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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우면 용서된다. 귀여워 포장지

by 따뜻한 수첩

완벽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좀 모자란 듯, 부족한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미를 느낀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토록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이고 싶어 안달인 걸까? 완벽해 보이려는 이유는 결국, 나 자신을 괜찮다고 믿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1 감정 맞춤 포장지


인정 욕구가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렇게 봤다면 인간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우리 마음의 교묘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해 볼까? 내 마음은 '남들에게 멋져 보이는 나를 인식하고 뿌듯해하는 나'를 원한다. 정말 꽈배기 같은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기성품으로는 이렇게 꼬일 때로 꼬인 감정을 포장할 수 없다. 감정에는 딱 맞는 맞춤 포장지가 필요하다.



#2 귀여우면 수치도 수용된다.


내가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 사무소에 찾아갔다. 작은 소동이라고 표현했지만 나에게는 지옥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사무소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사무소에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헷갈리는 작성법에 대해 물었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점심시간 30분 전의 설렘으로 가득했던 그들에게 나의 간절함은 통하지 않았다. 나의 지옥은 그들의 점심 메뉴보다 가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서러움에 눈물이 나왔다. 울면서 나의 억울함, 분함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찌어찌 필요한 절차를 마쳤다. 생각해 보라. 내가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일은 처리되었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관리 사무소 사람들의 표정과 태도, 그리고 나의 울먹이는 모습 등이 뒤섞인 기억은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분노했다가, 억울해했다가, 복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가를 반복했다. 좀 더 멋진 모습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시물레이션도 계속했다. 혼자만의 연극은 밤늦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나는 지쳤고, 힘들었다. 나는 이 날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뭐야?'

나는 무엇을 원하길래 그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아마도 좀 더 멋지고 냉철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제대로 도움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드라마 속 똑 소리 나는 캐릭터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바보 같았고 미성숙했다. 인정받고 스스로에게 갚은 만족감을 느끼고자 하는 마음은 쉽게 이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포장을 시작했다.


'나, 귀여운데!'

내가 나에게 말해줬다. '이런 모습도 꽤 귀여운걸.' 이 말이 뭐길래.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합리화하고 미화하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파내고 싶은 기억을 편안하게 마주하는 방법을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내 감정을 귀여워 포장지로 잘 싸주고 나자, 관리 사무소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내 감정을 그대로 방치했다면 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과격한 형태의 행동을 낳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관리 사무소로 달려가 나의 분함을 한 번 더 어필한다든지 하는 행동으로 말이다.


내 안의 나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형편없으면 형편없을수록 외부를 바꿔서라도(과격한 행동이나 말을 써서라도) 재평가하고 싶어 한다. 알고 보면 겉으로 과도한 행동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형편없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좀 바보 같고 수치스러운 경험이 생기면 귀여워 포장지를 준비한다. 모자란 나의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나름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귀엽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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