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복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는 문제이다. 창작물마다 비슷함이 묻어나면 창작자는 고뇌한다. 복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해보지만 굴레의 높이는 멀고도 희미하다. 눈앞에는 있는데 닿을 수 없는 허깨비와 다름이 없다. 창작자들은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허우적거림 속에서 방황한다.
내 브런치를 줄곧 읽어온 독자라면 알 것이다. 나는 브랜드 이야기를 쓴다. 집필하면서 내가 항상 신경 쓰는 것이 있다. 철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창립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조직을 이끄는지에 주목하면, 그 브랜드의 진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창립자와 인터뷰를 할 때 철학과 관련된 질문은 심도 있게 진행한다. 철학을 파악했으면 그다음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원칙들을 확인한다. 철학을 지키기 위해 브랜드에서 반복해서 고수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나는 물어본다. 철학이 있으면 원칙이 도출되고 원칙을 따르면 철학은 선명해진다. 내가 브랜드의 철학과 원칙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이다.
이렇다 보니 내가 쓴 브랜드 이야기의 구조는 비슷하다. 창립자의 옛날 시절이 등장하고 브랜드를 창립한 계기가 이어지며, 브랜드의 철학과 원칙을 강조하고 위기와 고민을 풀어내고, 마지막으로 창립자의 꿈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 구조는 특별하진 않지만 흐름이 안정적이어서 브랜드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자면, 나는 문장을 담백하게 쓰려고 한다. 단문 위주의 드라이한 문체라고 해야 할까. 글에 꾸밈과 겉멋이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나는 이 형식을 선호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간 쓴 브랜드 이야기들을 읽는데 뭔가 도돌이표 같다고 느꼈다. '설마 자기복제에 빠진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불안했다. 나의 능력이 허접해서 안 되는지, 필력이 딸려서 문장이 겨우 이 정도인지, 앞으로도 나의 글은 지속할 것인지. 계통 없는 걱정들이 머릿속에서 활개를 쳤다. 한번 거슬리기 시작하니까 키보드에 손가락이 붙질 않았다. 자기 검열이 심해졌고 글을 쓰는 속도는 느려졌다. 쭉쭉 뻗어나갔던 문장들이 웅크린 채 볕으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환기하려고 하루 날을 잡아 교보문고에 방문했다. 책더미 사이를 거닐다 보면 작은 해결책이라도 찾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평소 읽은 적 없는 작가의 작품들을 훑어보았다. 한강, 김영하, 이문열의 책들이었다. 세 시간 정도 읽고 내린 결론은, '이들도 똑같구나'였다. 작품마다 디테일은 달랐지만 작가 특유의 색이 있었다. 한강은 서정을 품은 강직함이, 김영하는 묘사의 섬세함이, 이문열은 장문의 수려함이 각 작품에 녹아 있었다. 이들은 프로이다.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기까지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양의 독서를 했을 것이고, 공부를 했을 것이며, 치열하게 글을 대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내놓는 작품도 매번 색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모두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독자들은 그들의 작품을 반복되는 지겨움이 아닌 편안한 즐거움으로 여긴다.
내가 존경하는 김훈 선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김훈 선생이 즐겨 쓰시는 구조와 문장과 단어들이 있다. 묵직한 한문체와 객관적인 사실 표현, 밥벌이, 한국 전쟁 이후의 회상이 대표적이다. 그것들은 선생의 에세이와 소설에 자주 등장하면서 김훈스러움을 완성한다. 가수는 어떠한가. 예전에 어떤 발라드 가수가 새로움을 추구하겠다는 명목으로 댄스 곡을 발매했다. 그러자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같은 스타일의 곡을 불러도 좋으니, 원래대로 하라고 팬들은 가수에게 손수 편지까지 썼다. 그 가수는 결국 다시 본인 장르로 돌아왔다. 그의 앨범은 각종 음원 차트에서 10위 안에 들었다. 팬들은 열광했다.
자기복제는 다른 말로 고유성의 발현이다. 고유성은 누구나 날 때부터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람 손에서 탄생한 글, 그림, 음악, 영상, 여타 작품은 그 사람의 고유성을 띨 수밖에 없다. 고유성이 반복되면서 다져지면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 짓는 송곳이 된다. 그 송곳은 나만의 무기이다. 물론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반복이 발생해도 정성을 들이면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감성과 품질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개인의 창의에는 한계가 있다. 천재가 아닌 이상 언제나 기발한 무언가를 만들기는 어렵다. 이를 인정해야 창작 활동을 오래 할 수 있을 듯하다. 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내가 할 일은 나의 고유성이 담긴 글을 쓰고 또 쓰는 것이다. 나는 자기복제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계속 정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