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해도 괜찮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기

by 코지오


미국 장거리 수영 선수인 ‘다이에나 네드(Diana Nyad)’는 무언가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녀는 어떤 목표를 최초로 이루거나 혹은 엄청난 성과로 이루는 것보다, 그것을 이루고 난 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를 생각하라고 했다. 그 변화는 스스로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높일 것이기에,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다이에나는 테드에서 강연했다.


나는 문득 강연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포기하지 않고 꿈이나 목표를 이루는 사례는 널리고 널렸다. 나도 매거진에 관련된 이야기를 숱하게 올렸으니까. 그래서 이번 글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포기해서 상황이 더 나아진 경우를 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과업을 수행해 왔다. 그중에서 포기한 것들이 적지 않은데, 생각보다 그 끝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다. 나는 최근에 인간관계를 포기했다. 보잘것없다고 판단해서다.


20대 때 나는 인간관계에 공을 들였다. '안면을 튼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니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밤새도록 술 마시며 놀고, 여기저기 쏘 다니고, 무리 지어 다니는 일은 10대 시절과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었다.


나는 그들이 나와 정말 오랫동안 함께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과 나 사이에 흠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잘해줄 필요가 없는 사람한테도 안부를 물으며 관계를 이어갔다. 인맥이랍시고 주기적으로 모이며 허허실실 시간을 보냈다. 이기적이고 고마움도 모르는 천한 것에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절친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양보했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11년이 흘렀다. 요즘 재테크 붐으로 지인들의 탐욕에 절은 민낯을 마주한다. 돈이라는 것은 바른 사람의 심성도 더럽히나 보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를 벌었다며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은 한순간이었다. 벌었던 돈은 얼마 가지 못해 쥐구멍으로 들어갔다. 돈이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깊이만큼 그들의 분노도 깊고 서러웠다. 그들은 애먼 주변인들한테 화풀이를 했다.


젊은 날의 기억과 이 순간의 회의가 뒤섞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인간관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체가 없으니 얄팍한 우정과 사랑을 들먹이면서 실체 없는 허상에 겉껍데기를 씌우는 건가 싶었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힘을 얻는다는데, 이제는 이 말조차 대단한 헛소리로 들린다. 이 헛소리에 홀려서 나는 수많은 시간과 감정과 돈을 목구멍 뒤로 삼켜야 했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 유사 인간들한테 나의 영혼을 재물 삼지 말자. 나는 인간관계를 포기했다.


내가 공들인 사람들은 나의 공을 모른다. 어쩌면 나도 그들이 들인 공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까 인간관계는 허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는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인간을 이해할수록 그 거리는 더 멀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휴대폰 주소록을 드나들었다. 늘어나는 연락처를 보면 나는 마음이 든든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만족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달았다. 의미 없는 거짓 행복이었다. 오늘날 나는 일할 때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을 만큼 대하고, 누군가 문자 보내면 적당히 답장해주고, 전화 오면 적당히 친절하게 받는다. 딱 그 정도 선만 지키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다른 사람한테 들일 공을 가족과 연인에게 들인다.


나는 우매했다. 순진했던 것인지, 멍청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포기하니까 편하다. 전보다 살만 하다.






끝까지 해낸 것은 본인에게 포기할 만한 일이 아니어서 그렇다. 다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그 일이 당신 삶을 갉아먹는다면,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의미 없는 것을 붙잡고 있어 봤자 괜한 일을 겪고 수렁으로 빨려 들어간다. 수렁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아무도 나에게 관심 갖지 않는다.


나의 심신에 불안을 던지고, 분노를 불어넣고, 억지를 강요하고, 슬픔을 흩뿌린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포기하라. 계속 도전할 만한 일은 불안과 분노와 억지와 슬픔이 우리 앞을 가로막아도 우리는 어떻게든 해낸다. 그게 아닐 경우, 그 존재로부터 깔끔하게 뒤돌아서는 편이 낫다. 조건 없는 돌진은 정신과 육체에 상처만 낼뿐이다.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인간으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다이에나 네드(Diana Nyad)의 강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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