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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편한 브래지어는 없다

by 헤나따

1. 내가 노브라 못하는 이유


옷에 유행이 있듯, 속옷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 속옷 광고는 볼륨감, 예쁜 몸매보다는 편안한 착용감을 앞세운다. 노와이어, 브라렛, 심리스 등등. 특히 탈코르셋 운동이 여성들 사이에서 번지면서, 너도나도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던 브래지어의 불편함이 공론화되었다. 나 역시 브래지어로 인한 압박감 때문에 소화불량, 갑갑함, 접촉성 알레르기, 땀띠 등을 달고 산다.


그렇게 불편하면 노브라로 다녀라-라는 말을 많은 여성과 (놀랍게도) 남성으로부터 들었다. '노브라가 제일 편하니까'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도 니 가슴 안 보니까'라는 굉장히 무례한 이유로 비꼬듯이 추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브라가 편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노브라 하고 몸은 편하되 앞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 등 <정신적 불편함>을 <신체적 편안함>이란 이유로 다 극복할 수 있을까? 게다가 공식적인 미팅에서 노브라로 나갔을 때, TPO를 잘 지키지 못했다는 둥, 옷차림이 프로답지 않다는 둥 그런 말들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러 고민을 해봤을 때 벌써부터 피로하다. 내 옷차림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고 다니고 싶진 않았다. 그냥 소화 좀 덜 되지 뭐.. 가려우면 집에 가서 밤새 잠 못 자고 벅벅 긁으면 되지 뭐... 그게 훨씬 낫다. (잠시 눈물 좀 닦고..)


무튼! 이렇게 고민하며 그나마 편한 브라를 찾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발품을 파는 여성이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유투브에만 검색해도 편한 브라에 대한 추천이 쏟아졌고, 맞춤 브래지어 구독 서비스도 있었다.



2. 가슴 사이즈의 편견


홈쇼핑에서 파는 속옷 세트는 가성비 측면에서는 최고다. 보통 8~10세트에 149,000원 요렇게 파는데, 내 경우엔 여자 형제가 있어서 반반씩 나눠서 입곤 했다. 잘 사서 득템 할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엔 몸집이 작은 편이라 사이즈가 맞는 제품이 잘 없었다. 보통 가슴둘레 75부터 판다면 나는 65, 커도 70을 사야 했다. 몸집에 맞지 않는 속옷을 입으면 안 그래도 불편한 속옷이 더 불편했다.


자기 속옷 사이즈도 제대로 모르는 여성이 많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지금은 일본 제품이라 민감하지만, 8-9년 전 꽤 인기를 끌었던 에메필이라는 속옷 브랜드가 있다. 당시 한국 브랜드에서는 정형화된 사이즈만 팔았는데 이곳은 다양한 사이즈를 보유하고 있다는 차별화를 두었다. 내가 처음 내 가슴둘레와 브래지어 컵 사이즈를 잰 곳도 이곳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가슴둘레와 컵 사이즈가 작다 보니, 다른 곳에서 속옷을 사려해도 뽕이 큰 제품들이 많았다. 나는 굳이 그런 보정속옷을 입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마치 '발 사이즈가 작은 사람은 키가 작다 -> 키가 작으니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을 것이다' 요런 논리로 작은 발 사이즈의 단화는 잘 없는 것과 비슷했다. 뽕이 크면 일단 브라가 너무 떴다. 그리고 가슴통 자체가 작으니 기본적으로 몸을 착 감싸는 속옷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3. 편하다는 브라의 배신


그때 등장한 것이 브라렛이다. 가벼운 브라, 한 듯 안 한 듯, 훅 없는 브라 등등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특히 레이스 덕후인 나는 브라렛 디자인들이 레이스가 주를 이루는 것도 좋았다. 외국 유학시절 한국에 잠시 들어와 속옷 쇼핑을 했는데, 그때 두벌의 브라렛을 샀고 안타깝게도 큰 기대를 안고 산 두 개 다 지금은 입지 않는다...


하나는 레이스 제봉이 너무 까글까글해서 입은 날이면 늘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다른 하나는 뽕이 너무 커서 내 가슴이 뽕 때문에 압박감을 느낄 정도였다. 무엇보다 두 제품 모두 내 가슴통보다 훨씬 헐거워서 고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옷 안에서 속옷이 계속 따로 노니 불편함은 훨씬 심했다.


그 외에도 편하다는 브라를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그 결과 깨닫게 된 몇 가지가 있다.


1) 와이어가 없다고 다 편한 브라는 아니다.
와이어 없다고 해서 샀는데 몰드가 너무 딱딱해서 와이어 브라만큼이나 불편한 속옷을 경험했다.

2) 훅이 없다고 다 편한 브라는 아니다.
훅이 없이 브라렛 형태로 나와있으니 몸통 크기가 맞지 않아 불편했다.

3) 캐미솔 일체형이라고 다 편한 브라는 아니다.
나시 안에 패드가 붙어있는 속옷도 편할 줄로만 알았는데 고정용 밴딩이 너무 조이는 속옷들이 있었다.



4. 옷 나고 사람 났냐, 사람 나고 옷 났지



쇼핑 고자, 쇼핑 초보는 이렇게 수년간에 걸쳐 여러 시행착오와 돈지랄을 겪은 후 나만의 몇 가지 브라 기준을 정했다.


1. 몸통에 맞는 사이즈일 것. 컵 사이즈보다 몸통 사이즈가 중요

2. 와이어가 없고 몰드도 부드러운 것.

3. 뜨지 않는 것. 브이넥으로 너무 깊이 파이거나 내장 스펀지가 너무 굵지 않은 것.

4. 봉제가 제대로 되어 있어서 접촉 시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 것.


인티미시미(Intimissimi) 브라렛


자주(JAJU) 노라인 크롭브라 (심리스)




세컨스킨(Sekanskeen) 숏 캐미브라



서칭 해보니 브라 시장이 워낙 넓어지고 해외 직구도 많이 하는 시대가 되어 선택지가 매우 넓었다. 획일화된 사이즈가 아니라 다양한 사이즈의 속옷을 판매하는 브랜드도 많아졌다. 계절마다 옷차림이 다라지니 속옷도 달라진다는 사실, 남이 편하다고 나한테도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아무리 편한 브라다 어떻다 해도 세상에 완벽하게 편한 브라는 없다는 사실 등등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 나고 옷 났지 옷 나고 사람 난 것은 아니므로 내 몸을 옷에 맞추려 하지 말고 내 몸에 맞는 옷을 요구해야 하고 찾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좋은 소비, 좋은 쇼핑이란 결국 나를 잘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참고


아래 영상을 통해 세컨스킨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9a9zESlS_Vo

이 영상보고 세컨스킨 사봤는데 너무 좋아서 동생도 선물해줬습니다. 덩치 작으신 분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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