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르투갈을 참 좋아하지마는, 사실 포르투갈에는 입 떡벌어지게 크고 웅장하거나 엄청나게 화려하거나 한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고 소개하는 이 문화재들도 다들 저마다의 매력이 있지만 베르사유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온 사람들이라면, '뭐 그냥 그렇네'하고 심드렁해 할지도 모르는 스케일이다. 나는 오히려 그런 수수하고 고즈넉한 것이야말로 정말 포르투갈의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포르투갈의 왕궁이나 성당 중에서도 규모나 그 화려함에 있어 뜨악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리스본이 17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였다고 하니, 분명 막대한 부와 최첨단 기술을 한 때 보유했던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예를 들면 포르투 강변에 있는 성프란시스코성당은 겉에서 보기엔 그냥 심심해 보이는 석조건물이지만,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내부로 들어가면 당대에 포르투갈이 브라질에서 가져온 엄청난 금으로 장식된 성당 내부에 입이 떡 벌어져 턱디스크에 걸릴지도 모른다.
리스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시간만 가면 마프라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곳에 있는 마프라궁은 바로 올해(2019)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포르투갈의 태양왕이라 불리는 동 주앙 5세가 지은 왕궁 겸 수도원이다. 브라질에서 유입된 엄청난 양의 금으로 인해 포르투갈 왕실은 부유해졌고, 왕궁을 짓는데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 규모도 남달라서 이 마프라 궁의 복도가 매우 길어 같이 간 친구들과 이야기한 것이 왕이 한번 호출하면 신하들이 달려가다가 하루 다 갔을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 근데 그게 농담이 아니라, 왕이 지내던 북쪽에서 왕비가 지내던 남쪽까지 가는 복도가 232미터로, 유럽에서는 가장 긴 왕궁의 복도라고 한다.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수작으로 꼽히는 것이 이 마프라 수도원의 이야기를 담은 <수도원의 비망록(Memorial do Convento)>이다. 동 주앙 5세의 공포정치와 수도원을 짓는 노동자들의 수고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절대왕권주의와 종교 재판 등을 비판한다. 특히 비행기를 만드는 신부를 등장시켜 종교와 정치적 억압속에서 자유(비행)을 추구하는 이를 그려냈다. 권력을 가진 왕을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사회주의자이자 반기독교주의자로 유명했던 사라마구의 사상을 보여준다.
수도원도 겸했던 곳이라 신부님들이 머물렀던 기숙사와 병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의 명소는 화려한 왕족들의 방들, 음악실, 사냥실 외에도 많은 해외원정 고문서들을 보유하고 있는 왕궁도서관이다. 에보라대학, 코임브라대학의 도서관처럼 그냥 예전 사람들이 책을 읽던 공간이라는 의미 외에도,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의 아주 가치 있는 문서나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그야말로 박물관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마프라 왕궁 도서관이다.
마프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는 왕궁근처에 자연동물원도 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실제로 왕족들이 왕궁에 와서 머물면서 사냥을 나갔던 곳이라고 한다. 아직도 동물을 가둬놓지 않고 풀어놓은 채 자연친화적으로 구경할 수 있다고 친구가 알려주었다. (Tapada da Mafra) 실제로 이곳은 건축 후 나폴레옹 침략으로 왕실이 브라질로 천도해 있는 동안 프랑스 장군의 거처로 쓰이다가, 다시 리스본으로 왕실이 돌아온 후에는 거주용 보다는 별정처럼 와서 머물며 사냥을 즐기던 곳으로 더 많이 쓰였다고 한다.
마프라에서 살았던 내 친구는 한국인인데도 밥보다 빵을 더 즐겨먹는데, 아마 마프라 빵이 워낙 맛있어서 그런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마프라는 매해 빵 축제가 열릴 뿐아니라, 리스본 시내에 어느 마트를 가도 빵 코너에서 마프라 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보통 마프라 빵축제는 7월 초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