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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Dec 15. 2021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이란

남성 편집샵, 네이비 마켓


나는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편이다. 15년 넘게 입는 츄리닝도 있고, 7년째 쓰는 면도 솔도 있고, 20년 동안 같이 지내는 책상도 있다. 오래되었지만 망가지지 않았으니 버릴 이유가 없다. 내 삶의 일부로 그들은 나와 늙어간다. 생각해 보면 그 물건들은 대체로 무난하다. 쨍한 색감이나 화려한 무늬가 없어서 손이 자주 간다. 2021년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에 연을 맺은 남성 편집샵 네이비 마켓이 그러하다. 네이비 마켓의 김동우 대표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마치 무난한 네이비와 같은 물건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네이비 마켓의 대표, 김동우 디렉터. ⓒ다


SS_대표님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동우_안녕하세요, 저는 강동구청에서 남성 편집샵 네이비 마켓을 운영하는 김동우입니다.


SS_편집샵이라면 다양한 제품들을 구비하는 건데, 네이비 마켓은 패션이 주축인가요?


동우_네 그렇습니다. 남성복을 중심으로 구두, 신발, 가방, 액세서리 등을 수입해요. 때로는 일상에서 활용하기 좋은 생활용품도 가져와요. 와인 오프너 같은 것들이요. 의류는 클래식이나 워크웨어, 캐주얼 등 여러 스타일을 전개해요.




SS_매장에 들어왔을 때 느낀 게, 샵 이름 그대로 네이비 옷이 가득하다는 거예요.


동우_제가 네이비색을 좋아해요(웃음). 색의 성질이 모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컬러죠. 오히려 무채색인 검은색보다 여기저기에 입기 좋아요. 이 색을 컨셉으로 한 편집샵을 열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네이비와 어울리는 컬러도 조금씩 들여와요.


SS_독특한 컨셉이에요. 해외에도 특정 컬러만 취급하는 편집샵이 있더라고요.


동우_맞아요. 어느 편집샵은 흰색 반팔 티만 바잉하는 곳이 있어요. 그런 것이 편집샵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봐요. 저도 저만의 정체성이 담긴 브랜드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네이비색으로 말이죠.




SS_대표님의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일까요?


동우_저는 물건을 오래 써요. 나와 세월을 공유하는 물건은 고유한 멋이 있죠. 제가 네이비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네이비는 유행이 없어요. 아무 때나 입고, 쓰고, 사용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답니다.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네이비 물건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 저의 정체성이자 철학입니다.


SS_물건의 품질도 신경을 많이 쓰시겠네요.


동우_내구성을 특히 신경 써요. 제품의 원단이나 구조가 약하면 들이지 않아요. 색만 네이비라고 해서 오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색과 견고함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해요.


김동우 대표의 시선으로 가득한 옷들이 자리하고 있다. ⓒ다


SS_제품을 들인다는 말씀이 해외 브랜드를 수입한다는 건가요?


동우_네 맞아요. 지금은 코로나로 해외 출장이 어렵지만, 그전에는 일 년에 많게는 7~8번씩 출장을 갔어요. 주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로 갔고 일본도 갔어요. 그곳에서 네이비 마켓과 결이 맞는 브랜드를 찾아오죠.


SS_해외 브랜드를 들여오는 일은 어렵다고 들었어요. 국가마다 품질에 대한 기준도 다르고, 서로의 문화도 익숙하지 않고, 의사소통도 쉽지 않고요.


동우_그렇죠. 그런데 브랜드 투어를 해보니까 자신들이 만든 것에 자부심이 강한 브랜드는 서로 마음이 잘 통했어요. 그들도 저와 같은 철학을 가졌어요. 유행에 상관없이 계속 쓸 수 있는 튼튼한 물건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죠.




SS_추구하는 바가 같으면 금방 가까워지는 듯해요. 그런 브랜드 중에서 맨 처음 연을 맺은 곳이 어디일까요?


동우_'오메가 글러브(Omega Gloves)'라는 이탈리아 장갑 브랜드예요.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인데요. 네이비 마켓 초기 때부터 이곳의 한국 총판을 맡아왔어요.


SS_어떻게 알게 된 브랜드인가요?


동우_구글링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요. 4대째 가업이 이어지는 곳이고, 제품도 좋아 보이더라고요. 이메일로 샘플을 요청해서 장갑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지금 CEO의 아버지가 그냥 나폴리로 오라고 하더군요(웃음).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오메가 글러브 공장으로 갔어요.


 

 

SS_흥미롭네요.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을 텐데, 어떠셨나요?


동우_직접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들의 업에 대한 자부심과 철학을 깊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들도 저처럼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세상에 내놓으려고 해요. 사용자의 세월이 장갑에 천천히 새겨지기를 바라죠. 저와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서 빨리 친해질 수 있었어요. 덕분에 끈끈한 사이를 이어가네요. 이제는 파트너라기 보다 가족이 된 기분이에요.




 


SS_문득 대표님의 첫 해외 협업 스토리가 궁금네요.


동우_네이비 마켓을 열기 전에 무작정 유럽으로 떠난 적이 있어요. 가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삐띠 워모(Pitti Uomo)'라는 패션 페어에 참석했는데요. 수많은 멋쟁이와 브랜드 관계자들을 보니까 무섭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브랜드와 협업하는 건지 많이 배웠어요. 다음 여행지인 나폴리에서는 평소 관심 있었던 우산 브랜드를 찾아가서 용기를 내서 주문을 했답니다. 돈이 없어서 주문량이 적었는데 그냥 해주더라고요. 그게 저의 첫 해외 협업이에요.


