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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Nov 07. 2021

컨버스, 나를 표현하는 신발

정체성


패션 마니아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발, 컨버스. '포클레인'이라는 브랜드가 굴착기 기계 장비의 대명사가 되었듯, 컨버스는 스니커즈를 가리키는 대명사이다. 그만큼 스니커즈의 기준이며 영원한 클래식이다. 컨버스의 팬들은 컨버스를 '나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신발'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색깔과 원단, 수많은 브랜드와의 콜라보 등으로 톡톡 튀는 신발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To give people the opportunity
to express themselves
through their CONVERSE shoe.

컨버스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기회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컨버스의 브랜드 철학이다. 컨버스는 그들의 신발을 사람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정의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컨버스. 이번 글에서는 이들의 파란만장한 발자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컨버스의 탄생


컨버스는 1908년 2월, 미국 매사추세츠 몰든에서 탄생했다. 창립자 마퀴스 밀스 컨버스(Marquis Mills Converse)는 고무의 단단하고 탄성 있는 성질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이 고무를 사용해서 튼튼한 신발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컨버스 신발의 시작이었다. 컨버스의 성장은 미국 농구 역사와 함께했다. 1910년대 미국에서는 스포츠가 인기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종목은 농구였다. 변변한 농구화가 없던 시절, 발목을 안정적으로 감싸고 내구성 좋은 고무 밑창으로 만들어진 컨버스가 농구선수들의 눈에 들어왔다. 훌륭한 성능에 미국 농구 선수들은 대부분 컨버스를 신고 경기를 펼쳤다.


농구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프로 농구팀 외에 산업 리그, 하이스쿨 리그, 스포츠 클럽 등 여러 농구 커뮤니티가 생겼다. 그곳에서도 컨버스를 농구화로 신었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컨버스는 기세를 몰아 더 멋진 디자인의 컨버스를 출시했다. 초기 모델과 달리 포인트가 되는 색이 더해졌고, 고무의 강도가 향상되었으며, 디자인이 정돈되었다. 컨버스는 더는 스포츠용 신발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신어도 될 만큼 충분히 매력 있는 신발이었다. 이후 일반인들도 평상시에 컨버스를 즐겨 신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 경쟁력 있는 스포츠 웨어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서 두각을 보였다. 그들은 컨버스와 달리 '과학'의 힘을 빌려 옷과 신발을 만들었다.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물건들은 기능적이었고 진보적이었다. 농구화는 더욱 그러했다. 선수들의 무릎 보호를 위해 신발의 쿠션감이 향상되었다. 거친 움직임에도 버틸 수 있도록 신발 겉 직물이 질기게 직조되었다. 또한 최적의 착용감을 위해서 다채로운 사이즈 체계도 갖추었다. 부족한 사이즈 구성, 캔버스 천이나 가죽, 고무창으로만 이루어진 컨버스와 차원이 다른 품질이었다. 농구 선수들은 컨버스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멋있는 신발이 아닌 기능 좋은 신발을 신는 것이 당연했다. 대중도 그러했다. 그들에게 컨버스는 멋은 있지만 늘 같은 디자인만 고수하는 철 지난 신발로 비쳤다. 컨버스의 입지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경쟁자들은 탑 스포츠 플레이어들과 계약하여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했고, 나아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스니커즈 라인을 확장했다. 새로운 주자들이 스포츠·패션 업계에서 장악력을 펼칠 때, 컨버스는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대표 신발인 '올스타'만 반복적으로 생산했을 뿐,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았다. 브랜딩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매출이 크게 하락하자, 그제서야 원스타(One Star)나 닥터 제이(Dr J)등 신모델을 출시했다. 디자인과 기능성을 개선한 스니커즈였는데, 결과는 참혹했다. 소비자들의 수준은 과거와 달랐다. 그들에게 컨버스는 고리타분한 옛 신발에 불과했다. 결국 2001년, 컨버스는 파산했다.






브랜드 철학


2년 뒤 나이키는 컨버스를 인수했다. 인수 후 나이키와 컨버스는 대대적인 브랜딩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찬란했던 컨버스의 지난 영광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그들은 60~70년대의 미국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1960~70년대 미국에서는 존 F 케네디의 암살, 마틴 루터 킹 죽음, 베트남 전쟁 등이 일어났다. 소중한 존재들이 사라지거나 파괴되었다. 폭력과 억압으로 얼룩진 사회에서 평화와 사랑과 자유를 외치는 집단이 생겼다. 그들이 바로 히피(hippie)이다.


억압된 환경에서는 자유가 성립되지 않는다. 자유롭지 못하면 사랑과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제약 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을 알아야 남도 이해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평화를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히피는 자유를 갈망했다. 컨버스에는 히피가 추구하는 자유가 있었다. 승리를 향해 코트를 누비는 농구 선수들의 자유로움. 취향껏 고를 수 있는 컬러. 어느 옷에도 어울리는 범용성. 그들은 컨버스를 신었다. 컨버스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함을 증명했고, 그 결에 맞는 사람과 사랑을 나눴으며, 평화로운 삶을 꿈꿨다. 모든 것이 자유에서 비롯됐다. 컨버스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대 정신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그 가능성은,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컨버스로 펼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는 철학으로 발전했다. 컨버스는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콜라보레이션

