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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파파야 향기 Mar 11. 2022

[詩의적절]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나 고민될 때

# 헛헛한 자랑


"지금 무슨 생각을 해?"

"어, 그냥... " 


복잡한 감정을 숨기고 미소로 얼버무리며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옛 동료들을 만났다. 내가 그 직장을 떠나고 없는 사이에 어떤 이는 더 좋은 자리로 옮겨갔고, 어떤 이는 부동산과 주식이 올라 몇 천을 벌고, 어떤 이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저마다 그동안 있었던 나름대로의 자랑거리를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정말 잘 된 일들이기에 축하와 부러움의 인사치레들이 오갔다. 나도 그 대화 속에 은근슬쩍 자랑거리를 하나 꺼내 내놓았다. 


"나 이번에 서강대 그만두고 KF해외 파견 교수로 베트남에 가게 됐어."

옛동료들은 나의 자랑에 화답하듯 한 마디씩 축하와 부러움의 표현을 건넸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별것도 아닌 것을 자랑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리고 뭔지 모를 헛헛함이 밑에서부터 쓰윽 올라왔다.


"우와, 나도 이 일 그만두고 해외에 가서 일하고 싶다. 그런데 계약은 언제까지야?"

"샘은 좋겠다.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면서 살아서... 부럽다. 나는 애들과 애들 아빠 뒤치다꺼리하느라 여행도 제대로 못 가는데..."

"와, 그 나이에 열정이 대단하네. 그 용기가 부럽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서 살면 좀 외롭지 않을까?"

"정말 잘됐다. 혼자니까 새로운 일을 결정할 때도 쉽게 도전할 수도 있고... 부럽다. 나는 그냥 1달 만이라도 외국에서 자유롭게 살아 봤으면 좋겠다."

"그래? 잘됐다. 그런데 언제 가는데?"


"어, 코로나 때문에 아직 파견 날짜는 정해지지 않고 이번 학기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하기로 했어."

알맹이 빠진 나의 자랑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고 걱정해 주는 마음을 재빠르게 다른 사람으로 넘기며 대화에서 한 발을 뺐다. 쑥스럽기도 하고 그냥 핑퐁 하듯 던지는 수다를 잘 못 떨기도 해서다. 어느 덧 수다의 끝이 보였다. 사실 나는 몇 시간씩 이어지는 수다를 잘 못 참는 편이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거리게 된다. 차라리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은데 앉아서 쭉~ 이야기만 하면 영락없이 내가 그 수다의 장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오늘은 오랜만에 만나서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머리가 지끈거려도 그동안 못 만났던 시간들을 좁히고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듣고 말하고 마음껏 웃었다.


#막막한 발걸음


왁자지껄했던 커피숍에서 나와 아쉬움의 인사를 오래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번쩍거리는 홍대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지하철을 타러 가는 나의 발걸음은 오전의 그 발걸음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는 감정으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차창으로 예전에 살던 망원동의 한강 다리가 보였다. 그리움이 순간 스쳐갔다. 그 긴 다리를 지나 서울 서쪽 끝자락에 있는 엄마 집으로 향했다. 파견될 줄 알고 혼자 독립해서 살던 곳을 정리해서 엄마 집에 잠깐 얹혀살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다. 엄마 집은 지하철역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어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독립하기 전 이곳에서 오래 살았지만 7년 만에 돌아온 이 동네가 익숙한 듯 어색하다.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 마을버스는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 방송으로 가득찼다. 마침 핸드폰 배터리도 또 떨어져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예전에 자주 듣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곡을 소개하면서 나오는 멘트가 나에게 묻는다.


...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나요?   -god의 <길>입니다. ...

https://youtu.be/yFdo9R688tY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오 지금 내가 /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 살아야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마을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노래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콕 박혀 나에게 묻고 대답하고 위로한다. 멋진 곡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이런 노래 앞에서 나는 다시 나의 길을 확인해 보고 고민해 본다. 가끔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를 먹어 경험이 쌓이고 연륜이 쌓여도 지금 나의 이 나이는 처음 살아보는 것이라서 늘 불안하고 새롭다. 아니 낯설고 서툴다.

 

나는 오늘 또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를 묻고 있다. 왜 남들처럼 안주하지 못하고 나는 이 길 위에 서 있는지, 이게 정말 나의 길인지, 이 길의 끝에서 나의 꿈은 정말 이루어질지, 알 수 없지만 또 이렇게 걸어간다.


#헛헛함과 막막함을 채우는 순간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라.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 1909년, 캔버스에 유채, 토론토. 

   오돈 와그너 갤러리


요즘 나의 생활패턴은 인터넷을 켜서 줌(zoom)으로 일처리를 한 후 이메일과 뉴스를 대충 둘러보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본다. 물론 음악도 스트리밍해서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라디오를 듣는다. 라디오도 스마트폰으로 들을 수 있지만 나는 라디오라는 물성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이 좋다. 라디오는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라디오 너머에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좋다. 그리고 뭔가 하면서 들을 수 있어서 좋고, 조잘대는 친구처럼 딱 붙어서 나의 기분을 달래줘서 좋다. 그런 나의 친구 라디오는 언젠가부터 오래되고 낡은 것이 되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난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를 듣고 라디오로 소통하고 있다. 나도 오늘 라디오를 통해 헛헛하고 막막했던 마음을 노래로, 다른 이의 삶의 이야기로, 시로 위로받았다. 나는 라디오를 듣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


맞는 말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내 작은 세계로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오늘 하루를 즐기고 이 순간을 만족하면 그뿐이다. 오늘은 오늘치의 즐거움으로 충분히 살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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