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테솔과정으로 대체한 꿈

인생여정

by 팀클 세라

어느 날 나는 우연한 기회로 싱가포르의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어 강사로. 그리고 한국인 컨설턴트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워킹비자가 발급될까지 일주일간 휴가를 받아서 한국에 잠깐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참에 그냥 한국을 정리하고 싱가포르에 영주권도 신청해 볼까도 생각했다.

아. 그런데 운명이란...


한 주간의 휴가일정으로 정리를 하러 온 한국 땅에서 별생각 없이 소개로 만남을 가졌다가 결혼까지 약속해버리고 말았다.

일단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다 수습한 후 약속한 대로 한국에 짐을 싸들고 돌아왔다.


내 나이 33세.

결혼을 하러 들어온 거니 일단 결혼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직장이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직장생활을 했고 결혼까지 했으니 잠깐 쉬어도 되지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매일 같이 습관처럼 취업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하루 4시간씩 영어수업을 할 강사를 구한다는 영어 학원에 이력서를 보냈다.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영어티칭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즐거웠다. 아이들과 있으면 나도 딱 그 수준으로 돌아가서 에너지가 발산되었다. 때로는 시끌벅적 수다스러움에 통제가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나름 고민하면서 노하우를 익혀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계획했던 첫째를 임신했다. 학원의 내부사정으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원업무를 그만두었다. 임신기간 동안 좀 더 알차게 미래의 내 삶을 새롭게 설계하고 싶었다.


이참에 다시 교대준비를 해볼까 싶어서 수능 책을 샀다. 나의 교대 미련은 어이없게도 첫째 아이 임신 때까지도 이렇게 이어졌다. 수능 영어는 거뜬히 만점이었다.

역시! 자신감이 다시 스멀스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뿜뿜!!

그런데 수학은... 대체 숫자 위에 모자 같은 이 기호가 뭘 나타내는지조차도 나는 헤매고 있었다. 개념부터 도무지 이해를 못 하고 쩔쩔맸다.


혹시 서울교대 점수가 안된다면 점수 맞춰서 지방의 어디라도 교대를 지원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면 쉽지 않겠다 싶었다. 2주 만에 수능을 포기하고 교대의 꿈을 미련 없이 접기로 했다. 그리고 국제 영어교사자격증이 있는 대학원의 테솔과정을 지원했다.


모두 외국인 교수님들이었다. 각 커리큘럼마다 부여되는 과제가 만만치 않았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로 다니는 등굣길은 임신한 몸으로 정말 고되었다. 지하철에서 30분씩 서서 가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임산부 전용좌석이 꼭 필요한 이유였다.


테솔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내 배도 만삭이 되었고. 테솔과정의 수료식을 마친 이튿날 바로 출산을 했다. 정말 내 인생의 아슬아슬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주위에서는 내게 태교 영어가 자연스레 돼서 좋겠다고들 했지만 우리 아가는 내 뱃속에서 엄마 따라 공부한다고 스트레스가 많았던 건지 2.5kg 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엄지공주였다.


아기 출산 3개월 만에 엄마께 아기를 맡기고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영어 강사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수입이 얼마이던가에 개의치 않고 영어수업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다녔다.


출산 3개월 만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영어 수업.
교대의 꿈은 접었지만, 여전히 나는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다.

한때는 외국에서, 한때는 학원에서,

지금은 또 다른 이름으로.

어쩌면 나는
항상 ‘아이들과 함께’인 삶을 원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내가 원했던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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