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용기, 싸움
[원문장] <질서 너머>, 조던B.피터슨 저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한 체하지 마라. 서로 협의해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면 상의하라. 싸움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 순간에는 불쾌할지라도 낙타 등에 붙은 작은 지푸라기를 떼어내야 한다.
싸우지 않는 것만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아니다.
어쩌면 진짜 불행은, 싸움이 없는 고요 속에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
더 깊고 오래도록 우리를 잠식시키는 건, ‘행복한 척’이라는 무표정한 연극이다.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웃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일.
그것은 마음을 닫고, 침묵으로 도배한 거짓된 평화다.
결혼 후, 나는 착각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내는 나를, 나는 아내를, 말하지 않아도 헤아릴 수 있을 거라고.
사랑이 모든 벽을 허물어줄 거라는, 너무도 낭만적인 착각이었다.
작은 예를 들자면, 집안일.
아내는 설거지를 모아뒀다 한 번에 하는 것을 선호한다.
나는 반대로, 식기를 쓰자마자 바로 씻어두지 않으면 불안한 성격이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습관의 차이쯤이야 이해해보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넘겼다.
그러나 그 작디작은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보다 큰 균열을 만들었다.
쌓여가는 접시들을 바라보는 일상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마치 다 이해하는 사람인 것처럼.
이해는 말없이 묻혀버리고, 불편함은 말없이 쌓여갔다.
그리고 결국, 참았던 말이 툭 튀어나왔다.
“설거지 좀 바로바로 하면 안 돼?!”
무심코 뱉은 말 속에 묻어버린 짜증은, 아내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척을 해왔던 것이다.
그 척이라는 가면은, 우리가 더 가까워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 끝에 고개를 떨군다.
설거지 앞에서, 다시금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움직이며,
또다시 이해하는 사람인 척, 연기를 계속한다.
그런데 진짜 이해란 그런 게 아니다.
이해는 인내의 다른 말이 아니라, 표현의 다른 이름이다.
상대의 입장을 억지로 껴안는 것이 아니라,
내 입장을 내어 보이며 서로의 다름을 좁혀가는 일.
다름을 외면한 채 조용히 웃는 얼굴보다,
솔직한 말과 감정이 오가는 다툼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싸운다는 건 결국,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의지다.
때로는 그 의지가 목소리를 높이고, 감정을 드러내게 만든다 해도
그 끝에는 조금 더 가까워진 마음이 있다.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갈등 없는 상태가 사랑의 완성인 줄로,
불만을 말하지 않는 것이 성숙이라고.
하지만 감정을 억누른 채 이해하는 척만 하다 보면,
결국 이해는 사라지고, 오해만 남는다.
행복은 이해받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진짜 행복은, 서로의 다름을 보면서도
그 다름을 존중하겠다는 다짐 속에서 자란다.
그 다짐은 때로 다툼을 통해 확인되고,
화해를 통해 단단해진다.
우리가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는,
상처받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상처는, 다름을 감춘 채
침묵 속에서 무너져가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행복은 말없이 참고 견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꺼내고 마음을 나누며 함께 맞춰가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싸움조차도,
행복을 위한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