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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앞에 선 아빠

자본과 기다림 사이에서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들

by 기록하는최작가

[원문장] <질서 너머>, 조던B.피터슨 저

우리가 가치 있고 주목할 만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사회계약의 일부다. 그 계약을 이행하면 보상이, 불이행하면 처벌이 따른다.


질서란 무엇일까.

단순히 줄을 서고, 신호를 지키며, 먼저 온 이에게 먼저의 권리를 주는 일일까.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 같다.

질서란 규칙이며 예절이고, 타인을 향한 조용한 배려이다.

그렇기에 질서 앞에서는 누구든 평등하다.

나이도, 지위도, 돈도 잠시 옷걸이에 걸어두어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이지, 내세울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린이날을 포함한 연휴가 있었다.

달력에는 단 하루의 기념일이었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그 나흘 전체를 ‘어린이날’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서 나는 문득 다짐하게 되었다.

그래, 오늘만큼은 최고의 아빠가 되어주자고. 세상 모든 아빠들이 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연휴 첫날, 우리는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그 선택이 어쩌면 무모했는지도 모른 채, 아이들의 웃음만을 상상하며 차에 올랐다.

하지만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데만 꼬박 40분이 걸렸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줄지은 차량들, 저마다 아이를 태운 아빠들의 결의가 엿보였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 세상 모든 아빠들은 오늘, 영웅이 되기로 결심했구나.


놀이기구 앞에 도착하자,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우리를 맞이했다.

한켠에 서 있는 작은 표지판에는 “지금으로부터 90분”이라는 문구가 놓여 있었다.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순간 스쳤지만, 그럼에도 줄을 서기로 했다. 아빠니까.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으니까.


줄을 서며 흘러간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흘렀다.

아이들은 “언제 타?”라고 묻고, 나는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답한다.

내 말 속에는 기다림의 끝이 있다는 위로가, 아이들의 눈빛 속에는 지루함을 견디려는 인내가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줄의 끝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그러던 중, 우리의 앞으로 한 사람이 성큼 다가와 무심히 줄을 가로지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놀이기구 탑승구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손에는 ‘매직패스’라 불리는, 돈을 더 내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마법 같은 티켓이 들려 있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을 본다.

순서란, 질서란, 규칙이란 무엇인지 이제 막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질서라는 사회적 규범이 자본의 힘 앞에서 밀려난 순간이었다.

나는 분노했지만 동시에 흔들렸다. ‘나도 저걸 살 걸 그랬나….’ 내 안에서 질서와 효율, 평등과 자본이 충돌했다.

그리고 어느 쪽도 완전히 맞다고, 혹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아이들이 묻지 않아 다행이었다.

“왜 저 사람은 줄을 안 서도 돼?” “왜 우리는 기다려야 해?” 그런 질문을 받았더라면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질서란 참는 것이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동시에 그 질서를 뛰어넘을 수 있는 돈의 힘을 아이들에게 숨길 수는 없었다.


질서란 모두가 지킬 때 아름다운 것이지만, 누구는 그 위를 걷고, 누구는 그 아래서 기다린다면, 그것은 질서가 아니라 ‘특권’이 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질서를 논하는 일은 때로 비현실적이며, 때로는 순진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모두가 같은 줄에서 출발할 수 있는 사회를. 기다림에도, 인내에도, 존중에도 값어치가 있다고 가르칠 수 있는 세상을.


놀이기구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오래 남을 질문 하나를 남겼다.

‘좋은 아빠란 무엇일까?’ 줄을 대신 서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림의 의미를 함께 알려주는 사람이고 싶다.

손을 잡고, 함께 서서, 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말이다.


질서 앞에서 우리는 다시 평등해져야 한다.

아무리 달려온 사람도, 먼저 도착한 사람도, 잠시 멈춰서야 하는 자리.

그것이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품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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