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마이 네임

by 헤나따

나는 내 이름의 약간의 컴플렉스가 있다. 너무 흔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본명을 쓰는 것이 가명을 쓰는 것보다 신분을 숨기기 훨씬 수월할 정도다. 대학에 와서 맨 처음 포르투갈어 시간. 교수님께서 칠판에 a부터 z까지 포르투갈식 이름을 쭉 쓰시고 우리에게 하나씩 고르게 하셨다. 나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베이트리체의 포르투갈식 이름인 베이트리스(Beatriz)를 골랐다. 그런데 그 이름을 고른 친구가 한명 더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했고, 내가 졌다. 교수님께서 남은 이름 중 헤나따(Renata)를 추천해주셨고 그렇게 나는 헤나따가 되었다.



브라질에서 1년 살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헤나따라고 불렀다. 포르투갈어에서는 애정을 담아 사람을 부를 때 축소사 -이뉴/-이냐(-inho/a)를 쓰는데 그래서 나는 자주 '헤나찡냐(브라질에서는 구개음화를 해서 자음 t가 모음 i 앞에서는 tch 소리를 낸다)'라고 불렸다.



포르투갈에 처음 와서 집주인 부부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헤나따'라고 소개했더니, 부부는 나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쥐.웅.' 하시며 내 이름을 외우셨다. 고맙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이 어색한 발음으로 불러주는 내 이름 'Jieun'도 나의 '진짜' 이름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들이 발음하는 '지읒'도 한국어의 그것이 아니고, 그들이 발음하는 모음 'ㅡ'도 포어에는 없는 발음이었으니. 게다가 한국 친구들이 나를 부를 때는 거의 '지은아'나 '지은이'처럼 뒤에 접사가 붙는데 '지은'만 똑 떨어져 있으니 꼭 구글에서 어색하게 번역된 단어 같이 느껴졌다.


'헤나따'라는 이름은 포르투갈에서 보기에는 너무 '브라실식' 이름이었다. 꼭 그런 이유 뿐만 아니라도, 포르투갈 친구들은 동양인 친구들의 유럽식 이름보다는 원래 이름으로 부르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 물론 선의겠지만, 완전히 선의로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동양인이 유럽식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을 꽤 못마땅하게, 가끔을 이를 비웃는 듯 보였다. 사대주의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반응을 몇번 목격하고 나니, 내가 불러달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굳이 "네 진짜 이름으로 불러 줄게"라고 '선생님처럼' 다그쳐 묻는 태도가 별로 바람직해 보이진 않았다. 나는 그냥 몇번이나 '쥐.웅.'이라고 어설프게 부르는 내이름을 교정해주는 것도 시간 낭비 같고, 다음에 만났을 때도 이국적인 내 이름을 기억 못해서 어색한 사이가 되는 것도 싫기 때문에, 그냥 외국인들이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불릴 자유가 있는데, 그게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웃음을 당하거나 교화 당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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