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함
요 며칠 브런치로 객원 필진 제안이 들어왔다. 요청자 대부분이 패션 잡지사와 마케팅 대행사였다. 그들은 굿 브랜드와 함께한다의 글 일부를 가져가는 대신 6만 원의 기고료를 주겠다고 했다. 알다시피 나는 브랜드 이야기를 쓴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목차로 나뉘는데 한 목차당 약 5천 자이다. 거기에는 영업, 인터뷰, 인터뷰 녹취, 집필, 수정, 교정교열, 자료 조사 등 나의 여러 노동이 들어 있다. 파트너들의 초상권도 있다. 그런 글을 6만 원으로 퉁치자는 것이다. 내가 프로젝트 하나에 백 단위를 받는데 말이다. 같은 분량, 같은 품질의 글을 10만 원에 써줄 수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이메일을 읽는데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나의 노션 홈페이지와 브런치 글을 정독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터인데. 확인도 안 하고 찔러보기식 영업을 한 것 아닌가. 그래 놓고 하는 말이, 자기네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기 때문에 나의 글을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켜줄 수 있단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해주면 남의 글을 후려쳐도 되는 것인가. 이 뿐인가. 보내준 회사 소개서에는 불명확한 문장이 가득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000 매거진은 패션 모던 라이프를 지향합니다. 일상의 무드를 익셉셔널하게 비틀어서 더 나은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영어로 뒤범벅된 문장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채운다. 팀원들의 직책, 회사 주소, 사업 영역 모두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그들은 한국 사람인 나에게 영업했다. 그렇다면 한국어로 쓴 회사 소개서를 보냈어야 하지 않은가. 영어로 꾸민 회사 소개서가 소위 '간지'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소통이 불가한데 멋만 부리면 무슨 소용인가. 글을 다루는 콘텐츠 회사라면, 영어와 한국어를 써야 할 곳을 구분할 줄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맥락이 없이 외국어를 때려 박은 문장은 쓰나마나한 글이다.
하나같이 나의 글을 헐값에 사려고 한다. 의뢰할 때는 세상 친절했던 담당자가 막상 작업 문제로 연락하면 감감무소식이다. 물렁한 표현으로 자신들을 소개한다. 이런 일이 연달아 일어나니 업계에 없던 편견이 생길 지경이다. 전에는 작업 요청이 들어오면 기쁜 마음에 메일함을 눌렀다. 이제는 또 어떤 곳이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라는 걱정이 앞선다. 나는 몹시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