브랜드 철학을 지키기 위한 원칙으로, 그들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콜라보레이션은 두 개 이상의 브랜드가 협업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한 분야의 브랜드끼리 협업했다면 요즘에는 그 경계가 없어졌다. 식음료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 혹은 패션 브랜드와 게임 브랜드가 손을 잡는다. 컨버스는 콜라보레이션의 대가이다. 게임, 영화, 패션, 유통, 예술 등 업계를 넘나들며 그 업계에 속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컨버스 팬들은 다른 브랜드의 고유한 느낌을 컨버스 스니커즈를 통해 소비하고 자기를 표현한다. 컨버스가 지금껏 선보인 콜라보레이션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2004년 – 영화 <아이, 로봇> 콜라보 / CONVERSE CT AS Leather I-Robot HI


ⓒSpotern


컨버스는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 제작팀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영화에서 윌 스미스는 컨버스 척 테일러 올스타 레더 모델을 신고 나온다. 작중 배경이 2035년인데도, 컨버스의 아이코닉한 멋 돋보인다. 이 모델은 한정판으로 발매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2) 2009년 – 꼼데가르송 콜라보 / the Comme des Garcons Play x Converse Chuck Taylor


ⓒEnd Clothing


컨버스의 대표적인 콜라보레이션 모델이다. 일본의 패션 브랜드인 꼼데가르송과 협업했다. 컨버스 옆면에 꼼데가르송의 트레이드 마크 '하트 로고'를 새겨서, 스니커즈에 감각적인 멋을 더했다. 꼼데가르송 컨버스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모델이다.


 

3) 2011년 – 슈퍼마리오 콜라보 / The Converse x Super Mario Bros


ⓒSneakernews


2011년 게임 슈퍼마리오의 탄생 25주년을 기념하여, 컨버스와 콘솔 게임기 브랜드 닌텐도가 협업했다. 척 테일러 올스타 클래식에 마리오 캐릭터를 디자인으로 활용했다. 일본에서만 정식 발매되어서 희소성이 높다.



4) 2021년 – 오프 화이트 콜라보 / The Converse x Off White


ⓒConverse


이탈리아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오프 화이트와 함께 기획한 컨버스이다. 오프 화이트의 창시자이자 루이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버질 아블로'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가 컨버스와 협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단종된 제품이었으나 팬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2021년에 재발매됐다.

 


5) 2021년 – 장 미셀 바스키아 콜라보 / The Converse x The Jean-Michel Basquia

ⓒConverse


2021년 9월 컨버스는 아티스트 장 미셀 바스키아 콜라보 에디션을 출시했다. 바스키아의 시그니처인 '페즈 디스펜서(Pez Dispenser – 왕관을 쓴 공룡)'와 '이집트의 왕들 III(Kings of Egypt III)' 등을 컨버스의 옷과 신발에 프린팅 했다.



이밖에도 컨버스는 롯데백화점, 몽클레르, 골프 왕, 디스이즈네버댓 등 다양한 브랜드와 지속적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컨버스의 팬들은 콜라보 제품으로 자신의 매력을 드러낸다. 컨버스의 콜라보 제품은 단순한 협업 결과물이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이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길을 터주는 길라잡이이다.




커스터 마이징

콜라보레이션 외에 커스터 마이징 역시 컨버스 철학과 결이 맞다. 커스터 마이징은 물건의 특성이나 외관을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헌 옷을 리폼하거나, 스마트폰 케이스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컨버스의 커스터 마이징 문화는 오래됐다. 설에 의하면, 1910년대의 농구 선수들이 컨버스 운동화에 친필 사인이나 격언을 쓴 것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컨버스에 자신을 상징하는 패치를 달거나, 원단 위에 페인트 칠을 하기도 한다. 신발 옆면을 절개해서 지퍼를 달기도 하고, 격언을 자수로 새겨 넣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신발 밑창에 두툼한 군화용 밑창을 덧대어서 밀리터리 감성을 내기도 한다.


ⓒYOMZANSI


팬들의 커스터 마이징 문화는 컨버스의 공식 서비스가 되었다. 2015년 3월, 컨버스는 고객이 컨버스를 본인만의 스타일로 디자인하는 'Converse By You'서비스를 출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컨버스 홍대점, 더 현대 서울 점, 부산 서면점 등에서 체험할 수 있다. 과정은 이러하다. 매장에서 원하는 컨버스 모델을 구매하고(기존에 신던 신발도 가능하다.), 커스터 마이징 옵션을 선택한다. 자수, 패치, 각인, 프린트, 로고 디자인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옵션을 고른 후 제작이 완료되면 신발을 수령한다. 그렇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컨버스를 신는다. 커스텀 된 컨버스에는 개인의 인생이 담겨 있다. 각자가 살아온 인생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컨버스의 디자인은 한계가 없다.






나는 검정 컨버스 척 테일러 1970s을 즐겨 신는다. 오직 검정 캔버스와 아이보리 고무창으로만 만들어졌다. 이 외에 장식은 없다. 기본을 중시하고 군더더기 없이 살려는 내 성향에 맞다. 반면에 내 친구는 원색의 컨버스를 즐겨 신는다.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혹은 다양한 색과 소재를 혼합한 모델을 계절별로 모은다. 그 친구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새로운 물건이나 기술이 등장하면 꼭 먼저 경험하려고 한다. 화려한 컨버스는 그러한 친구의 성향과 짝을 이룬다.


사람은 사람마다 타고난 것이 있다. 타고남은 고귀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타고남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지키고 내보이며 번잡한 삶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잃는다면 우리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의 '타고난 정체성'만큼은 마음껏 사랑하고 표현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 자유가 있다. 컨버스는 그 자유를 전 세계인과 나눈다. 사람들은 컨버스를 신고, 그들의 고귀한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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