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글쓰기
2021년 5월 26일 수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책을 읽고 스트레칭을 하며 쉬고 있었다. 친한 친구 녀석이 전화를 걸었다. 요즘 둘 다 운동에 심취해서 건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10분 정도 통화하던 중 핸드폰에서 알림 소리가 들렸다. 혹시 클라이언트 연락일까 봐 확인했는데 브런치 알림이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좋아요나 댓글을 달았겠거니 하고 친구와 대화를 이어갔다.
전화를 끊고 확인해봤다. 며칠 전에 올린 '피비 파일로의 패션 철학'의 조회수가 1,000을 넘긴 것이었다. 놀란 마음에 브런치 메인을 봤지만 어디에도 내 글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유입 경로를 보니 '다음(daum)' 포털 사이트였다. 마침 통화했던 친구가 다시 연락했다. 지금 다음에 내 글이 떠서 읽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 글을 쓸 때 작정하고 쓰진 않았다. 난 단지 피비 파일로를 조명하고 싶었다. 그녀의 인생과 패션 철학이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줬다는 사실에 기뻤다. 요즘 스트레스가 좀 있었는데 다소 누그러지는 기분도 들었다.
브런치 메인에 글이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희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조회수와 구독자 수를 보면 그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글을 쓰기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줄 것이라는 망상 같은 기대도 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원한 성장도, 무한한 관심도 없다. 내 글이 우연히 브런치 에디터의 눈에 띄었거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수면 위로 올라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달콤한 순간'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몇 번의 메인 노출을 경험하며 배운 교훈이다. 속된 말로 '뽕'에 취해 글을 힘주어 쓰거나 숫자에 집착하고, 더 잘 쓰겠다는 욕심에 쓸데없는 꾸밈이 더해지기 시작하면 '글태기(글+권태기)'가 온다. 글태기가 오면 잘 쓴 글도 못난 글로 보인다. 점점 글 쓰는 게 두려워진다. 두려움이 쌓이면 스스로를 불신하게 된다. 불신의 시간이 길어지면 자칫 글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다.
이 세상은 글재주가 타고난 사람들로 가득하다. 브런치만 봐도 그렇지 않던가. 읽다 보면 커다란 벽을 느낄 만큼 대단한 작가들이 많다. 어쩜 그렇게 수려한 표현으로 가득한 글을 매일같이 쓸 수 있는지, 범인에 불과한 나로선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고수들이 가득한 현실에서 나만 유독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건강한 정신을 파멸의 길로 걷게 하는 오만이다.
성장은 사소한 결과가 모일 때 일어난다. 큰 눈덩이의 첫 시작도 땅에 닿으면 녹아버리는 눈송이에 불과하다. 눈덩이가 되어도 결국 다시 녹아 없어진다. 이것이 반복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횡보와 절정이 조화를 이룬다. 그러니 그냥 묵묵히 써야 한다. 쓰고 또 쓰며 부지런히 기록하다 보면 내 글에 날개가 달리는 날이 온다. 분명히 온다.
기록된 글들이 하나둘씩 모이면서 새하얀 파도를 만들 것이다. 파도는 넘실거리며 모래사장에 진주를 두고 갈 것이다. 진주에는 성장과, 확신과, 뿌듯함이 담겨 있다. 값비싼 보석보다 빛난다. 그 진주를 가끔씩 꺼내 보며 마음을 다잡으면 된다. 꾸준히 글을 쓰면서 다음 파도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 주머니에는 예쁜 진주들로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