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진작가, 사울레이터(Saul Leiter 1923-2013)의 전시회를 관람했다. 지금처럼 카메라가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사울레이터는 필름 카메라 하나로 뉴욕을 담았다. 웅크린 사내의 뒷모습, 계단 사이로 보이는 소녀의 얼굴, 창문으로 내다본 비 오는 거리. 각각의 사진에는 사울레이터의 시선이 깊게 스며 있었다. 사진의 구도가 기존 것들과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은 아름다웠다. 나는 사진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나도 전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회를 다녀와서 새 카메라를 구매하려고 알아봤는데 가격이 비쌌다. 다행히 여자 친구가 안 쓰는 DSLR를 주었다.
난생처음 접해보는 DSLR. 어딘가 어색하고 이질감이 들었다. 그러나 계속 사용할수록 스마트폰 카메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DSLR은 손맛이 있다. 조리개, 셔터 속도, ISO를 조정하면서 피사체를 담는 재미가 상당하다. 다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빛을 이해해야 하고, 구도를 알아야 하며, 현상 너머를 보는 감각이 있어야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 모드로는 DSLR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사진 공부에 빠졌다. 정보를 얻고자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대출해서 읽는다. 유튜브로는 사진사들의 경험담을 듣는다. 국내에서 유명한 온라인 사진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핀터레스트에서는 사울레이터의 사진이나 그와 비슷한 사진들을 참고한다. 이제 시작해서 모르는 것이 천지이다. 하나씩 배워 나갈 예정이다. 나의 사진 취미가 시작되었다.
젊은이
어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가고 있었다. 가면서 책을 읽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젊은 커플의 대화가 나의 독서 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상스러운 비속어를 써가면서 떠들었다. 앞자리에 아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눈총을 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사내가 그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젊은 커플은 사내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 열차 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남녀 모두 생김새는 멀쩡했는데 정신 연령이 그에 준하지 못했다. 그들은 근본 없는 말을 그들의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커플 앞에 앉아 있던 아이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다른 칸으로 자리를 피했다. 사내와 커플은 실랑이를 벌였다. 주변 사람 몇몇이 그들을 말렸다. 커플은 두 정거장 뒤에 내렸다. 내리면서도 욕을 해댔다. 사내는 얼굴을 붉히며 요즘 것들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근래 들어 예절을 모르는 젊은이를 자주 목격한다. 특히 카페에서 그러하다. 그들은 시끄럽게 떠든다. 그리고 남의 자리를 침범하면서까지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는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술이 들어가면 자제력을 잃는다. 19금스러운 스킨십을 서슴없이 하거나 민망한 단어를 끊임없이 내뱉는다. 혈기가 왕성해서 그런 것일까. 젊은 부모 역시 똑같다. 자녀가 공공장소를 헤집고 다니는데 혼내지 않는다.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행인이 주의를 주면 인상을 쓴다. 저런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앞서 말한 지하철 남녀처럼 되는 것인가. 젊은 세대는 교양이 있다는 말도 옛말인 것 같다.
일
2022년 1월부터 달려왔다. 그랬더니 벌써 협업 10개를 이루어냈다. 속도를 내면 이력을 빨리 쌓을 수 있다. 대신에 몸이 망가진다. 2월에 허리에 염증이 생겨서 고생했다. 3월에는 목감기로 기침에 시달렸다. 그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사실 욕심 때문에 무리를 했다. 남들은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뒤처지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급하면 금방 무너진다는 것을, 조급함에 의해 나는 또 인지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그 사람의 숨결과 생각과 감정을 두루 살펴야 쓸 수 있다. 빨리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속도가 붙으면 오히려 내용이 왜곡될 수 있다. 고로 차분하게 듣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이, 브랜드 플롯의 미학이다. 나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4월에는 포근함 봄을 만끽하면서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