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끔, 뜻밖의 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외국계 기업에서 3년간 근무한 뒤, 나는 다시 싱가포르 취업에 성공했다.
이번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이런 생각이 남아 있었다.
‘나 혹시 싱가포르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훨씬 더 까다로운 조건들 앞에서 쉽게 포기하곤 했지만 말이다.
싱가포르에서 2년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영어 스피킹은 제법 자연스럽고 익숙해졌다.
하지만 자꾸 입에 붙은 표현만 반복하게 되면서,
조금 더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해볼까 고민하던 끝에,
용기를 내어 어학원을 찾았다.
뚜렷한 목표가 없는 공부는 싫어서,
토플을 신청해서 토플 테스트에 목표를 두고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토플강좌는 난이도가 있어서 수강하려면
먼저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름 뭐 자신 있었다.
예전에 편입 시험을 준비하며 하루 10시간 넘게 1년을 공부했던 내가 아닌가.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긴 해도, 나는 그 실력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당당한 태도로 영어 필기시험에 도전했다.
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담당 직원이 나를 불렀다.
“세라, 우리 랭귀지 스쿨의 토플 클래스에 넌 탈락이야. 필기 점수가 너무 형편없어. 쏘리~”
충격이었다.
매일 외국인 동료들과 일하고, 하우스 메이트들과 영어로 생활하다 보니
스피킹 실력은 늘었지만, 문법·단어·독해는 예전 같지 않았다.
자부했던 영어 실력은 온데간데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 그래도 저 토플 수업 듣고 싶은데. 혹시 시험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영어식의 대화라 그냥 의미만 전달합니다.)
점수도 안되면서 토플클래스 수강에 매달리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디렉터와 얘기를 해보더니 직접 인터뷰를 하라고 했다.
디렉터는 랭귀지 스쿨 운영 책임자였다.
싱가포리언 여성인 그녀는 누가 봐도 깐깐하고 단단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 같은 수강생을 맞이하는 일이 살짝 귀찮아 보이면서도 도도해 보이기도 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진 후, 자신이 읽고 있었던 책을 중간쯤 펼치더니 두 페이지만 읽고 요약해 보라고 했다.
긴장했지만, 어렵지 않게 읽고 이해한 내용들을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데 하는 표정이었다.
“세라, 너 싱가포르에서 지금 무슨 일 하고 있어?”
“동남아시아 시장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오피스 매니저 역할도 겸하고 있어.”
“좋아. 너 우리 토플 클래스 수강해도 괜찮겠어. 그런데 너 한국인이지? 혹시 티칭에 관심 있니?
"티칭? 난 그 분야에 경험도 없고, 관련 자격증도 없는걸..."
한국에서는 뭘 하든 민간 자격증 하나라도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던가...
경험도 없고 자격증 하나 없는 내게 느닷없이 티칭을 해보라고 권하는 이 상황은 뭐지 싶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 경험이야 쌓으면 되지. 너만 원한다면 내가 기회를 줄게.
너 여기서 한국어 클래스를 맡아줄 수 있겠니?”
“어? 정말이야? 그래도 될까? 땡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나는 갑자기
싱가포르의 대형 어학원에서 한국어 클래스의 강사가 되었다.
형편없는 영어 테스트 결과 덕분에 한국어 강사로 발탁되는 기회를 얻다니...
싱가포르에서 무경력의 초보 한국어 강사 경험은 내 인생에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나는 9 to 6의 직장 생활을 그만뒀고 오전에는 어학원에서 토플과 아이엘츠 수강생으로,
저녁에는 동일한 어학원에서 한국어 강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시간강사로서 받는 내 수입은 기존 직장인으로서 받을 때의 월급 5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싱가포리언들 앞에서 한국어 강의는 설레는 시간이었다.
역시 스트레스 없이 즐거운 일을 즐겁게 하는 게 최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류 열풍으로 랭귀지 스쿨마다 한국어 수요는 높았지만,
한국어 강사를 구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수업은 90분짜리 한국어 초급 과정이었고, 영어로만 수업해야 했다.
90분 강의를 준비하는 데는 보통 3~4시간씩 걸렸다.
한국어의 알파벳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어서 규칙성이 명확하다 보니 가르치기도 편했다.
자음·모음 카드를 잘라 수강생 인원대로 20세트씩 만들었고, 카드 조합 놀이로 발음을 가르쳤다.
단 이틀 만에 한글을 읽어내는 수강생들을 보며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한국인으로서 내심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동방신기의 노래를,
영어로 다 번역해서 자료를 만들고 영어 발음으로 곁들여 함께 부르기도 하고,
외국인들이 잘 모르는 흥미로운 한국 문화들을 검색해서 사진과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2주마다 수강생들의 한국어 수업 강의 만족도 평가가 있었다.
나쁘진 않았나 보다.
어학원에서는 나를 랭귀지 스쿨의 컨설턴트 포지션을 제안했고,
몇몇 싱가포리언 수강생들은 내게 한국어 개인과외 및 3~4명의 그룹수업 요청을 하기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작이었지만,
한국어 티칭을 시작으로
아주 오래전에 품었던 ‘교사’라는 꿈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생활, #외국에서 한국어강사, #한국어티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