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지오 Dec 30. 2021

잘 가시게, 2021년이여

소망


이 글은 오늘 아침에 손으로 쓰는 글이다. 이따 오후에 워드에 옮겨 적을 예정이다. 방금 일어났는데 새벽부터 휘몰아친 생각으로 머리가 아프다. 글을 쓰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될 지경이다. 두통은 글쓰기로 다스려야 한다. 자세를 고쳐 잡고 책상 앞에 앉았다. 스탠드 등을 켜고 공책을 끌어당긴 후 검정 펜을 뽑았다. 들숨과 날숨을 몇 차례 반복한 후 종이 위에 글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달력을 보니 12월 30일이다. 아, 올해도 다 갔구나. 하염없이 흘러 저 멀리 가는구나. 그냥 보낼 수 없어서 1년간 걸어온 삶을 회상하고자 이렇게 몇 자 적는다.


올해 1월은 어땠는지 곱씹어본다. 그때 내 처지는 아수라였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진로를 틀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진 요즘에 참으로 철없는 용기였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당시에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겠다는 욕망에 허덕였다. 욕망은 무섭다. 나름 이성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그 이성의 꼿꼿함마저 무너뜨리니까 말이다. 나의 이성은 철없는 용기와 불타는 욕망으로 무너졌다. 봄이 왔을 때 괜한 짓을 한 건가 싶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때, 우물쭈물거렸다면 계속 남의 부품처럼 살았을 것이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 열두 번씩 기분이 오르내렸다. 밥 먹다가 갑자기 불안했고, 불안하다가도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뉴스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을 보면 심장이 조였다가, 훌륭한 책을 읽으면 역시 글이다, 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친구들 모르게 혼자서 준비하는 일이어서 누구에게 이 고달픔을 말하기도 어려웠다. 동굴 속에서 감내해야 했다. 작가로서 어떻게 하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고 생각하고 시도하고 수정하고 도출하면서, 나의 것을 만들고자 했다. 올해 여름까지 그렇게 보냈다. 지금도 그렇다. 물론 그때에 비하면 사정이 나아졌다. 가을까지 부지런히 쓰고 또 쓰니 기고 문의도 들어왔고 내 글을 읽고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벽 하나 사이를 두고 노다지가 저 너머에 있는 것 같다. 다만 그 벽은 굉장히 두꺼워 보인다. 부지런히 곡괭이 질을 해서 부수어야 할 판이다.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계속하다 보면 되겠지.


글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좋아하는 패션업계의 소식을 간간이 확인했고, 나머지는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3~4월에 잠깐 PC게임을 즐겼다. 약속은 거의 잡지 않았다. 사실 30대 초가 되니 친구도 예전 같지 않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기에 의사소통이 점점 겉돈다. 형식상 묻는 안부와 단물이란 단물은 모조리 빠진 추억 몇 개 가지고 자리에서 죽을 친다. 그러니 절친들 말고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지 않게 된다. 사람을 안 만나니 돈이 굳었다. 그 돈으로 올해 책을 꽤 많이 샀다. 세어보니 21권이다. 이 책의 저자들 덕분에 나는 한글을 쓸 자격을 겨우 취한 듯하다. 먼 곳에서 감사함을 표한다.


12월 중순에 진행하는 업을 마무리했고 그 뒤로는 내년을 준비 중이다. 준비라고 해서 요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생각하고 무언가를 참고하는 행위이다. 생각에 빠지면 생각의 나라로 가는데, 그럼에도 생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답답할 노릇이다. 명쾌한 답을 주지도 않으면서 생각과 고민 이 두 놈들은 머릿속을 새까맣게 태운다. 어찌하랴. 방법이 없다. 답을 찾으려면 고생할 수밖에. 이것이 내가 당분간, 아니 평생 겪어야 할 팔자 아니겠는가. 고생한 만큼 내년에는 더 웃을 수 있겠지. 나는 분명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지리멸렬했던 한 해가 떠난다. 속절없이 흐르고 흘러 저 멀리 떠난다. 매년 묵었던 해를 보낼 때 감정이 복잡하다. 무덤덤하면서도 서운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개운하다. 그만큼 오만 감정이 1년 사이에 명멸했다는 증거일터. 다가올 새해에 행복한 일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지겨운 우한 폐렴이 가버리고, 경직된 사회에 기쁨의 윤활이 흐르고, 멀어진 관계가 세 발자국 가까워지고,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이 더 건강해지고, 나의 일이 성장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와 보내는 10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