 자율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나......


나는 T2tea를 한국 디자인 잡지에서 많이 봤었다. 특히 패키지 디자인이 유명한데 인테리어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회사인 만큼 제품을 전면 부각하기 위해 인테리어는 전부 검은색으로 죽이고 패키지를 부각했다. 영국의 많은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을 전통적으로 하고 있으며 많은 아티스트들과 매해 콜라보를 하고 있다.

_O2A6145-as-Smart-Object-1-1000.jpeg 실제 T2매장, 디스플레이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Core_Gifting_2018_Group_V4-1.jpeg 당시에는 내부 포토그래퍼가 두 명이나 있었다. 그들 덕에 항상 아름다운 사진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부에서도 그림만 전문적으로 그리는 아티스트들이 셋이나 있었다. 그들은 1월에 벌써 12월 크리스마스 컬렉션을 준비하며 항상 6개월에서 1년 전부터 계획해서 제품이 나가는 시점까지 언제나 그림을 그렸다. 이 아름다운 패키지나 티잔의 그림들은 전부다 그런 이유에서 사계절 아름다운 제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카피라이터도 두 명이나 있었다. 디지털 디자이너는 세명(나포함) 그리고 그래픽 디자이너 두 명. 총괄 디자이너 두 명이 있고 거기에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들도 쓰니 얼마나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이 팀은 디자인팀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팀이다.


이 안에서 코어 브랜딩팀이 있다. 메인으로 주력하는 메인 상품, 즉 저 오렌지 시그니처 패키지 디자인 티들을 얼마나 주력해서 팔 것인지, 혹은 어떻게 미디어에 노출시킬 것인지 티투만의 색깔로 나타내는 것에 항상 조심했고 그들의 특별한 컬러를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다.


여름에는 금요일에 조기퇴근이 가능했다. 4시면 조기퇴근이 가능했고 한 달에 한번 오피스 회식? 같은 걸 하면서 회사에서는 피자와 와인, 맥주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제공해줬다.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해야 하나? 호주는 회식문화가 없으니까. 뭐 그런대로 좋았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T2는 드레스 코드가 있다.

검은색으로 통일하되, 신발이나 머리 모양(?)은 자유였다. 나는 나만의 시그니쳐를 만들고 싶어서 언제나 보라색 머리로 회사를 다녔다(묻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검은색으로 멋을 내도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나는 디지털 디자이너로 고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픽이면 시니어 디자이너겠지만, 호주에서는 그래픽만 해서는 먹고살기가 어렵다. 즉 웹도 조금 할 줄 알아야 하고, 애니메이션도 하면 좋고, HTML도 이해하면 더더욱 좋고 이런 식이다 보니까 나의 백그라운드는 점점 반반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직급을 접고 그냥 디지털 디자이너로 들어가게 되었다.


회사는 온라인으로 상품을 전 세계에 많이 판매를 해서 디지털 디자이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나의 선배 디자이너들은 애니메이션을 다룰 줄 알았거나 혹은 웹디자이너로서 10년째 전문가로 활동 중이었다. 나는 그 분야에 아무 연고가 없고 단지 그래픽을 잘하는 디지털 디자이너였음으로 잘 가르치면 쓸만하겠다는 평가를 받고 시작하였는데.... 이게 잘못된 시작일 줄이야 ㅎㅎ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다들 오래된 경력직이었다. 최고참이 9년이나 같은 조직에 몸담은 사람도 있었는데 유독 내 자리만 계속 디자이너들이 바뀐다고 했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오래 버틸 자신이 있었으므로 나는 이 회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거야' '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라고 했었는데 나는 이 결심이 한 달 만에 꺾일 줄은 정말 몰랐다. 나의 일은 EDM 디자인 즉, Electronic Direct Mail로 상품이나 이벤트를 포토샵으로 디자인해서 메일로 제공하는 형태의 디자인이었다.


매출의 60%를 온라인에서 일으키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EDM디자이너만 전문적으로 고용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100이나 되는데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고작 10도 못 미치는 일이니 누가 이 일에 만족하며 지낼 수 있을까.


물론 회사에서 나의 개인적 성장을 위해 나한테 재밌는 미션을 줄 수 도 있고 같이 프로젝트도 할 수 있겠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의 철저한 무관심이 있었다. 나는 일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일에 대한 만족도도 없고 지쳐있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이라 일러스트레이터에 더 익숙한 나는 1 pixel로 왔다 갔다 포토샵에서 일하는 것도 나랑 직군이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창의적인 일도 아니었다. EDM은 보통 모듈의 포맷이 정해져 있어 T2스타일에 맞춰 포맷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었는데 가장 힘든 것은 그 1 pixel이 어쩌고저쩌고.... 아.. 이래서 이 자리를 못 버티고 나갔구나.. 모든 것이 설명이 되었다.


