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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입장바꿔 생각해봐

Put yourself in my Shoes!

by 팀클 세라


"Put yourself in my shoes!" "입장 좀 바꿔서 생각해 봐."


최근 들어 이 문구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배움의 속도나 이해가 더딘 학습자를 "느린 학습자"라고 한다.


요즘 나는 PT를 배우면서 운동에 있어서 지독하게 느린 학습자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지난번에는 팔 굽혀 펴기를 배웠다.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그것도 무릎을 바닥에 대고 하는 최소한의 자세였는데, 팔에 신경을 쓰면 어깨가 움츠러들고, 어깨를 펴면 다른 곳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한참 동안 설명을 듣고 연습했지만, 결국 팔에 힘이 다 빠져 바닥에 엎드려 버리고 말았다.


나름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한 운동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이상할 만큼 늘 불편한 감정들이 내재해 있었다. 최근 청소년 심리 상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그 감정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친절하게 지도해 주시는 PT 선생님 앞에서 가르침에 부합하지 못하는 나는 어느 순간 수치심과 죄책감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혹시 선생님이 나를 포기해 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사실은 예전에도 몇 가지 운동을 배우다가 결국 실패로 끝난 경험들이 있었기에 트라우마 같은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변화의 삼각형_ 진정한 자기의 열린 마음 상태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방어적 기재(미루는 습관, 자기비판, 부정적인 생각, 무력감 등)를 버리고 핵심 감정(두려움)을 인정하며, 억제된 감정(불안, 수치심, 죄책감)을 통합하는 감정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중-


문득 3년 전 한 학생이 떠올랐다. 5학년 남자아이였는데, 영어 노출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나와 공부를 시작했다. 파닉스를 배우고 단어를 외우는 간단한 과정도 그 아이에게는 쉽지 않았다. 열 개 중 한두 개도 기억하지 못해서 쩔쩔매었고,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얼굴이 붉어지며 이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괜찮아. 다시 해보자. 선생님이 혼내는 거 아니잖니.”


아무리 다독여도, 수업 중 내 목소리톤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그날 그 아이는 결국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공부를 시키려다가 툭하면 아이를 울려서 보내는 나쁜 선생님이 된 것만 같아 사실은 그저 좀 억울했을 뿐이다.


그때 그 아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잘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을 때의 절망감, 점점 커지는 수치심, 선생님이 잘해주실수록 더 커지는 죄책감, 그리고 혹시 포기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어, 결국에는 자괴감까지..


운동을 배우면서 나 또한 느린 학습자가 되다 보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나의 영어수업은 한층 더 여유롭고 부드러워졌다. 아직 어리거나 느린 아이일수록, 스스로도 많이 위축되어 있기에 좀 더 따뜻하게 가르치고, 여유 있게 그들의 성장을 기다리기로 했다.


"괜찮아, 다시 해봐, 못해도 괜찮아. 거봐, 잘하잖니. 된다니깐" 요즘 나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지지와 응원의 말을 수없이 건네며 수업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말들은 어느새 나를 향한 따뜻한 응원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운동을 하면서 느린 학습자의 감정을 경험한 것이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물론, PT 선생님은 나를 만나셔서 조금 답답하고 힘드실지도 모르겠지만. :)


울보 같았던 그 남자아이는 어느덧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아도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꾸준하게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예전처럼 그리 자주 우는 일은 없어졌다.


가끔 초창기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 정말 많이 달라진 거 알지?” 하고 살짝 짓궂은 칭찬을 해주곤 한다. 지난번에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도 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엄청나게 못하고 있어서 늘 끙끙거리고 있다는 여러 가지 경험담들을 말해주었다.


“그때 네가 공부하던 중 왜 그렇게 툭하면 울다 집에 갔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선생님도 못하는 거 계속하다가 엉엉 울뻔했거든”

"선생님, 이제 저 진짜 이해하시죠?"

"응, 그럼 그럼"


이제는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누며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나는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선생님이고 싶다.


나에게는 여전히 극복해야 하는 운동 숙제들이 있다. 여기서 멈춘다면 예전과 똑같은 실패로 끝날 거 같아서 매일 오전과 오후, 선생님과 약속한 코어 운동만이라도 성실하게 하기로 했다.


1분씩 3회,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 실천하다 보니 나름 위안도 되고, 이제 드디어 조금 할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주에 선생님께서는 내가 훨씬 좋아졌다고 과한 칭찬까지 해 주셨다.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느리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배움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빠르든 느리든,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 나 역시 배움을 이어가며, 아이들에게도 그 과정을 함께 나눠주고 싶다.


내가 배움을 통해 성장하듯, 오늘도 나는 내게 온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성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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