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인다

객관

by 코지오


건설사 CEO인 아이작 리드스키는 시각 장애인이다. 19세에 하버드를 졸업한 그는 미래가 보장된 인재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망막에 이상이 생겼고 20대 중반에 이르자, 그의 시각 기능은 멈췄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보통 좌절한다. 모든 것을 부정하며 세상과 단절한다. 아이작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그에게 벌어진 일을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내면을 성찰하면서 현실을 판단하는 힘을 길렀다. 억측을 거두어 내자, 괴롭다고 여긴 일들이 오히려 즐거운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이작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기분에 죽고 산다는 말이 있다. 기분이 좋으면 누가 나에게 욕을 해도 관심이 없다. 반면에 기분이 나쁘면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한다. 나의 감정에 의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욕과 작은 일은 변화가 없다. 욕은 욕이고 작은 일은 작은 일이다. 그것들은 늘 같다. 어디 감정뿐일까. 그릇된 신념으로 사실을 왜곡한다. 상대방을 흑백논리로 재단하거나 어떠한 상황을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었다.



브런치

내가 자주 가는 브런치 가게가 있다. 경복궁 역 근처에 있다. 카야 토스트, 스크램블 에그, 소시지, 베이컨, 샐러드, 커피로 구성된 메뉴인데 맛이 일품이다. 작년 11월에 혼자서 방문한 적이 있다. 초겨울이어서 적당히 추웠고 공기는 맑았다. 마침 계약을 따낸 직후였다. 일의 성취감과 좋은 날씨 속에서 먹는 브런치는 산해진미였다. 카야 토스트의 바삭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스크램블 에그는 휘핑크림처럼 부드러웠다. 소시지는 짜지 않았고 베이컨은 기름기가 적어서 담백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가 음식의 뒷맛을 받쳐주었다.


올해 2월에 다시 방문했다. 늘 먹던 브런치 메뉴를 주문했다. 푸짐한 한상이었다. 각각의 음식은 고유한 자태를 보였다. 빵을 입에 넣는 순간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돌덩이를 씹는 기분이었다. 요리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동행한 지인은 맛있게 먹었다. 오늘따라 토스트가 더욱 향긋하고 바삭하다면서 먹었다. 그때 나는 건강 문제와 미래 걱정으로 다소 불안정한 상태였다. 상념에 잠식되어서 음식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브런치는 변함이 없었다. 나의 기분이 문제였다.



조급함

나의 글에 빈번히 등장하는 주제이다. 혼자 일하게 되면서 나란 놈이 이렇게도 조급한 인간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일부를 빼고는 전부 홀로 감당하다 보니, 나의 언행이 혹은 선택이 옳은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으니 애매했다. 애매함은 나를 공상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공상이 쌓일수록 나의 기분은 천장과 바닥을 수십 번 오르내렸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메일로 자료를 송부했는데 답장이 늦으면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메일 내용을 이상하게 썼나?'부터 시작해서 '정리한 자료가 형편이 없어서 일부러 이러나?'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극한으로 치달을 때는, '이제 이 사람과 일 못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생각은 쓸데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개 자녀의 등하원을 돕느라고, 지인과 전화를 하느라고, 몸이 아파서 잠시 병원에 다녀오느라고,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응대하느라고, 식사를 하느라고 상대방은 답장을 늦게 한 것이었다. 조급함으로 인해 나는 사실을 멋대로 해석했다.




환경과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떠한 사건을 보고 결과를 섣불리 내지 않는다. 자기 비하에 빠져 허덕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에 편향과 오해는 결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사실은 사실에 불과하다. 책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 씨는 인간은 개처럼 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는 밥 먹을 때 밥을 맛있게 먹고 산책할 때 산책을 신나게 한다. 인간처럼 잡념을 떠올리며 괴로워하지 않는다. 개는 사실에 집중한다.


나에게 일어난 안 좋은 일들 중 상당수가 안 좋은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 나의 격한 심정 때문에 별것 아닌 일을 불행하다고 한 것은 아닌지. 괜한 주관은 사실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한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인생은 조금 더 가벼워질 것이다.











<아이작 리드스키(Issac Lidsky)의 강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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