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함이 숨긴 함정

발품을 팔러 다니다

by 기록하는최작가

물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흔들림이 숨어 있다. 표면은 잔잔해도, 바닥에서는 모래가 이동하고, 작은 돌들이 서로를 밀어내며 자리를 바꾼다. 우리의 시간도 그러하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는가. 그 대부분은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익숙하다는 이유 하나로, 편안하다는 핑계 하나로, 우리는 스스로를 작은 울타리 안에 가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울타리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어느 날, 오래 신은 신발을 가만히 내려다본 적이 있다. 발에 맞게 길이 들어 더없이 편안했다. 걸음은 부드러웠고, 발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편안함 속에서 문득 이상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신발이 내 발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내 발이 신발에 맞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편안함은 늘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제 모양을 잃어간다. 마치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방이 우리를 조용히, 아주 천천히 무디게 만드는 것처럼. 따뜻하고 안락하지만, 서서히 숨을 앗아가는 이불처럼 말이다.


익숙함은 언제나 달콤하다. 손이 먼저 움직이고, 마음은 뒤따라온다. 생각할 필요가 없고, 선택할 필요도 없다. 머뭇거림은 사라지고, 고민은 줄어든다. 길목마다 놓인 갈림길에서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을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걸어간다. 그 편안함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워진 듯 착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자유는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채 허용된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사무용품을 거래하던 한 업체를 아무런 의심 없이 신뢰했다. 전임자가 남겨준 인맥이었고, 그 관계는 너무도 매끄러웠다. 전화 한 통이면 물건이 도착했고, 서류는 내 손을 거칠 필요조차 없이 정리되었다. “예산이 이 정도 남았다”는 말만 건네면, 마치 계산기를 삼킨 사람처럼 정확하게 견적이 맞춰졌다. 원 단위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정교함에 감탄하며, 나는 점점 더 깊이 안도했다.


편리함은 생각을 대신해준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무엇을 사고 있는지, 얼마를 지불하고 있는지, 그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가벼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워지고 있었다. 판단을 내려야 할 자리에 습관이 들어섰고, 의심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신뢰라는 이름의 무관심이 자리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집어 든 영수증 한 장이 나의 안일한 세계를 흔들었다. 그것은 특별한 종이가 아니었다. 늘 보던 형식, 늘 지나치던 숫자들. 그러나 그날따라 하나의 숫자가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숫자는 마치 오래된 문을 두드리는 손처럼 내 안을 건드렸다. 나는 처음으로 멈추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의심했다.


인터넷을 켜고 제품명을 검색했다. 몇 번의 클릭으로 몇 줄의 정보가 나온다. 그 순간, 놀라움을 넘어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지불한 가격은 시중가의 두 배에 가까웠다. 그 사실은 소리 없이 나를 때렸다. 그동안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그 숫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익숙함은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는 익숙함에 기대어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오래 잠들어 있던 감각,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던 감각이 천천히 눈을 떴다. 편리함에 몸을 맡기고, 생각을 맡긴 채 살아온 시간들. 그 시간들은 나를 자유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내 선택을 멈추었고, 내 책임을 내려놓았다. 그 대가로 나는 조용히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간과 자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다.


불편함을 선택하기로 했다. 익숙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새로운 업체를 찾기 위해 직접 거리를 걸었다. 낯선 골목을 돌아다니며, 처음 보는 간판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때로는 문이 닫혀 있었고, 때로는 기대와 다른 가격표에 실망하기도 했다. 몇 번은 허탕을 치고 돌아왔고, 몇 번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고개를 저어야 했다. 그 과정은 번거롭고, 때로는 지루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 있는 감각을 느꼈다. 발품을 팔며 알게 되는 것들, 직접 비교하고 판단하며 내리는 작은 결정들. 그 모든 과정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손이 아니라 머리가, 습관이 아니라 의식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새로운 거래처를 찾았을 때,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가격도, 품질도, 조건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물론 예전처럼 모든 것이 매끄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서류를 직접 챙겨야 했고, 때로는 물건을 가지러 나가야 했다. 그 수고는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그 수고는 불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깨어 있게 하는 작은 의식과도 같았다.


돌아보면, 익숙함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던 이불과 같았다. 포근했고, 안락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서서히 숨이 막혀가고 있었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익숙함이라는 이유만으로 질문을 멈추는가. 익숙함은 의심을 지우고, 편안함은 사유를 무디게 만든다. 그 순간부터 삶은 눈에 띄지 않게 퇴화하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조금씩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편리함을 의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그것은 불편함을 견디는 용기일 것이다. 낯선 길 위에 서서, 다시 질문하는 일일 것이다.


왜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이 선택은 정말 나의 것인가.

더 나은 길은 어딘가에 있지 않은가.

이 질문들은 우리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바로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난다. 질문이야말로 삶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익숙함은 때로 우리를 속인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의 속임수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부드러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이대로도 괜찮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 속삭임은 달콤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생각의 날개를 접는다. 불편함은 다르게 말한다. 낯선 길을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열린다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다시 선택하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된다고. 오늘의 불편함은 내일의 더 나은 선택으로 이어지고, 그 선택들이 쌓여 우리의 삶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익숙함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인가, 아니면 나를 가두는 벽인가. 오늘 내가 선택한 편리함은 내일의 가능성을 조금씩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우리는 이 질문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함에 취하지 않고,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낯선 길 위에서, 결국 더 선명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된다. 편안함이 아닌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삶이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