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변수가 '굉장히, 매우, 상당히, 아주, 상상 그 이상으로,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이 변수를 잡지 못하면 브랜딩 전략은 서류상 혹은 컴퓨터 파일로만 멋지게 존재할 뿐이다.
이번 시간에는 브랜딩을 힘들게 하는 주요 변수 두 가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1. 다 갖고 말 테다! - 극심한 애착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 상당히 깔끔하다. 몸만 있다면 어느 누구나 운동인으로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그들의 메시지에 부합하다. 브랜드가 내세우고 싶은 한 줄 메시지는
군더더기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내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하늘을 찌를 만큼' 큰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문장에 자꾸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한다.
우린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아니 아니 이걸 포기할 순 없어.
당연히 이 부분도 집어넣야지.
지금까지 미팅하면서 깨달은 점은 이렇게 애착이 심하면 브랜딩의 ㅂ도 시작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너무 욕심이 많아서 깔끔해야 할 카피가 이런저런 표현들로 겹겹이 쌓인다. 대표나 실무자들은 해당 브랜드의 관계자들이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소비자들은 '모른다.'
따라서 취할 건 취하고, 날릴 건 날려서 딱 필요한 핵심만 한 문장에 담아야 한다. 이렇게 해도 사람들 기억 속에 기억될 까 말까 하는데 욕심을 부려 온갖 특징을 다 때려 박으면 '잡문'이 된다.
예시.
'100년 이상 위장 질환에 집중했습니다.'
누가 봐도 '아 이곳은 위장 질환 전문 병원이구나'라고 알 것이다. '100년 이상'이라는 표현을 활용하여 위장 질환 전문 의료기관이라는 것을 깔끔하게 보여줬다. 속이 아플 때 만사가 힘들기 때문에 이 속병을 확실히 고치겠다는 의료진의 다짐도 느껴진다.
이 병원은 다른 곳도 잘 고친다. 하지만 자신들이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 한 가지.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 한 가지. 딱 그 공통분모만 추려내어 카피로 표현했다. 나머지 부분들은 단호하게 치워 버렸다. 위장 치료를 받고 만족한 사람이라면 다른 진료 과목에도 당연히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페셜티 커피와 라떼 그리고 디저트까지.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한 카페의 카피다. 어떤가. '오 이 카페 가고 싶다'란 기분이 드는가. 이런 게 잡문이다. 이 카페 대표는 스페셜티 커피도 잘하고 라떼도 잘하고 디저트까지 빵빵하니까 다 말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말하면 소비자들이 좋아하고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스페셜티 커피, 라떼, 디저트 심지어 그 이상도 잘하는 카페가 발에 치일 정도다. 어느 동네든 좀 덜 알려졌을 뿐이지 한 블록 건너 바로 옆에 뛰어난 카페들이 즐비하다. 저렇게 표현해봤자 그들과 다를 게 하나 없는 것이다.
차라리 '저흰 라떼밖에못해요.'라고 하면 참신하기라도 한다. 진짜 라떼밖에 못하나? 야 한번 가보자.라는 마음도 들지 모른다.
브랜드가 추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할 때는
한 문장 - 한 메시지
로 만들어야 한다.
단순함이 주는 힘을 믿어보자
브랜드 라이터로 활동하면서 욕심이 과한 대표님들을 자주 만난다. 미팅을 하기도 전에 이미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표현들로 카피를 만들었다. 한 줄에 필요 이상의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 읽었을 때나 들었을 때 한 번에 기억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꼭 그런 카피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그런 메시지로도 성공할 수 있다. 다만 어려울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어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빨리 내 눈앞에 당장 가져오길 바란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난해한 메시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감스러운 점은 이 욕심이 브랜드 카피뿐만 아니라 콘텐츠 기획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글이나 영상을 봤을 때 정신없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심할 경우 소비자들에게 반응 좋은 경쟁사 콘텐츠를 그대로 베끼기도 한다.
브랜딩은.
핵심만 간결하게.
단순함의 미학은 시대를 초월하는 최고의 지혜 중 하나임을 기억해야 한다.
2. 어? 김대리,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 의사소통 부재
특히 조직이 브랜딩을 하면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내부 관계자들끼리 정보 공유를 원활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브랜딩 전략을 위해선 내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브랜드 대표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든 이해관계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브랜드를 받아 들어야 한다.
이 브랜드가 어떤 곳인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운영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체득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소비자들과 소통을 하든, 콘텐츠를 만들든, 마케팅을 하든, 사회봉사를 하든 구성원들이 브랜드 메시지에 맞게 딱딱 움직인다.
예를 들어 보자.
A 브랜드의 메시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통신사'이다. 근데 문제는 '대표'만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으니 실무자들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착각'한다. 에이 설마. 근데 이런 곳이 '수두룩 빽빽'이다. 박인턴, 김대리, 허 과장, 이 차장 모아 놓고 브랜드 핵심 메시지에 대해 물어보면 답이 다 다른 경우도 꽤 많다.
임직원들이 저 핵심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어떨까. 경영 전략을 세울 때나 프로모션 등을 진행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통신사'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인지하며 움직인다. 자신들이 하는 전략 수립이나 기획안들이 '가장 저렴한'에서 어긋나는지 스스로 검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구성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경쟁사의 프리미엄 상품군이 호응이 좋다고 비슷한 상품군을 개발하려고 할 것이다. 아니면 비용만 발생하는 불필요한 브로셔 제작이나 오프라인 행사 등을 기획할지도 모른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없는 데 어찌 조직이 한 몸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바다 위에 길을 잃어 둥둥 떠 다니는 배에 지나지 않는다.
아! 하면 어! 가 나와야 하거늘...
조직 내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간단한 의사 결정에도 쓸데없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제품 카피 하나 만드는데도 한 달 이상이 걸리고, 콘텐츠 방향을 잡는 데도 수 일이 걸린다. 물론 정성을 다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상사나 부하 직원이나 '우리가 어떤 곳에서 일하는지'를 알고 있으면 업무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왜. 브랜드 메시지에 어긋나는 것들은 과감하게 치워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우린 장인이 손수 만든 소중한 팥빵을 팔면서 한국 전통 빵의 가치를 알리는 브랜드이다. 근데 갑자기 스파게티를 판다면? 떡볶이를 판다면?
브랜딩은 내부를 정리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브랜드 관계자들이 브랜드 고유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상기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 어떤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지, 왜 전달하려고 하는지, 브랜드 운영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 모든 임직원들이 정해진 목표를 향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다.
이건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브랜드 스토리를 잘 만들어 놓고 시간이 흐르면서 삼천 포로 빠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왜 이 브랜드를 운영하려고 했는지. 그 초심을 떠올리며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안 그러면 파도에 휩쓸려 망망대해에서 방황할지도 모른다.
이것 외에 정말 많은 변수들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브랜드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면서 느낀 바로는 저 두 가지가 안 됐을 때 브랜딩 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특히 효과적인 브랜딩이 욕심과 소통 부재로 망가져가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팠다. 어느 순간 임직원들의 욕심이 더해지고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잘 되던 브랜딩도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맨 처음일 때가 더 낫다. 대표가 욕심을 거둬낼 수 있도록 설득하고 조직원들이 잘 소통할 수 있도록 지도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랜딩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맛'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없던 자신감도 생기길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뭘 해도 다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때가 정말 위험하다. 기껏 쌓아 올린 정성스러운 탑을 더 많은 매출 욕심과 과도한 경쟁사 견제로 브랜드 성격과 맞지 않는 것들을 선택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