SS_정말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외국에서 처음 이룬 성과잖아요.


동우_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작했으니까요. 그때 비로소 제 자신이 바이어로서 첫 단추를 끼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웃음).


ⓒ다


SS_여러 아이템을 수입하시다 보면, 유독 추억이 깃든 물건도 있을 듯해요.


동우_'빈투바 초콜릿(Bean To Bar Chocolate)'이라고 있어요. 이건 해외에서 가져온 건 아니고, 로스팅 마스터즈(Roasting Masters)라는 팀과 협업해서 만든 초콜릿이예요. 네이비 마켓 매장을 열기도 전에 이룬 프로젝트였죠.


SS_빈투바 초콜릿이요? 처음 들어보네요.


동우_커피 원두를 볶아서 커피를 내리는 것과 비슷해요. 로스터가 직접 카카오 빈을 선별해서 볶고 숙성하고 형태를 만들어서 초콜릿을 만드는 것이죠. 제가 한창 초콜릿에 빠져서 관심이 있었거든요. 2010년대 중반에는 빈투바 초콜릿이 국내에 거의 없었어요. 찾다 보니까 한 군데에서 만들고 있었는데 그곳이 로스팅 마스터즈였죠. 계속 찾아가서 먹어본 덕에 그곳 대표님과 친해졌고(웃음), 같이 빈투바 초콜릿을 제작해보자고 콜라보를 제안했어요.




SS_보통 편집샵이라고 하면 패션이나 잡화를 판매하잖아요. 식품을 전개하는 곳은 처음 봤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동우_저는 편집샵이라고 해서 옷만 전개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으면 했거든요. 그게 옷이든, 신발이든, 식품이든 상관없이요. 지금도 그렇고요. 사실 빈투바 초콜릿 프로젝트를 했을 때 남는 것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뿌듯했어요. 친구들이랑 밤새 집에서 포장했던 순간과 남들이 못하는 걸 해냈다는 성취감은 저의 큰 자산이 됐답니다.






SS_저는 대표님 블로그를 보면서 놀랐던 점이, 직접 사용하시는 물건만 판매한다는 거였어요.


동우_시장성이 있어도 제가 사용하고 싶지 않은 물건은 매장에 두지 않아요. 물건을 경험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고객을 설득하겠어요. 꼼꼼하게 살펴보고 공부하고 일정 기간 써봐야, 그 브랜드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어요.


SS_그러면 고객에게 소개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요?


동우_그래도 해야죠(웃음). 적당한 품질에 반응 좋을 브랜드들만 수입하면 저도 편해요. 하지만 그건 저의 철학에 어긋나요. 제가 쓰고 싶지 않은 물건은 고객도 쓰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동우 대표가 직접 사용한 물건들이 네이비 마켓을 채운다.  ⓒ다


SS_많은 분들이 네이비 마켓을 찾는 이유가 있네요. 그럼 운영하시면서 힘드셨던 적은 없나요?


동우_제가 노력해서 들여온 브랜드가 반응이 저조할 때죠. 파트너사와 미팅하고, 그들의 제품을 직접 써보고, 브랜드 역사에 대해서 깊게 공부할 때는 확신이 들었는데, 결과가 미흡하면 생각이 깊어져요. 저의 설명과 설득이 고객에게 와닿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SS_그럴 때마다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동우_ 생각보다 간단했어요.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이죠. 기다리다 보면 의도치 않게 판매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느낀 것이, 제 신념대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거였어요. 네이비 마켓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다 보면 저희를 알아봐 주는 분들이 더 생길 거라고 믿습니다.




SS_네이비 마켓의 고객에게 어떤 역할이 되고 싶으신가요?


동우_믿음을 주는 역할이 되고 싶어요. 일본에 유명한 편집샵이 있거든요. 거기에는 한 할아버지께서 몇 십 년째 일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단골들도 그만큼 오래되셨어요. 그분들은 그 할아버지가 추천하는 물건을 묻지도 않고 가져가세요. 그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답니다. 그만큼 할아버지를 믿고 신뢰한다는 뜻이잖아요. 저를 찾아 주시는 분들에게 제가 그런 존재이길 바라요.


SS_그렇다면 앞으로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요?


동우_네이비 마켓을 한국을 상징하는 편집샵으로 키우는 거예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하고 싶어 할 만큼요(웃음). 나라마다 대표적인 편집샵이 있어요. 거기에 입점한 브랜드의 위상을 바꿀 만큼 영향력이 높아요. 네이비 마켓이 그런 곳이 되길 꿈꿉니다. 저의 철학이 그리고 저의 정성이 네이비 마켓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부지런히 노력하겠습니다.






네이비 마켓의 물건을 보면서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바로, 양품(良品)이다. 양품은 질 좋은 물건을 의미한다. 명품처럼 특출난 명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품질이 뛰어나서 세월의 흐름을 온화하게 받아낸다. 네이비는 우리 말 '쪽색'에 가까운데 이 색은 '견고', '영원', '신뢰'를 상징한다. 김동우 대표는 오랫동안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는 물건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네이비 마켓'의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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