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그 해 크리스마스의 로망

by 팀클 세라

“선배, 이번 크리스마스날 뭐 하실 거예요?”
“글쎄… 뭐, 여느 때처럼 여친 없는 친구놈들끼리 모여서 술 한잔하지 않을까? 왜?”
“…음, 그럼 오빠, 그날 우리 만나서 같이 점심 먹을래요?”

1999년 12월.
2000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세상은 막연한 설렘과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1900년대의 마지막 해.
그리고 그해, 내 마음도 유독 허하고 싱숭생숭했다.

대학 4학년 졸업반이었다.
사회로 나간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고, 취업 준비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막연하고 불안했다.
돌이켜보면 대학 생활 동안 ‘대학의 낭만’이라 불리는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각종 고시 공부며 자격증 취득, 아르바이트만 병행하며 지냈다.
이대로 졸업을 맞이하기에는 이유 없이 억울한 마음까지 밀려오던 시기였다.

오랜 시간 교내 규찰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후배로 알고 지내던 한 선배에게, 나는 그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고 결국 말을 내뱉고 말았다.
어떤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기보다는, 평소 가지고 있었던 선배에 대한 감정을 잘 발전시켜 남자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내딛은 나름의 과감한 용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의 나로서는 꽤나 다부진 첫 시도였다.

그 선배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러지 뭐!”

며칠을 고민해 내민 말치고는 너무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오히려 내 마음을 들키지 않은 것 같아 안도했다.
내가 얼마나 떨리는 마음으로 말을 꺼냈는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크리스마스의 만남을 기약한 약속은 그렇게 사소하게 끝났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아침부터 설렘과 초조함으로 시계와 전화기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날따라 유독 내 전화기는 먹통처럼 조용했고, 스팸 전화 한 통조차 울리지 않았다.

1999년의 설렘으로 기다렸던 크리스마스 하루는 그렇게, 전화 한 통을 하루 종일 기다리다 허탈하게 저물어갔다.
밤이 되자 복잡한 감정이 몰려와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펑펑 울었다.

“얘, 걔가 너 싫은가 보다. 그러니 연락이 없는 거지.”

엄마의 팩폭 같은 그 말을 애써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스스로가 무척 비참하고 초라해졌던 그날의 심정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선배는 명문 S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늘 도서관에 있던 사람이었다.
당시 나 역시 취업 준비로 토익 공부와 자격증을 병행하며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자주 마주쳤다.
나는 그를 속으로 ‘실속’이라 불렀다.
여느 남학생들처럼 과한 허세를 부리지 않았고, 자기 일에 성실하게, 조용히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멀리 공부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면 커피나 음료를 사서 슬쩍 건네곤 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후, 한동안 그는 보이지 않았다.

‘치, 무슨 일 있나? 에잇, 알 게 뭐야. 이젠 나도 관심 없어.’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홀짝홀짝 마시다 괜히 기분이 나빠져, 종이컵을 구겨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1월 말쯤이었다.
몇 주 만에 마주친 그는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오~ 잘 지냈어? 나 이번에 대학원 시험 있었는데 붙었다.”

“잘됐네. 정말 축하해.”

나와의 지난 크리스마스 약속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날 내가 얼마나 애타게 연락을 기다렸는지를 말하는 건, 내 마음을 들킬 것만 같아 그냥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선배, S 대학원 무슨과?" "ㅎㄱ공학과" "정말이야? 우리 삼촌 거기 교수님이신데 잘하면 거기서 우리 삼촌을 교수님으로 만나겠는걸. 기회되면 내가 우리 삼촌한번 소개시켜줄께" 신기한 인연도 다 있다. 그날 나는 그 선배 앞에서 괜히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대학 졸업식 날, 학사모를 쓰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삼촌이 꽃다발을 들고 학교로 찾아오셨다.
그날 나는 삼촌의 대학원 신입생으로 합격한 그 선배를 삼촌께 소개해 드렸다.

“오빠, 3월부터 오빠 담당 교수님이실 수도 있겠네.
대학원 들어가서 우리 삼촌 뵈면 교수님으로 잘 모셔. 알았지?”

선배는 놀란 얼굴로 한껏 예의를 갖추며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그날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사모를 함께 쓴 졸업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사진은 내 기억 속에만 잔잔히 남아 있다.


2000년, 그는 S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 이후로 종종 이메일을 보내왔다.
교수님 수업 이야기를 하며 내게 안부를 묻는 짧은 메일들이었다.
나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면, 나는 어김없이 1999년의 크리스마스 기억을 떠올렸다.

전날부터의 긴장과 설렘,
기다림 끝에 남았던 초조함과 슬픔까지.
크리스마스만 되면 그 애절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곤 했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그날의 이야기를 선배에게 메일로 전했다.
아침부터 연락을 기다렸던 마음과, 밤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 결국 엉엉 울었던 이야기까지.
이미 그 일은 내게 아련한 추억이 되어 있었기에, 담담하게 꺼낼 수 있었다.

그의 답장은 예상외였다.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독감으로 고열에 시달리며 시골집으로 내려가서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약속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며 정말 미안해했고, 그때처럼 다시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후 그에게서 오는 메일은 늘 같은 문장으로 끝났다.
“00이 너는 지금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겠지?”

나는 그 질문에 단 한 번도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8년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까지, 나는 연애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99년 그해의 크리스마스는 항상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았다.
만나지 못했기에 더 여운이 되어 버린 기억으로.
잠시 설레었고, 잠시 아팠지만 누군가를 남몰래 살짝 좋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가끔은 상상해 본다.
그때 만났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시기에 맞는 자기 몫의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그 인연은 서로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야만 비로소 닿는 것인지도 모른다.

용기 없던 나의 풋사랑 같은 짝사랑은 그렇게 묻혔지만,
나는 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1999년 크리스마스의 초조하고 애절했던 순간과는 달리,
이제는 해마다 가족과 함께 정신없이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곤 한다.

나의 마음속 깊은 짝사랑은 이렇게 아련한 추억으로 묻혔지만,
올해는 그 기억을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브런치에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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