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채워가는 것이다
책은 지식의 강을 건너는 다리일 뿐, 신줏단지처럼 떠받들 신성한 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책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사유하고 성장하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활자를 눈으로 좇는 것이 아니라, 그 행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타인의 지혜를 빌려 나의 생각을 키우고, 그 문장 속에서 나의 존재를 비춰보는 것이다.
읽은 책을 자랑삼아 책장을 장식하는 것은 공허한 일이리라. 먼지 한 톨 없이 보존된 책보다, 구겨지고 접힌 페이지, 밑줄과 메모가 빼곡한 책이 더 값지다. 그것은 곧 사유의 흔적이며, 나만의 언어로 새긴 지적 여정의 기록이다. 책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 글귀에 내 생각을 덧입히고, 공감의 순간에 밑줄을 긋고,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곱씹을 때, 그 책은 나의 일부가 된다.
책이 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책을 채워가는 것이다. 책 속의 문장들이 내 안에 스며들어 나만의 언어로 다시 태어날 때, 독서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책은 하나의 씨앗이고, 독서는 그것을 나만의 토양에서 키워내는 과정이다. 똑같은 문장을 읽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책이 독자를 통해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과 감정이 더해질 때, 책은 단순한 지식의 보고에서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책을 읽을 때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문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문장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나의 목소리를 더해야 한다. 때로는 의심하고, 때로는 반박하며,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곱씹어야 한다. 그렇게 책은 점점 나의 것이 되어 간다.
책은 길을 제시하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은 나다. 책 속의 지혜를 빌려 나의 사유를 확장할 때, 나는 책과 함께 성장한다. 나는 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낡고 헤진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기에는 나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어느 페이지엔 웃음이, 어느 페이지엔 눈물이, 어느 페이지엔 깊은 고뇌가 배어 있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쌓아온 시간들이 책을 더욱 값지게 만든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나를 읽는 일이다. 책이 단순한 글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일깨우고 생각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때, 독서는 나를 더욱 깊고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책을 채우는 것은 활자가 아니라, 그것을 읽고 사유하는 나 자신이다. 책은 내게 질문을 던지고, 나는 그 질문에 나만의 답을 써 내려간다. 그렇게 책과 나는 함께 완성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