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혹은 저녁. 아니면 둘 다. 검은색 펜으로 다이어리에 일기를 쓴다. 매일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을 갖는 나를 발견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나를 괴롭히는 잡념과 불필요한 감정을 '글'로 기록할 때, 비로소 마음에 안정을 되찾는다. 그래서 일기 쓰기를 게을리할 수 없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나에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23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군인이었다. 하필 군대 선임이 나와 합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얼굴만 봐도 진저리가 날 정도였으니까. 그런 사람(아니 그런 인간)과 1년 넘게 같이 있으니 스트레스는 일상이었다. 편두통은 물론이고 소화 불량도 자주 겪었다. 계속 이렇게 지내다간 나만 손해일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했다. 윗사람한테 얘기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서랍장에 있는 노트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훈련소에 들어왔을 때 받았던 노트였다.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그 노트가 그날따라 유독 시선이 갔다. 나도 모르게 노트를 꺼내 글을 썼다.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투박한 생각 뭉치를 빈 종이에 채워나갔다.
무려 5장이 넘는 글이었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속이 후련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소리를 지르며 감정을 토해내고 표정이 한결 나아지는 장면이 있다. 내가 그러했다. 마음과 정신에 쌓인 기분 나쁜 삶의 찌꺼기를 모조리 뱉어내니 숨통이 트였다. 그 뒤로 군생활을 하면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거나, 감정이 요동치면 일기를 썼다.
나는 일기로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것 외에도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예를 들어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별거 아닌 일에 감정 상했거나, 집착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그때부터 나는 그 '별거 아닌 일'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또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오면 일기를 쓴다. 그럼 그 '알 수 없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원인을 해결한 방법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가끔은 일기를 쓰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보다 위안이 됐다.
기록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었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책장 한편에 그동안 써온 일기장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일기장이 늘어날수록 나를 담은 일기도 늘어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잊어도 일기장만큼은 나를 온전히 기억한다.
우린 늘 바쁘다. 일은 내 맘 같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무례하게 군다. 이런 현실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기 쉽다. 이럴 때 일기를 쓰면 도움이 된다. 들끓는 감정과 엉킨 생각을 마주함으로써 위로와 해결책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