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이해하는 방법

자랑의 정의

by 코지오


감정은 단일 요소로 형성되지 않는다. 호르몬 반응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정치가 감정의 뉘앙스를 완성시킨다. 16세기 서구권에서는 '슬픔'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슬픔을 아는 사람은 안 좋은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있다고, 당시의 사람들은 믿었다. 그래서 슬픔을 학습하고 탐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그들에게 슬픔은 자기 계발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21세기 사람들이 슬픔을 대하는 것과 다르다. 정은 언어처럼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한다. 따라서 특정 감정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의 개념 확립에 영향을 준 외부 요인을 살펴야 한다고, 문화사학자 티파니 와트 스미스는 말한다.






욕구도 감정에 포함된다면, 나 역시 과거와 다른 감정이 있다. 바로, ‘자랑’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좋은 일이 있으면 친한 지인들에게 알렸다. 사업에서 어떤 성과를 냈다, 어디에 다녀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하할 일이 생겼다 등, 자랑의 주제는 일상이었다. 잘난 척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살다가 가끔 마주하는 반짝이는 일을 기쁜 마음에 공유한 것이 전부였다. 지인들은 덕담을 나누어 주었고, 나는 그 덕담으로 기운을 차렸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지인이 기분 좋은 일을 자랑하면 나는 기꺼이 축하해주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던가. 중국발 우한 바이러스로 삶이 팍팍해지니, 다들 상대의 자랑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 한 번은 친구가 사업을 시작했다고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렸다. 그의 말은 자랑이기보다 포부에 가까웠다. 평소 같았으면, 친구들의 축하가 이어졌을 텐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읽고 답을 하지 않았다. 그 상태가 1시간 지속되었다. 1시간 뒤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축하해."


짧은 메시지였다. 그 친구는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짧게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친구가 말한 뒤로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축하를 해주었지만, 말에 진심이 없는 느낌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친구는 고맙다고 말했지만 내심 서운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한 웹진에 기고를 했을 때이다. 첫 기고 글이 올라온 날, 서프라이즈로 단톡방 친구들에게 그 글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친구 몇 명은 고생했다는 말을 했다. 다른 친구 몇 명은 '이게 뭔데?'라는 식으로 묻는 것 외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때 깨달았다. 좋은 일이 생겨도 남에게 알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예전에 노자의 도덕경을 잠깐 읽은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 있었다.


자랑하려고 하지 말라. 자랑은 자랑하고픈 마음으로 남을 때 의미 있는 것이다. 자랑하여 그 일을 세상에 알리면, 그 일은 무의미해진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나 저러한 일을 겪은 뒤로, 노자가 무슨 의도로 저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자랑을 해봤자 얻는 것은 상대의 관심이 전부라는 것을, 또한 가족이 아닌 이상, 상대방은 내가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않는다는 것을, 노자는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서점에 가면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 어떻게 표현할지를 알려주는 책들이 있다. 보통 심리학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책들이다. 책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중론은 '굳이 애써 알리지 말라.'이다. 상대의 칭찬과 덕담 그리고 부러움은 찰나에 불과하고, 상대로부터 질투만 받으며, 자랑은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중독성이 있다고, 책의 저자들은 전한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사업하는 친구와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 많은 듯하다. 예전에는 기쁜 일은 나누어 두 배의 기쁨을 얻으라고 했는데, 시대가 바뀌었다. 자랑은 스스로 간직할 때 더 가치 있는 욕구가 되었다.






지속되는 답답한 현실이, 사람들의 심적 여유를 빼앗았다. 사라진 여유로 인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자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내 친구들도 그러했다. 사회와 사람이 변했고 그 속에서 생기고 사라지는 감정의 결도 변했다. 나는 요즘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가족과 연인에게만 말한다. 가족과 연인은 세상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나를 품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기쁜 일을 전한다. 자랑에 대한 나의 정의가 달라졌다. 그 이유를 들여다본 후, 나는 자랑 욕구를 조금 더 수월하게 다루게 되었다.











<티파니 와트 스미스(Tiffanyt Watt Smith)의 강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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