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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겸손

착각에서 배우고, 진심으로 자라는 시간

by 기록하는최작가

[원문장] <질서 너머>, 조던B.피터슨 저

오늘의 초보자는 내일의 명인名人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이라 하더라도 더 큰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신을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신중하고 겸손하게 현재의 게임에 참여하고, 다음 행보에 필요한 지식·자제심·수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나는 착각을 자주했다.
조금만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느새 나는 산 정상에 서 있는 듯했다.
칭찬 몇 마디가 내 등 뒤에 바람을 불어넣었고, 그 바람은 내 마음을 부풀렸다.
그러다 진짜 고수를 만났다.
노력의 깊이, 시간의 무게, 숙련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움츠러들었고, 동시에 비로소 겸손을 배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지 않나?
스스로 만든 틀 속에서 나는 안주했고, 눈앞의 작고 쉬운 승리에 만족했다.
하지만 삶은 부지런히 깨운다.
더 넓은 세계, 더 높은 벽을 보여주며 다시 낮아지게 만든다.
그렇게 인생은 재미있다.
낯선 사람을 만나고,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배움을 얻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문득 멈춰 서서 나의 위치를 묻게 된다.
나는 어디쯤에 와 있을까?
많이 올라왔다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들면 하늘은 여전히 머나먼데, 그제야 깨닫는다.
나는 겨우 한 뼘 올라왔을 뿐이었다.

테니스를 처음 배웠을 때가 생각난다.
그저 공만 넘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단순한 바람 하나로 새벽 여섯 시, 칼바람 속에서도 코트에 섰다.
한겨울, 귀가 얼어붙는 날에도 공을 쳤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공을 넘길 줄 알게 되었고, 작은 동호회에서 우승이라는 열매도 맛보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정말 잘 치는 줄 알았다.
못하는 사람과는 더는 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시간은 소중했고, 잘하는 사람과만 게임하고 싶었다.
서서히 거만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자와 게임을 하게 됐다.
몇 번의 실수, 거듭되는 지적.
경기는 끝났고, 내 마음엔 찝찝함만이 남았다.

나는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조금’ 나았을 뿐이었다.
그 ‘조금’을 ‘전부’로 착각한 건 나 자신이었다.
이야기는 테니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글쓰기, 일, 인간관계. 삶의 많은 영역에서 나는 비슷한 경험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겸손을 새로 배운다.
“나는 아직 멀었다.”
스스로에게 자주 되뇐다.
“더 높이 가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겸손은 주문처럼 나를 낮추고,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재능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겸손은 사람을 빛나게 한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진심이 묻어난다면, 사람들은 마음을 연다.
반대로, 조금 앞섰다는 이유로 거만해진 사람에게선 따뜻함이 사라진다.
인상은 굳어지고, 마음은 멀어진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진실해 보이는 사람인가, 아니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인가.
그 선택은 늘 내 몫이다.
잘한다는 말에 들뜨기보다는, 잘하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칭찬보다 비판에서 배우고, 자만보다 겸손에서 강해지고 싶다.
지금의 미숙함과 마주할 용의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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