그 와중에 전 직장에서 일하던 매니저가 T2에 지원을 했는데 내가 보증인이 되어 그 매니저가 바로 내 디지털 디렉터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둘이 다시 일하게 되니 너무너무 좋았는데 회사는 겉에 보는 것과 달리 속은 정치적인 일로 남 탓 게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의 사수는 T2에서 일한 지 2년이 되어서야 다른 일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던 게 음.... 뭔가....... 이 일을 하면 다른 일을 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런대로 나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버티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시작되니 몸이 아프기 시작되었다. 가뜩이나 2년 전부터 아팠던 나의 병이 조금씩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불면증도 시작되었다. 일이 시작되고 한 달 후에 사수가 고향집으로 휴가를 가서 한 달 동안 갔었는데 그 한 달 동안 나에게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 최고 책임자나 디지털 프로듀서나 누구에게 일을 달라고 요청을 해도 일을 주지 않았다. 너무 불안했지만 버티는 것도 일의 한과 정임으로 버티려고 노력했다. 한 달 후에 사수가 돌아왔고 일을 함에 있어서 내가 일을 배우는데 느리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글쎄.. 일을 배울 기회조차 많이 받지 못했다. 나는 더 큰 불안함에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회사에 오고 남들보다 가장 늦게 퇴근했다. 할 일이 많이 없어도 성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랬더니 사수가 일이 없는데 일찍 오고 늦게 가는 내가 부담스럽다고 일이 없으면 그냥 가라고 했다. 그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인지 면역력이 더 약해져서 성인 수두에도 걸렸었다.


회사는 남 탓 게임으로 핑퐁을 많이 쳤었는데 마케팅팀에 새로운 수장이 회사 사람들을 물갈이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 디자인이 느린 이유는 나는 사실 카피가 자주 바뀌고 마케팅팀과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이유가 컸었는데 이 모든 탓이 내 탓으로 돌아왔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브리프(디자인 의뢰서 같은 양식)를 잘 이해 못한다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나중에 너 영어 이해하니?라는 식으로의 피드백이 오고 있었다.

내가 그 브리핑을 이해 못했다면 지난 3년간 다른 회사에서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일을 이해함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들만이 쓰는 용어를 쓰면 물어볼 때도 있었고 이해가 안 가면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하물며 그 문서가 한국어여도 이해가 안 가면 물어보고 미팅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작은 디자인 수정이 8차나 이루어지는 아주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계속되었었는데(물론 이것은 카피의 수정 같은 디자인과 상관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랑 같이 일했던 디지털 디렉터가 그녀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을 해주었다. 왜냐면 나랑 이미 1년을 같이 일하는 사이었고 그전에 일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회사에 출근했는데 갑자기 최고 수장 디렉터가 보자고 한다.

독방으로 들어갔더니 인사팀 담당자와 같이 있었다.

나보고 짐을 정리해서 지금 나가라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의 사수는 나를 주간단위로 크리에이티브팀 최고 수장한테 보고 하고 있었고, 나는 느리고 영어를 잘 이해 못하는 거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며 같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일한 지 4개월 만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이미 크리에이티브팀 전부는 커피숍으로 대피해 있었고 나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짐을 쌌다. 인사담당자는 원하면 우버를 불러주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거절을 했다.

나의 디지털 디렉터는 나를 위로한다고 나를 데리고 나가서 근처에 문 여는 아무 커피숍에 들어가서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이 상황이 너무 이해가 안 간다며 그녀가 더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무 생각도 안 났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 최악의 상황은 이렇게 다 같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너무 아프고 내가 꿈꾸는 회사의 일자리를 4개월 만에 잃었다.

그것도 디자인을 못한다고.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나는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항상 잘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으므로.

그리고 이 회사가 아니라고 마음이 말할 때도 버티면 되는 줄 알았다.

한국처럼 버티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결과는 반대로 주어졌다.

나는 인제 어떻게 하면 좋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9년 10년 일했던 사람들도 포함해서 크리에이티브팀 절반이 3개월 안에 퇴사했다고 한다. 무엇이 그들을 퇴사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직원들 중 T2의 50%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들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사람들을 못살게 굴어서 물갈이를 한 건지 아니면 내부 시스템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없이도 회사는 잘 돌아가니까. 참 한국이나 호주나 다를바가 없구나.


회사에서 잘리고 나는 나의 행복을 좇겠다고 결심하고 행복을 상징하는 심벌을 팔에 문신을 했다.

더 이상 버티는 삶 말고 진짜 행복해지는 일 말이다.

아파서 병원에서 나왔을 때는 이 아픔을 잊지 않고 삶에 감사하고

지금 오늘을 열심히 살기 위해 팔에 문신을 했었다.

내 팔은 행복과 아픔이 가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앞으로 뭐하지? 뭐 다시 면접 봐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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