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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Jul 01. 2021

아저씨가 된 친구들

변함없는 우정


어제 저녁에 절친들끼리 모였다. 거의 8개월 만에 모인 자리였다. 동네 유명한 고깃집으로 향했다. 식당 안쪽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마침 날씨가 좋아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온 사람들이 굽는 고기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우린 갈빗살과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양철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 이 녀석들 안 본 사이에 더 아저씨스러워졌다. 각자의 잔에 소주와 맥주를 섞고 잔을 들어 건배했다. 시원한 술이 텁텁한 입과 목을 적셨다. 우린 고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나까지 포함해서 총 4명. 우린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까까머리를 한 채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네 명은 유독 친했다. 사실 어떻게 친해졌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냥 같이 수업 듣고, 농구하고, 놀다 보니까 가까워졌던 것 같다. 각자 잘하는 교과목도 달라서 시험 기간이 되면 늘 넷이서 붙어 다니며 공부했다.


게임 취향도 비슷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PC방으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아니면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가곤 했다. 물론 가끔씩 툭탁거리며 싸우기도 했지만 금세 화해하고 평소처럼 지냈다. 지금 와서 보니 정말 단순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으니까.


20대를 맞이하면서 우린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잠시 이별해야 했다. 전역 후 다시 주기적으로 모였다. 군 복학을 한 후, 우리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취업'과 '인생의 책임감'으로 쏠렸다. 그래서 그런지 10대 때와 달리 대화 밀도가 한층 무거워졌다. 모일 때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지나온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토했다.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가끔은 성인으로서 처음 겪어보는 실패의 아픔에 짓눌렸을 때, 이유 없이 느껴지는 삶의 허망함이 답답할 때, 사무치는 이별의 슬픔으로 잠을 잘 수 없을 때. 우리 네 명은 주점에서 밤늦도록 쓴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서로에게는 한 없이 드러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공유할수록 우리의 우정 역시 농익어 갔다.


우리는 20대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을 함께했다.

어른의 삶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배웠다.

친구의 의미를 가슴 깊이 깨달았다.






어느덧 30대 초반. 아직도 중학교 꼬꼬마들 같은데 나와 친구들은 아저씨가 됐다. 네 명 중 두 명은 결혼까지 해서 가장이 됐다. 우리 모두 배도 좀 나온 것 같다. 세월이 무색하다. 그래도 30대가 되니 좋은 점들도 있다. 10-20대처럼 날카로운 턱선은 없지만,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날카로워졌다. 10-20대처럼 여유는 없지만,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고 있다.


우리는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떠들었다. 그 어떤 불편함도, 짜증도, 고뇌도 없었다. 맛있는 고기 한 점과 술 한 잔 그리고 웃음뿐이었다. 또한 우리는 누군가의 가족이나 연인, 회사의 직함이 아니었다. 우리 자신이자 서로의 친구였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행복인가. 나와 친구들의 대화는 고기 연기를 타고 넓게 퍼져나갔다. 선선한 여름밤이 찾아왔다.




다들 사는 일이 바빠 자주 만나진 못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다. 그래서 이 친구들이 좋다.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네 명 모두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중년이 돼도, 노년이 돼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를 위했으면 좋겠다. 이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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