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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도 삭제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현실에 삭제 버튼이 없어서

by 기록하는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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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현실에도 삭제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힘겨운 순간,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단숨에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삶의 어느 페이지를 눌러 지울 수 있다면, 아픈 기억이 스며든 시간들을 모조리 덮어버릴 수 있다면, 나는 더 가벼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문득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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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매일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며 산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만약 고통과 좌절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기쁨은 어떤 색을 띠게 될까? 슬픔을 모르는 사람에게 기쁨이란 단순한 일상의 한 부분일 뿐, 더 이상 빛나는 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어둠이 없다면, 빛은 그저 무색의 공허함일 뿐이다. 우리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차가움을 경험했기 때문이고, 평온함이 소중한 이유는 폭풍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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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아픔 없이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삶이란 과연 존재할까. 어쩌면 우리는 슬픔을 알아야만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가슴 저미는 이별이 있었기에 다시 만남이 반가운 것이고, 쓰라린 실패가 있었기에 작은 성공에도 가슴이 뛰는 법이다. 만약 삭제 버튼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삶에서 어떤 순간을 남겨두고, 어떤 순간을 지워야 할까. 행복한 기억만을 남기고 싶겠지만, 그 행복 또한 고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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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행이다. 현실에는 삭제 버튼이 없어서. 아픔을 지나온 만큼 우리는 성장하고, 흔들렸던 만큼 더 단단해진다. 때때로 삶이 너무 버겁고, 어떤 기억들은 너무 선명해서 지워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내 안의 상처들, 쓰라린 기억들조차도 결국엔 나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주는 조각들이 아닐까. 삭제하지 않고도, 우리는 그것을 품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짜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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