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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Jul 18. 2022

워커힐 더글라스 하우스에 다녀오다

휴식


2021년 11월 15일. 연인과 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1년 단위의 기념일을 특히 신경 쓴다. 우리의 연이 시작한 날이어서, 이 날만큼은 힘을 주려고 한다. 7주년을 앞두고 나는 여자친구와 어떻게 보낼지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더글라스 하우스'가 떠올랐다. 더글라스 하우스는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숙박 브랜드이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그랜드 워커힐 호텔 뒤편에 있다.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해서 분위기가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여자친구가 자연을 좋아하기에, 이번 기념일은 더글라스 하우스에서 보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연말에는 특급 호텔의 객실이 빨리 차서 나는 9월 중순에 미리 예약했다. 숲이 보이는 디럭스 룸이었다. 달력에 표시한 11월 15일이 기다려졌다.






어느덧 당일이 되었다. 여자친구와 나는 택시를 타고 워커힐 호텔로 향했다. 초겨울의 추위가 온화하고 공기는 맑아서 마음이 여유로웠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는 워커힐 호텔 정문 앞에 도착했다. 나는 도어맨에게 다가가서 더글라스 하우스로 간다고 했다. 그는 어디론가 무전을 했고 잠시 뒤, 현대자동차의 검은색 그랜저가 도착했다. 더글라스 하우스로 가는 셔틀이었다. 도어맨이 문을 열어 주었고 우리는 자동차에 탑승했다. 도어맨은 문을 닫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말을 건넸다. 도어맨은 셔틀이 언덕 위로 올라갈 때까지 뒤에서 미소 지었다. 셔틀 기사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잘 다려진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기사님의 언행은 셔츠의 모양새를 닮았다. 말투에서 정중함이 보였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발과 기어를 조작하는 손동작이 부드러웠다. 워커힐 호텔 정문에서 더글라스 하우스까지 셔틀로 약 5분 정도 걸렸다. 기사님의 배려 덕분인지 5분은 짧게 느껴졌다.


더글라스 하우스에 들어서니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하우스 주변으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섰는데 그것들이 외부의 소음을 막아주었다. 서울 한 복판에 있었지만 숲이 배경이어서, 이곳은 다른 세계였다. 로비에 들어가서 우리는 체크인 수속을 밟았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살폈다. 로비는 산장 같았다. 의자, 테이블, 선반이 목재로 만들어졌고 벽지와 커튼, 인테리어 소품은 갈색 계열이거나 녹색이었다. 천고가 낮고 통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서 공간은 고즈넉했다. 직원들의 유니폼은 짙은 회색이었다. 화려한 무늬나 포인트 컬러가 없는 회색이었다. 핏에는 적당한 품이 있어서 긴장감이 서려 있지 않았다. 로비와 직원들은 구분 없이 한 곳에 스몄다.



우리는 객실로 갔다. 문을 열자, 창문 너머의 푸르고 붉고 노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은 아차산이었다. 여자친구가 창문을 열었다. 코 끝으로 늦가을의 태양을 품은 나뭇잎 향기가 끼쳐 왔다. 향의 끝에서 젖은 흙냄새가 났다. 깊이 들이쉴수록 향은 핏줄을 타고 몸의 안쪽까지 퍼졌다. 사진을 몇 장 찍고 객실을 둘러보았다. 객실의 인테리어는 로비의 연장선이었다. 말끔하게 재단된 나무판들이 벽을 이루었고 침실 위쪽 가운데에 나뭇잎 액자가 걸려 있었다. 액자 양 옆의 전등은 채도가 낮은 먹색이었다. 액자와 전등에는 꾸밈이 없었다. 그것들은 그 소박함으로 밖에서 들어오는 숲의 기운을 받아냈다.



