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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Jul 22. 2021

여름 하늘은 '무척' 아름답다

무더위 속 작은 기쁨


며칠 전 보고 싶었던 재즈 공연이 있어서 외출했다.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마시는 거라 기분이 좋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외출 준비를 했다. 왁스로 머리를 만지고 스프레이로 고정했다. 맨날 똑같은 헤어 스타일이지만 그날따라 유독 더 마음에 들었다. 면도도 깔끔하게 됐다.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애용하는 시계를 찼다. 마지막으로 빼먹은 소지품이 없는지 확인 후 집 밖으로 나왔다.


'으아.'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 그렇다. 이때 날씨가 약 34도였다. 체감 온도 40도에 육박하는 덥고 습한 날씨. 저 멀리 보이는 자동차 본넷 위로 아지랑이가 피는 게 보였다. 동네 고양이들도 그늘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겨우 한 걸음을 뗐다. 두 걸음, 세 걸음. 벌써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입 주변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더운 날씨에 마스크까지 꼈으니 오죽할까. 인중과 코는 입김과 땀으로 뒤덮였다. 햇살은 내 뒷목을 집요하게 찔러댔다. 선크림을 바르고 나왔는데도 화끈거렸다. 손수건을 두고 나온 게 후회됐다. 고작 5분 걸었을 뿐인데 집으로 가고 싶었다.






더위를 뚫고 버스역까지 용케 도착했다. 타려는 버스가 몇 분 남았나. 세상에 13분. 꼭 이럴 때 머피의 법칙에 걸린다. 가끔은 무심하게 지나쳐도 좋으련만. 버스역 벤치에는 심술부리는 태양을 피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나무 그늘 아래에 서서 버스가 오는 방향을 쳐다봤다. 숨을 좀 고른 뒤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새로 생긴 건물을 구경하다가 시선이 위로 닿았다.


파랗디 파란 여름 하늘. 다른 계절에서 느낄 수 없는 정취다.


'와.'


눈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걸어오는 동안 나는 왜 이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아마 더위가 부린 장난에 지쳤기 때문이었겠지. 정말 '새파랗다'는 단어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수려한 작품이었다. 근래 들어 본 하늘 중 가장 예뻤다. 그 순간을 담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최대한 실물에 가까운 느낌을 담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 보니 아쉽다.


하늘에 정신 팔려 있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스마트폰에 연결하고 음악 앱을 켰다. 오늘은 무슨 음악을 들을까. 플레이 목록을 살펴보다 비틀즈의 'Hey Jude'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거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창 밖을 바라봤다. '폴 매카트니'의 보컬과 피아노 연주는 여름 하늘과 닮았다. 청량하고 화창하다. 여유 있고 편안하다. 나는 도착할 때까지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날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버스 정류에서 느낀 여름 감성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여름은 지치기 쉬운 계절이다. 덥고 습하다. 심지어 요즘은 마스크까지 껴야 하니 더 힘들다. 무더위가 범보다 무서울 지경이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름이라고 해서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일 년에 딱 한 번뿐인 여름 하늘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 짙은 푸름과 수수한 순백이 가득한 여름 하늘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달궈진 몸과 마음이 시원하게 식는다.


오늘 글을 쓰며 창 밖을 봤다. 여전히 여름은 파랗다.

여전히 여름 하늘은. 무척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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