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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의 함정

편리함에 길들여진 나를 깨우는 불편함의 가치

by 기록하는최작가

[원문장] <질서 너머>, 조던B.피터슨 저

내가 아는 것들과 친해지기보다는 모르는 것들과 친해지는 게 백배 낫다. 아는 것은 유한하지만 모르는 것은 끝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익숙함은 때때로 우리를 속인다.
마치 오래된 신발처럼, 발에 꼭 맞고 걸음에 저항이 없어서 좋지만, 그 안에서 발은 점점 제 형태를 잃고 만다.

익숙함은 편리하다.
별다른 생각 없이도 손이 먼저 움직이고, 마음이 스스로 따라간다.
고민이 줄고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도 머뭇거림이 없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곧 안일함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좁은 울타리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한때 사무용품을 거래했던 업체가 있었다. 전임자가 남겨준 인맥이었다. 전화 한 통이면 문 앞까지 배달이 오고, 예산을 집행할 때 필요한 증빙 서류들도 알아서 깔끔히 정리되어 도착했다.
심지어 “이 정도 예산이 남았다”고만 말해도, 업체는 원 단위까지 딱 맞춰 견적을 내주었다.
너무도 편리하고 익숙한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을 사고 있는지, 얼마를 지불하고 있는지. 나는 그저 익숙한 루틴을 반복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에게는 시간을 아끼고, 업체에게는 이익이 되는 이 조용한 교환 속에서,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것이 오래도록 좋은 관계인 줄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받은 영수증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평소라면 그냥 서류 더미 속에 묻혀 지나갔을 숫자들이, 그날은 유독 눈에 밟혔다.
한 제품의 가격이 내가 아는 금액보다 높았다.
이상했다. 의심은 습관을 깨뜨리는 작은 균열이었다.
인터넷을 켜고 제품명을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내가 지불한 가격은 시중가의 두 배나 되었다.
믿고 있었던 익숙함이, 알고 보니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편리함에 기대어 모든 판단을 내려놓았던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낯선 거리로 나갔다.
직접 발품을 팔았다.
여러 업체를 돌아보고 가격을 비교했다. 허탕을 치기도 했고, 원하는 물건이 없어 고개를 저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 속에서, 나는 선택의 힘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가격도, 품질도, 조건도 괜찮은 새로운 업체를 찾았다.
서류를 직접 정리해야 했고, 배달도 되지 않아 직접 가지러 가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일이 귀찮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새로 알아가고 있다는 감각, 어딘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익숙함이라는 안락한 방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 안은 따뜻했고 조용했지만, 동시에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편리하다는 이유로, 나는 판단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나의 시간과 자원, 그리고 가능성은 조금씩 누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때로 우리를 무디게 하고, 무지는 비싼 값을 치르게 한다.
우리는 가끔 익숙하다는 이유 하나로, 의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더 나은 가능성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하지만 삶은 질문을 멈춘 순간부터 서서히 퇴화하기 시작한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말자.
편리함에 몸을 맡기지 말자. 불편함은 때로 우리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
낯선 길 위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며 스스로를 다시 세운다.
오늘의 불편함이 내일의 더 나은 선택이 된다.
익숙함을 의심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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