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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Mar 23. 2022

글을 고치지 않기로 했다

그대로


얼마 전에  브런치 통계를 보았다. 샤넬, 롤렉스, 에르메스 글이 상위권이었다.   글은  상위권이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명품에 관심을 두는지   있는 대목이다. 오랜만에  글들을 읽었다.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준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문체가 영글지 못했다.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썼고 오글거리는 감탄사나 구어체 표현도 썼었다. 또한 같은 말을 자주 반복했다. 그것이 멋이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구조는 말할 것도 없다. 도입부에  말을  중간에 집어넣질 않나, 불필요한 문단을 찔러 넣어 흐름을 흩트렸다.


당시에는 나름 잘 썼다고 자부했다. 심지어 에르메스 브랜딩 글은 브런치 메인까지 올라갔었다(이 부족한 글을 골라준 에디터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다시 읽어보니 낯뜨거웠다. 싹 다 뜯어고칠까 말까 고민했다. 일주일 동안 머리를 굴리다가 내린 결론은 '그냥 내버려 두자'이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1권과 마지막 권의 그림체가 달라졌음을 말이다.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예로 들 수 있다. 1화를 보면 순정만화 같은 느낌이다. 캐릭터들의 얼굴이나 몸이 동글동글하고 귀엽다. 그런데 중간쯤 넘어가면서부터 그림체가 달라진다. 실사에 가까울 만큼 정교하다. 마지막 권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작화법이 발전한 것이다. 유튜버들도 그렇다. 처음 찍은 영상과 근래 찍은 영상의 스타일이 다르다. 인트로, 배경 음악, 그래픽, 촬영 구도가 조금씩 개선된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브런치 초기의 글들은 부족한 점투성이다. 꾸준히 쓰다 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 글쓰기가 늘었다. 문장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구조를 안정적으로 잡는 법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내 글이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에 노출되는 호사를 누린다. 현재의 글은 과거에 기록한 글에서 비롯한 결과이다. 과거의 글은 나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지난날의 감정을 기억한다. 그리고 순수한 열정을 간직한다. 그런 글을 수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첫 창작물은 어설프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며칠간 예전 글을 읽으면서 추억을 회상했다. 나의 삶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찾았다. 제법 쓸 만한 글감도 얻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배울 것이 있었다. 글을 수정했다면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흔적을 잃었을 것이다. 고치지 않기를 잘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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