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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Jan 05. 2022

글을 천천히 쓰기로 했다

느림의 미학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운 다짐을 할 때이다. 여러 다짐을 는데 그중 하나가 '천천히 쓰기'이다. 무엇을 천천히 쓰느냐. 글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브런치에 발행하는 글이다. 작년에 어느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그분이 말씀하길, '저는 차곡차곡 쌓은 글이 좋아요. 글을 자주 쓴다고 좋을 게 없는 듯해요.'. 나는 그 댓글을 읽고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요 근래 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바를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레터 서비스와 미디어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그 수가 적지 않다. 거기에는 하루에도 수없는 글이 올라온다. 하루를 놓치면 다음날 몰아서 읽기가 벅찰 정도이다. 유익한 내용을 얻고자 구독한 것인데 어느 순간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감히 추측한 바, 글을 쓰시는 분들은 분명 지쳤을 것이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으로 정해진 수준의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다. 고역이 따로 없다. 처음에는 장엄한 다짐과 기대를 업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지만, 시간이 갈수록 키보드는 나의 생각을 담는 기계가 아니다. 나의 생각과 손을 옭아매는 포승줄이다. 키보드든 연필이든 펜이든 포승줄이 되는 순간 답이 없다. 글쓰기가 싫어지고 나중에는 한글의 자음 모음도 보기 싫어진다.


한 사람에서 나올 수 있는 글의 양과 질은 정해져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특정 기준 이상을 넘기기 어렵다. 등 뒤에서 누군가 총을 겨누며 위협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미디어 회사들은 다양한 필자와 협력한다. 하루에 10개의 글, 소위 콘텐츠를 올린다고 가정하자. 오늘 작가 10명이 쓴 글을 올리면 다음 날은 다른 작가 10명이 쓴 글을 올린다. 그렇게 5일을 올린다. 주말은 회사 직원도 작가도 쉬는 날이다. 첫째 날에 올린 작가들은 남은 6일 동안 다음 주에 올릴 글을 궁리한다. 이 방식은 집필자에게는 편할 수 있다. 다만 회사 담당자들이 곤죽이 된다.


회사 담당자들은 양질의 글을 쓰는 집필진을 섭외하고, 그들의 글을 모아서 편집하고,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독자의 반응을 살피고, 반응을 취합하여 자료로 만들고, 회의를 하고, 연락 안 되는 집필진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한다. 줄이고 줄여서 이 정도일 것이다. 이 굴레가 반복된다. 지나친 반복은 사람의 넋을 빼앗는다. 웹에 올라가는 글이나 메일로 오는 글의 편집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글의 주제가 거기서 거기로 변모한다. 집필진의 수가 줄어들면서 쓰는 사람만 쓴다. 독자들은 지루함과 피로 느끼고 구독 서비스에서 이탈한다.


여유와 기다림이 사치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종합적이고 공격적인 글 콘텐츠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니 정신이 없다. 글을 쓰는 사람도, 그 글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도 불 같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매일매일 더 특별하고 더 놀라운 무언가를 내놓으려고 한다. 구독자들도 덩달에 창작자들과 관계자들을 닦달한다. 세 집단 모두 누구 하나 떨어져 나갈 때까지 쉼 없이 스스로를, 상대방을 채찍질한다. 매일 글쓰기가 언제부터 글 쓰는 자의 덕목이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언제부터 매일매일 새로운 글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미디어의 책임이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한때 나를 알리겠다는 욕심에 글을 거의 매일 썼었다. 얼마 못가 소재가 바닥났고, 자기 복제가 발생했다. 분량을 채우려고 문장을 늘여 썼고 틀에 박힌 표현을 끌어 썼다. 올해부터 나는 글을 더욱 천천히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하나 혹은 이주일에 하나. 더 천천히 쓴다면 한 달에 하나씩 브런치에 올리는 것도 고려 중이다. 몰아치듯 쓰면 마음이 급해서 단어와 조사가 꼬인다. 결국 문장이 탁해져서 글이 수다스러워진다. 만약 출판사와 계약해서 장기간 책을 써야 한다 해도, 나는 급하게 쓰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에 특정한 날과 시간은 글에서 멀어질 것이다. 종일 쓰고 매일 쓴다고 해서 글은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글에 안달이 더해지면 독주毒酒가 될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생각을 한 글자씩 느리게 써 내려가는 것도 작가의 특권이다. 좋은 글들을 잘 취합해서 여유 있게 내놓는 것도 미디어의 의무이다. 손꼽아 기다린 글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것도 독자의 미덕이다. 매일의 덫에 빠져 종적을 감춘 작가미디어가 많다. 다들 천천히 저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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