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을 때
류시화 씨가 엮은 시집 『마음 챙김의 시』를 읽다가 엘렌 바스라는 시인을 알게 됐다.
처음 들어보는 미국 시인인데 젊은 나이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시인이라 했다.
처음 접한 그의 시와 김혜자 배우님의 목소리로 낭송된 시를 들으며 오늘의 슬픔과 피로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엘린 바스 <중요한 것은> 낭송 김혜자 『마음 챙김의 시』(류시화 엮음) 중에서
삶을 사랑하는 것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탄 종이처럼 손에서 바스러지고
그 타고 남은 재로 목이 멜지라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당신과 함께 앉아서
그 열대의 더위로 숨 막히게 하고
공기를 물처럼 무겁게 해
폐보다는 아가미로 숨 쉬는 것이
더 나을 때에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마치 당신 몸의 일부인 양
당신을 무겁게 할 때에도,
아니, 그 이상으로 슬픔의 비대한 몸집이
당신을 내리누를 때
내 한 몸으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당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듯
삶을 부여잡고
매력적인 미소도, 매혹적인 눈빛도 없는
그저 평범한 그 얼굴에게 말한다.
그래, 너를 받아들일 거야.
너를 다시 사랑할 거야.
-엘렌 바스, <중요한 것은> 류시화 옮김
류시화 씨는 페이스북에 시집 『마음 챙김의 시』 수록할 시를 선정 다음으로 시인들에게 시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받는 일을 하면서 경험한 일을 글로 올렸다. 보통 시 사용을 위해 생존 시인에게는 직접 이메일을 띄우고, 작고한 경우에는 저작권자(대개 가족이나 미망인) 혹은 시집을 펴낸 출판사들에 연락한다고 한다.
그런데 예상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토록 즉각적이고 애정 어린 답장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온 인류가 존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마음 챙김을 위한 시를 소개하겠다는 취지에 모두가 공감하고 기꺼이 시 사용을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한 시인은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하자는 제의까지 했다고 한다.
미국 시인 엘렌 바스는 시의 어느 구절에 대한 류시화 시인의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에 이 시들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랬듯이 때로는 슬픔이 촉매가 되어 강한 의지가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는 말을 전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집에 수록된 엘렌 바스의 시를 읽으며 나는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 인생 최악의 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눈물마저 고갈되어
내 몸이 바싹 마른 물항아리처럼
텅 비었을 때
나는 밖으로 나가
레몬 나무 옆에 섰다.
그리고 엄지 손가락으로
잎사귀 하나의 먼지를
문질러 주었다
그런 다음 그 서늘하면서도 윤기 나는
잎을 뺨에 대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란
그 강렬한 생의 향기!
-엘렌 바스, <내 인생 최악의 날에> 류시화 옮김
두 번째 이 시에서 나는 깊은 절망 가운데 강렬한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주 심각한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의 아픔을 접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눈물이 고갈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가 나를 내 깊은 슬픔에서 건져 올리는 느낌을 받았다. 무너지고 주저앉아 있던 나의 마음을 놓치지 말고 내 마음을 챙기며 살아가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살아야겠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라고 마야 안젤루는 말했다. 당신은 숨 막히게 사랑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숨 막히게 달려간 순간, 숨 막히게 껴안은 순간이. 혹은 영혼을 회복시켜 준 진정한 접촉, 자신을 증명할 무엇인가에 그토록 몰입한 순간이. 그 순간들을 사는 데 너무 늦은 때는 없다. _『마음챙김의 시』 엮은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