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을 제대로 묶을 줄 아는가

작은 지혜의 위대함

by 코지오


강연자 테리 무어는 신발끈 묶는 방법을 강연에서 시연했다. 신발끈 묶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묶는 법'을 아는 사람은 소수다. 많은 사람이 신발끈을 단방향으로 묶는다. (오른손잡이 기준) 오른쪽 끈을 왼쪽 끈 위로 올려서 묶은 후, 오른쪽 끈으로 원을 만든다. 그리고 만들어진 원에 왼쪽 끈을 한 번 감아 넣어서 리본을 만든다. 테리 무어가 알려주는 방식은 반대다. 처음은 같지만, 원을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만들어서 오른쪽 끈을 돌려 집어넣는다. 양방향에서 힘이 가해져서 신발끈이 잘 풀리지 않는다.


신발끈이 풀리지 않으면 귀찮게 다시 묶을 필요가 없다. 풀린 끈에 발걸음이 꼬여서 넘어질 일도 없다. 묶임이 안정적이니 신경 쓸 일 없이 다닐 수 있다. 테리 무어는 말한다. 이처럼 작은 지혜가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작은 지혜는 크기만 작을 뿐이지 미치는 영향력은 거대하다. 나는 강연을 보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지혜는 무엇인지 곰곰이 살펴보았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읽은 이후로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길을 걷다가, 대중교통을 타다가, 카페에 앉아 있다가 눈과 귀에 영감을 주는 것이 있으면 재빠르게 스마트폰 메모 어플을 열어서 기록한다. 기록이라고 하니까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별것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021.08.12. 목

빨래 (빨래에서 배우는 교훈)


2021.09.17. 금

평일 낮에도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


2021.10.04. 월

지하철 창문 위 코팅. 실제와 달리 보이는 풍경. 우리 인생도 장막에 의해 달라 보인다.



10월 4일의 이야기를 해본다. 미팅이 있어서 지하철에 몸을 담아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 하늘이 회색 빛이었다. 푸른색으로 코팅된 창문 위쪽을 통해 본 하늘은 맑은 날의 하늘 같았다. 얇은 코팅지 하나가 현실에 미묘한 차이를 더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정보, 자존심, 선입견 등의 ‘장막’에 의해 현실을 서로 다르게 대하지 않던가. 훗날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서 기록했다.


저장된 기록은 글감이 되고, 글감은 글쓰기의 양분이다. 살아온 삶이 파란만장해도, 글 몇 번 쓰면 그 파란만장한 소재는 고갈된다.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체험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글의 소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책 언어의 온도에서 '좌우 봉원(左右逢源)'이라는 말이 나온다. 좌우를 살피면 근원에 도달한다, 즉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물과 현상을 헤아리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다. 글감은 먼 곳에 숨어 있지 않다. 글감은 순수하고 꾸밈없는 일상에서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기록으로 배운 지혜이다.


세상이 번잡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점점 자극적이고 대단한 무엇이 아니면 이목을 얻기가 어렵다. 사는데 도움이 되는 지혜 역시 그러하다. 사람들은 목표를 빠르게 이루게 해주는 지혜를 찾는다. 그런 지혜가 있었으면 그 지혜를 설파하는 사람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인생을 한방에 바꿔주는 요행은 없다. 너무 진부하고 작아서 관심조차 주기 싫은 평범한 지혜가 쌓였을 때, 삶이 발전한다. 테리 무어도 이 점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글은, 사소한 기록에서 시작된다.






어디에서 '꿀벌이 지구를 지킨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꿀벌이 없으면 생태계가 무너져서 지구는 죽음의 행성이 된다고 한다. 작디작은 존재가 가진 이로움이 실로 대단하다. 우리 주변에 보석 같은 지혜가 넘쳐난다. 다만 지혜라고 인지하지 못할 만큼 조그마한 것이 많다. 작다고 무시할 수 없다. 그 작음 안에 깃든 힘은 나와 우리와 세계를 바꿀 만큼 위대하다.










<테리 무어(Terry Moore)의 강연 보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