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과 스타트업의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좀비의 성장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회사의 내부는 어떻게 굴러갈까?
일반론을 먼저 이야기해보자. 이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면, 거시 세계를 살다가 미시세계 보려는 것 같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비록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부정하였더라도, 미시세계에서의 현상은 실재하니까.
스타트업 6하 원칙
How - 절차가 어떻게 되지?
What - 무엇을 해야 하지?
Where - 어디서 의사결정이 되지?
Who - 누구한테 보고해야 하지?
Why - 왜 이렇게 개판이지?
When - 이 회사 언제 망하지?
특히나 성숙한 회사에서 곳에서 이쪽으로 왔다면 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체계 부족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나가야 할 대상이다. 인력과 자원이 한정된 환경에서 업무분장과 절차 챙기다가는 될 일도 안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회사의 내부 모습이다.
직장인 5대 의문. (원 출처는 잘 모르겠습니다. 본문과 크게 관련은 없습니다.)
천억짜리 창업동아리
CEO가 모든 것의 핵심이다. 회사를 설립했고, 대주주이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대들보 역할을 한다. 이들은 창업시와 성장기에서는 [창업가 역량], 안정기와 성숙기에서는 [경영자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창업가]는 시장 기회를 발굴하고 자금과 사람을 모아 체계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량이 강조되는 한 편, [경영자]는 회사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영업, 재무, 운영 등을 관리하는 역량이 강조된다.
당연히 작은 회사에서는 창업자가 경영자의 역할을 맡는다. 일반 조직 경험이 없는 CEO라면 회사가 성장하더라도 체계를 갖추기는 힘들다. 책으로 배운 무늬만 조직개편을 월례행사 수준으로 시도하기도 한다. 경영을 해야 하는데 창업자 관성이 남아있는 CEO는 회사를 동아리로 전락시킨다.
동아리 회장님은 때때로 사업성, 법률 검토를 거치지 않고 일을 벌인다. 방향성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자금과 인력과 시간은 낭비된다. 결과가 참혹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비난받기도 힘든 데다가,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끝이 나기도 한다.
기업가치가 수천억까지 평가받게 되면 유사 규모의 상장사 회장님이 된 듯한 착시현상까지 생긴다. 기껏 불러 모은 전문가나 인사이트 있는 직원이 하는 말들이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불만이라도 들은 창업자는 어리둥절하다.
이렇게 좋은 회사에서 일하게 해 주는데 뭐가 불만이지??
조직을 갖추어가는 시기와 방법에 대한 의사결정권은 CEO에게 있다. 그들의 생각과 능력이 회사를 진짜 기업으로 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 경험을 하지 못한 동아리 회장님이라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때로는 민주적으로 때로는 강압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창업자" 마인드에서 "경영자" 마인드로 넘어가는 것은 큰 산을 넘는 것 처럼 어려운 일이다. 결국, 자신보다 뛰어난 누군가의 능력을 본인 능력의 한계 내에서 억누르는 결과로 이어진다.
도덕적 HEY
도덕적 해이 :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유리한 행동을 취하는 현상
알맹이 없이 돈과 사람을 빨아들여서 외형만 성장하다 보면, 기존에 없던 매출 압박감이 내외부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이 시기에 다음 단계로 못 가는 실패가 쌓이면 점점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잘잘못을 가리게 된다. 외부 모습과 내부 상황의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가치평가 방법론 따위를 몰라도 투자할 때 평가되는 만큼의 가치가 없는 것 정도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이 함정).
자금조달이 만병통치약이라서 알맹이 없는 지표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들이 산발적으로 전개된다. 가진 게 있어서 피벗은 힘들다. 하나만 걸려라는 식의 포트폴리오를 수립한다. 집중력은 흐려지고 실패는 더 쌓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초기의 성장세는 사라지고 언제부턴가 유저 효용이 뒷전으로 가서 서비스는 정체된다. 직원들은 목표의식을 잃고 많은 미팅과 노력이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퇴사율은 높아지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이 와중에 초기 몇 멤버들은 요직을 꿰차고 앉아서 고인물이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과는 좀처럼 섞이지 않는 현상도 볼 수 있다.
영리한 직원들은 이를 역이용한다. 대표의 의견에 크게 동조하고, 일하는 척 문서를 만들고, 과장 보고를 수행하다가, "열심히 해봤는데 안되네요."라고 회고하면서 손뼉 치는 루틴으로 회사에 놀러 다니는 것이다. 예산과 권한을 이양하는 중간관리 체계를 두지 못해서 통제되지 않는다. 특히나 유능한 직원 위주로 채용할수록 이런 직원들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단순 지표가 기업가치에 직결되기 때문에 요식행위가 우월 전략인데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다.
아름다운 전체 모습
비용의 도덕적해이도 놀라운 수준이다. IT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용으로 인건비, 임차료, 서버비, 광고비를 꼽을 수 있다. 이 비용들이 커지면 회사의 비용이 급증한다. 물론 각 비용의 상승에는 모두 이유가 있지만 실상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인건비 - 좋은 사람을 뽑기 위해서 → 불필요한 사람들을 채용함
임차료 - 뽑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 강남, 여의도, 판교에서 크고 좋은 사무실을 자랑함
서버비 - 유저가 늘어나고 데이터가 많아졌기 때문에 → 기술부채 해결 못 함, 심각한 효율성 저해
광고비 - 유저를 더 모아서 더 큰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 지표를 만드는 수단
나는 비어있는 빈자리에 쓰레기들을 모아놓음으로써 회사의 가치 상승에 자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회사에서는 비용을 관리하려고 하는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관리자가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더욱 영리하게 비용을 쓰는 방법은 추후 기술하는 것으로 하고, 일상의 낭비를 함께 감상하는 것으로 이 편을 마치고자 한다.
쓰레기 자리 월 75만원, 3인 회의를 위한 8인 회의실 시간당 10만원
돈은 못벌면서 몸집만 불어나는 회사에서의 고착상태는 기술부채, 정치질 등의 기존에 없던 문제와 맞물리면서 결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시베리아 수렁에 빠진 러시아 탱크마냥 회사가 퍼져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조차 오래 걸리는 모양이다.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는게 쉬웠어서, 고객 주머니에서 돈 빼는것도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 쇼핑을 멈추고 서비스를 쇄신해서 푼돈이라도 벌기위해 눈물나게 노력해야 하며, 아무리 과거에 크게 기여했던 직원이더라도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대표 본인도 예외 없이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의사결정을 할 유인도 없거니와 할 수 있었으면 적어도 살아있는 시체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테지만 말이다.
Tip) 이 시기에 서로를 위로하는 말로 "성장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회사 평판 조회 하는 서비스에서 이 단어가 자주, 오랫동안 등장한다면 '좀비구나~'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본다. 아프니까 청춘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성장통이 아니라 골병 들어서 아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