나는 욕실에서 비누통을 발견했다. 동구밭이라는 브랜드의 상품이었다. 비누통 안에 샴푸용, 바디워시용, 세안용 고체 비누  개가 있었다. 통의 소재는 종이였다.  겉면에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없었다. 신기해서 찾아봤는데 통의 소재명은 재생 펄프이고, 각종 펄프 원료를 물과 섞어 흡착하고 말려서 만들었다는 글을 동구밭 홈페이지에서 읽었다. 착색 작업을 하지 않았기에 통은 옅은 크림색이었다. 한참 구경하고 목이 말라서 미니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냈다. 라벨지가 부착되어 있지  무라벨 생수였다. 라벨지가 부착된 음료수도 있었으나  크기는 작았다. 객실에 비치된 용품들은 치장하지 않았다. 용품들은 자연의 질감을 지닌 , 투숙객의 새로운 시간을 맞이했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여자친구와 나는 산책을 하러 외출했다. 더글라스 하우스 근처에는 산책로가 있다. 더글라스 가든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단풍나무와 소나무, 수국과 여러 녹색 식물들이 길을 닦아 놓았다. 우리가 갔을 때는 한창 단풍이 피어난 시기여서, 세상은 형형색색이었다. 우리는 산책로 초입에서 휴대폰 전원을 껐다. 그녀와 나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돌과 흙을 밟을 때 전해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잎사귀 위에서 햇빛이 와글거리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부지런히 기어가는 벌레들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느리게 나아갔다. 산책로 반대편에서는 자동차가 달리고 있었음에도 이곳에서는 고요가 바탕이었다. 산책로를 지나 아차산 둘레길에 이르렀다. 순하게 굽이치는 길이었다. 여자친구와 나는 마저 걸으면서 심신을 다독였다. 붉은 단풍잎이 바람결을 타고 우리 뒤를 따라왔다.



더글라스 하우스에는 더글라스 아워라는 뷔페 서비스가 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운영된다. 라운지에서 식사할 경우 맥주와 와인이 무제한이다. 음식을 객실로 가져가면 주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와인은 객실당 한 병, 맥주는 인당 두 캔이 제공된다. 우리는 시간에 맞춰서 라운지에 갔다.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점 사람이 몰려서 북적거렸지만 직원들이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직원들은 상냥한 어조와 태도로 투숙객들의 요구 사항을 매만져 나갔다. 그들 사이에는 걸림돌이 없었고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 소통이 가능했다. 지켜보고 있으면 덩달아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차례 때 나는 직원에게 방 번호를 알려주고 투고(to-go)를 신청했다. 직원은 음식을 담아갈 종이팩을 주었다. 친환경 종이여서 그런지 동구밭 비누통처럼 옅은 크림색이었다. 음식의 종류는 소박했다. 핫도그 빵, 소시지, 나초, 치즈, 샐러드, 땅콩, 프레첼 등으로 구성되었고 마실 것으로는 주스와 탄산음료가 있었다. 여자친구와 나는 핫도그와 나초, 샐러드, 치즈를 담고 레드 와인 한 병을 챙겨서 방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룸 서비스로 소갈빗살 스테이크도 주문했다. 굽기가 미디엄 레어였는데 골고루 구워져서 육즙이 가득했다.


사이드 디시는 구운 양파,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버섯이었다. 사이드 디시는 뒷받침의 맛이었다. 소스와 더불어 풍미를 은은하게 보태어, 고기의 맛이 돋보이게끔 했다. 뷔페에서 가져온 음식들은 간이 담백했다. 어느 조합으로 먹어도 각각의 맛은 충돌하지 않았다. 우리는 와인에 치즈를 곁들이면서 어둠이 내려앉은 아차산을 바라봤다. 어둠을 먹은 산에 보랏빛이 드리웠다. 산에서 번지는 보랏빛은 달무리를 만나 넓게 퍼져 나갔다. 나는 더글라스 하우스의 음식이, 저 평화로움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자친구와 나는 모처럼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7주년의 밤은 아차산의 보랏빛 속에서 저물어 갔다.






더글라스 하우스는 1963년 4월 8일에 열었다. 몇 차례의 변화를 거치면서 더글라스 하우스는 '나를 위한 휴식처'를 표방하는 숙박 시설로 성장했다. 더글라스 하우스는 자신들의 철학과 부합하는 원칙으로 숲 속의 아지트 컨셉을 차용했다. 부지 위치를 아차산 안에 유지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더글라스 하우스를 이루는 모든 것은 자연과 맞물려 있다. 건물, 인테리어, 객실, 음료, 음식, 용품, 직원, 서비스가 초록을 머금어서 편안하다. 투숙객들은 이 공간에 흐르는 안락을 만끽하면서, 날 선 경직과 엉킨 감정과 치솟은 걱정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브랜딩에서 통일성은 중요하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브랜드의 지향점과 일치할 때 브랜드다움이완성된다. 더글라스 하우스는 자신들의 결을 일관되게 지키고 있었다. 더글라스 하우스다움은 숲처럼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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