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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Feb 03. 2022

'칼의 노래'를 필사했다

쓰고 쓴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통필사를 어제 끝냈다. 2021년 11월 20일부터 시작했으니 두 달 조금 넘는 기간이다. 작년 봄쯤에 칼의 노래를 처음 접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어서 한 번은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찰나였다. 교보문고에 가서 첫 페이지부터 읽었는데 전율을 느꼈다. 칼의 노래는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이 작품을 읽고, '한국문학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바로 구매해서 일주일 만에 완독했다.


완독 후 반년이 흘렀다. 나는 내 글쓰기 실력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문득 필사가 떠올랐다.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비법으로 필사는 늘 손꼽힌다. 필사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아날로그한 훈련이다. 필사로 득을 본 프로 작가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종이에 펜이나 연필로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받아 적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첨단 전자기기로 가득한 요즘 세상에도 손으로 쓰는 필사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유명 저술가들도 칼의 노래의 필사를 권유했다. 나는 공책을 꺼내서 칼의 노래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도입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이다. 김훈 작가는 '꽃이'로 쓸지 '꽃은'으로 쓸지 몇 날 며칠 고민했다고 한다. 이는 객관적 서술이고 은은 주관적 서술이기에, 문장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김훈 작가는 결국 '이'를 선택했다. 나는 이 문장을 통해서 조사의 뉘앙스가 얼마나 섬세한지를 깨달았다.


주격조사 <이/가>와 보조사 <은/는>을 예로 들어보겠다. 조사 <이/가>와 <은/는>을 주격 조사로 묶는 문법서가 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이/가>는 주격 조사가 맞지만 보조사 <은/는>은 주어뿐만 아니라 목적어, 동사, 형용사, 조사에 뜻을 더한다. 펴보니 <은/는/이/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된 뜻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사용된다. 사전에 등재된 정의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주격 조사로서의 역할만 놓고 봤을 때 <이/가>는 문장의 주체에 무게감을 싣고, <은/는>은 문장의 서술부에 무게감을 싣는다. 조사에 대한 논문과 책을 읽으면서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 즉,


'무엇' 이/가 하다

은/는 '무엇하다/이다'


인 셈이다. 이 글에서 두 조사의 차이를 깊이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그럴 실력도 없거니와). 어느 국문과 교수가 쓴 글에 따르면, 한국어는 열린 언어라고 한다. 그래서 문장의 요소를 재단하듯이 분석하지 말고 자주 읽고 쓰면서 그 요소의 고유한 의미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수는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도 어느 순간 조사를 맹목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전보다 조사를 정확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필사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집필할 때 조사 쓰임에 공을 들였다는데, 글을 읽으면서 그의 장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칼의 노래에서는 동의어 반복이 흔하다. 한 문단을 이루는 문장마다 같은 주어가 계속 쓰이거나, 특정 조사가 여러 곳에 자리한다. 앞에서 쓴 표현이 뒷문장, 그다음 문장에도 똑같이 쓰인다. 필사를 하기 전에 나는 동의어 반복을 무조건 피하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자주 사용되는 주제어는 제외하고 말이다. 동의어 반복은 문장의 건강함을 해치는 원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편견이 이번 필사를 통해 깨졌다. 같은 어구나 단어를 반복해서 써도 크게 어색하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심지어 글에 몰입해서 읽다 보면 표현이 반복되었는지 인지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반복은 오히려 문장에 리듬감을 더했다. 김훈 작가의 작품이 산문시로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필사를 하면서 얻은 또 다른 수확은 '단문 작성력'이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을 다룬 작품이다. 무인의 고뇌와 강건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김훈 작가는 문장의 군더더기를 모조리 쳐냈다. 장문을 쓰더라도 불필요한 수사는 되도록 배제했다. 장문인데 단문처럼 읽혔다. 칼의 노래의 문장은 힘이 있다. 칼날의 서늘함과 쇠의 근엄함이 섞여 있다. '-다'로 끝나는 짧은 문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호흡이 끊기지 않는다. 나는 필사를 하면서 김훈 작가의 단문을 흡수하고자 노력했다. 처음 일회독을 할 때에도 단문의 간결함에 탄복했는데, 필사를 할 때는 그 느낌이 더욱 강렬했다. 김훈 작가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수다스러운 글을 쓰지 않으려 한다.', '의미 없는 말을 중언부언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훈 작가는 그의 말을 칼의 노래로 지켰다.


예전에 내가 브런치에 쓴 글들을 보면 참으로 민망한 수준이다. 온갖 수식어구로 가득하다. 쓸데없는 형용사와 부사가 주어 동사를 휘감아 돈다. 없어도 될 말이 기어코 문장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문장을 늘어놓는다. 나는 칼의 노래를 처음 일회독을 한 이후로 이 습관을 제법 고쳤다. 필사를 하면서 또 한 번 고쳤다. 나는 글을 쓸 때, 단문이 글의 마지막까지 뻗어 나가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


단어 정리에도 힘썼다. 아는 단어라도 그 뜻을 정확히 모르면 기록해서 외웠다. 칼의 노래에는 조선 시대에 사용되었던 단어가 등장한다. 어떤 단어는 백과사전에서 다룰 만큼 단어의 역사 배경이 깊다. 그런 단어는 중요한 내용만 훑었다. 재독을 하면서 그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해상 전투신은 실제로 지도를 찾아보면서 필사했다. 명량해전, 경상 해안의 포구, 조선 수군의 우수영과 고금도 수영 위치 등을 확인하면서 필사를 했다. 글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배경 묘사가 훨씬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알고 읽어야 다가오는 감동이 배가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베껴 쓰면 필사는 중노동에 불과하다. 능동적으로 읽어야 한 번을 읽고 쓰더라도 책의 내용과 문장이 머릿속에 남는다.






매일 썼다면  빨리 썼을 텐데, 바쁜 일들로 인해서 그러지 못했다. 여유가 있으면  챕터를 필사했고, 바쁘면  페이지라도 썼다. 사실 필사를 했다고 해서 어마어마한 실력 향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통필사를  뒤에도 재독 하면서 작품 속으로 파고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 겨우 글쓰기 실력이  발자국 는다.  발자국을 무시할 수 없.   발자국 안에 글을 기획하고,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고, 적절한 문법을 구사하며, 문장을 써내려 가는 힘이 농축되어 있다. 글을 쓰다 보면  힘을 저절로 사용한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필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글을 음미하면서 쓰면 한 챕터(약 3~4장) 당 3시간이 걸린다. 이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보상을 얻는다. 처음에는 진도가 더디어서 지루했다. 괜히 시작했나 싶었다. 어쩔 때는 필사를 하면서도 잡생각에 빠져서 문장이 손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때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다. 문장이 내 감각에 젖어들 때까지 쓰고 또 썼다. 칼의 노래로부터 얻은 지혜는 나의 생업에서, 브런치에서 발휘되고 있다.


일회독에 이어서 일회사(寫)했다. 그럼에도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가득하다. 적어도 10번 이상은 곱씹어야 비로소 알 것 같다. 칼의 노래는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책이다. 교두보 삼아서 몇 번이고 읽고 쓰기를 반복할 것이다. 현재보다 성장한 미래의 나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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